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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Nov 03. 2021

사실 나는 내 몸매가 좋다

구석구석 내 손이 닿은 나만의 공간

결혼식장을 예약해놨다고 하니 사방팔방에서 다이어트를 하라고 야단이다. 웨딩사진도, 결혼식날도 평생 딱 한 번뿐인 순간이기에 최고로 화려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1시간마다 시간을 칼같이 지키며 결혼을 찍어내는 결혼식장에서 최고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게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는데, 사실 나는 내 몸매가 좋다. 뭐랄까, 마트에서 파는 크고 새빨간, 채즙이 뚝뚝 흐르는 것만 같은 수박들보다 우리 할머니가 동네 텃밭에서 직접 길러 손녀 왔다고 따온 못난이 수박이 10배는 더 귀하고 맛있는 감정과 닮았달까. 딱 그 느낌이다.


날 때부터 새벽형 인간인지라, 대학생 때 이른 아침에 일어나면 그렇게 심심했다. 해도 비치기 전, 날은 어두운데 친구들은 다 자느라 단톡방은 조용하고, 룸메가 깰까 공간이라곤 침대 사이밖에 없는 비좁은 기숙사에서 조심조심 이동하곤 했다. 답답한 마음에 매일 운동복을 챙겨 입고 나와 음악을 들으며 한 시간씩을 걸었다.


학교 옆에는 조그만 동산이 있었는데, 오르막길이라고는 끽해야 10분쯤 걸렸다. 그 동산에 오를 때쯤이면 해가 떴다. 나는 매일 떠오르는 해를 찍어 사귀던 남자 친구들에게 보냈다. 물론 그들의 1은 오래 사라지지 않았다. 동산을 걷고, 운동장을 지나고, 과방도 지나 기숙사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 것이 나만의 루틴이었다.


같이 수업을 듣던 아는 언니는 아직도 놀리곤 한다. "얘는 아침마다 신발에 그렇게 흙을 한가득 묻히고 와. 아침에 운동도 하고 아침밥도 먹고 온대. 근데 제일 후리 하게 오고, 맨날 지각해." 날이 선선하면 줄넘기를 좀 하고, 풍경이 좋으면 뛰기도 했다. 지금은 수영으로 바뀌었지만 그렇게 10년의 아침운동이 지속되고 있다.


10년간 운동을 했다고 하면 다들 몸매가 아주 좋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사가 그렇듯 딱히 그렇지 않다. 아빠는 맨날 "너는 딱 입맛 좋게 운동해~"라고 하곤 하는데, 딱히 반박할 수가 없다. 아침밥을 열심히 먹던 나는 술도 열심히 먹었었고 지금도 뭐 아주 열심히 잘 먹고 있다.


그럼에도 내 몸을 애정 하는 이유는 내 몸이 작은 화단 같기 때문이다. 비싼 자재도, 귀한 꽃들도 하나 없지만 구석구석 내 손이 닿은 나만의 공간. 가끔은 겨울이 오기도 하고 식물이 다 죽기도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무성한 풀숲이 되는 여름도 오는 곳. 내가 꼭꼭 심은 꽃들만 피는 조그만 화단 같은 나의 몸.


그래서 나는 내 몸매가 언제나 마음에 든다. 몸매뿐만 아니라 내 모든 걸 좋아하곤 하지만. 예전에는 내 살 냄새가 좋아서 향수도 뿌리지 않았었다. 아마도 내 물리적 몸매보다는 내가 이 몸에 공들인 시간들을 사랑하는 것이겠지. 나를 위한 행동들은 스스로에 대한 애정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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