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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약 Nov 04. 2021

이력서 업데이트

언젠가 필요할 때를 위해 차곡차곡 모아가는 것 


살다 보면 참 다양한 일들을 하게 된다.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는데, 누군가 제안해서 하게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캐스팅이 있기도 하고, 하고 싶은 마음에 기다렸는데 설레는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는 먼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소상히 설계하고 기회를 만드는 것을 가장 선호한다.


일 년에 한두 번쯤,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곤 한다. n 잡러로써, 속한 팀도 많고 일도 많아 내가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내 이력을 모아주는 이가 없다. 당해가 아니면 나도 어떤 일을 했는지 소상히 기억하기 어렵다. 그래서 모아서 한 번에 기록하는 것이다. 사진과 과정도 같이 기록하면 더 좋겠지만..


벌써 이렇게 참여한 사업들과 활동했던 팀들이 많이 늘었다. 근무시간에는 회사의 일을, 퇴근 후에는 좋아하는 일을 하느라 20대 내내 밤 10시 이전에 집 들어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다행히 두 일은 문화예술로 일치했다. 그간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고, 스스로 성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나름 꽤나 뿌듯하다.


29살에 이 정도면 어디 프로젝트에 지원을 하더라도 꽤나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파트도 참 다양하게 맡아서 했다. 디자인, 홍보, 서류, 사무, 기획, 운영... 가끔은 회계까지. 재미로 하는 일들은 분야가 칼같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마냥 재밌었고, 사실 아직도 재밌다.


퇴근 후 다양한 팀들과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한 것은 넓은 밭에 씨앗을 뿌린 일이었다. 그 씨앗들은 이제야 새싹이 되어 내게 용돈벌이를 해주기도 하고, 다른 프로젝트 캐스팅이라는 기회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 씨앗들이 새싹이 되고, 울창하게 크면 어떻게 될지 가끔은 궁금하기도 하다.


난 포트폴리오가 없다. 이력서에 쓰인 사진 말고도 수많은 외주와 영상을 만들고 수업을 하고 그림을 그렸는데, 어쩐지 한 곳에 모아두지 못했다. 개인 sns에는 가끔 남기곤 했지만, 포폴로 어디에 모아둬야겠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이제는 웹사이트 하나에 포폴만 깔끔히 남겨보려고 한다.


그간의 시간이 아깝지만 앞으로 만들어질 과정들과 결과물들도 많기에, 낙담하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이제야 뭔가 괜찮은 결과물들이 나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내가 다양한 일로 먹고살 것이라 생각지도 못했고, 포트폴리오 자체에 엄청난 부담감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일을 시작할 때부터 글을 썼다면, 꽤나 많은 과정들과 감정들이 남아 내게 암묵지가 되었을 텐데. 지금부터라도 내가 하는 일들을 소소히, 그리고 자세히 남겨보려 한다. 글을 참 좋은 도구다. 과거의 내 글을 읽으면 그때의 감정과 상황이 생생하게 되살아 나곤 한다. 마치 타임머신 같달까.


이력서 업데이트를 하며 한 가지 더 다짐한 게 있다면, 내년에는 무조건 작업실을 만들 요량이다.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싶다. 아주 깔끔하고 조용한 공간. 누군가를 초대하기도 좋은, 아늑한 공간이 될 것이다. 거기서 야망 있는 여자들을 모아 어떤 일들을 뽀짝 뽀짝 해내어 가고 싶다.


필요할 때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면 분명히 놓치는 경력들이 있다. 그래서 이력서를 정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바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곧 어딘가 이력서를 제출할 상황이 생긴다. 그러니까 작업실도, 포트폴리오도 그런 것이다. 언젠가 필요할 때를 위해 차곡차곡 모아가는 것.


이력서만 그럴까, 일상도 그렇다. 지금 이 글도 언젠가 분명 아주 요긴하게 쓸 것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잡스가 말한 커넥팅 더 닷. 나는 오늘도 점들을 뿌리며 산다. 언젠가 이 점들이 모여 선이 되고 선들이 모여 면이 된다는 것을 확신하며, 나는 오늘도 밀도 있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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