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면 본시부터 이럴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일순간의 치기로 행동한 것인데, 사람이란건 꼭 일을 저지르고 나서야 정신이 드는 모양이다.
물이다. 그것은 검붉은 색으로 거대히 소용돌이치며 블랙홀처럼 나를 끌어당긴다. 명백히 나의 몸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다가갈 것이다.
측두엽 해마 속 시냅스에는 기억이 저장 되어 있다. 지금 나는 엄정한 상태이므로 나의 뇌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느라, 빠르게, 질량의 속도보다 빠르게 75분의 1초 단위로 시냅스를 열어 하나씩 하나씩 기억을 불러낸다. 이것은 생명이 그 생명을 이어가고자 노력하는, 말하자면 생존의 필수 반응이다. 우리는 그렇게 진화해 온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나는 무엇인가. 왜 왔는가. 나의 쓸모는 무엇이었나. 무엇을 사랑했나. 다음은. 그 다음은.
물은 조금 더 가까워 졌다. 그래서 나는 일 찰나를 사용한다. 그래, 나는 그 날 태어났었다. 그리고 후회했다.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을. 이 세계는 시끄럽고 눈이 부시고 고통스러운 것 들로 가득했다. 사라지고 싶었다. 생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고통도 즐거움도, 또 반복도 없을텐데. 허나 지금까지 살았다. 생이 내 의지가 아니었던 것 처럼 소멸도 그리 되지 않았다.
강변을 달리는 택배차를 본다. 트럭은 달리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 안에 수많은 물건들은 각기 목적이 있어 생 하였을 것인데, 나는, 나의 생은, 본질은 무엇으로 정의할까.
그렇게 강은 조금 더 가까워 졌다.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나는 당겨지고 있지만 무중력 상태에 있는 것처럼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요하다. 그랬다. 나는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설명도 없이 그저 이 세상에 던져졌다. 나는 그냥 그 시간에 그 곳에 있었을 뿐이다.
이 다리는 오래전에 지어졌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상황에, 같은 생각을 하며 떠 있었을까. 그들도 그랬겠지. 이제 다 끝나간다고. 다음은 뭐가 있겠냐고. 꼭 있어야 겠냐고.
그랬다. 그래야만 했다. 그래도 하고 싶은대로 했어야 했다. 나는 던져진 것이지만 그 댓가로 자유를 선고받았다. 선택, 선택의 가치는 내가 정의하는 것이다. 자유, 자유는 권리이자 의무이다. 이제사 깨닫는가. 불안은 인간을 성장시킨다.
중력은 질량에 비례한다. 하여, 나는 조금 더 빠르게 떨어진다. 낙하. 일 찰나를 사용한다. 기억은 사랑을 부른다.
라디에이터의 따스함, 버석거리는 이불, 삐걱대는 침대와 그 속에 우리 둘. 그곳엔 미래에 대한 그 어떤 약속이나 바람, 기대는 없었다. 그저 바라보았고 느꼈고, 안도했다. 프라하의 가을은 아름다웠고 몽글몽글한 냄새는 싱싱했다. 그리고 그들이 태어났다. 그는 찢기는 아픔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나에게 왔다. 그를 안은 그 순간에 나는 깨달았다. 내가 생한 이유이자 목적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지만 사랑한 기억은 날개를 돋운다. 아. 다시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자. 나를 잡아줘.
나는 끝내 물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그것에 튕겨진 양, 추락 할 때와 같은 속도로 튀어 오른다. 올가미가 경쾌히 육신의 발목을 낚아 챈다. 밧줄은 팽팽히 당겨지다 다시 느슨한 포물선을 그린다. 포물선을 따라가 본다. 나는 명백히 알 수 있었다. 그 끝엔, 그 마지막엔, 최굴화, 그가 서 있다. 양손으로 밧줄을 꽉 붙잡은 그가, 여느 때와 같은 미소를 머금은 그가, 이렇게 중얼거린다.
“거 쓸데없이 뭐 이런 걸 하고 있소? 이럴거면 차라리 소설이나 쓰고 앉아 있지 그래”
그가 밧줄(bungee)로 건져 올린 건 비루한 육체가 아니라 찬란한 의지인 것이다.
나는 다시 날아 오른다. 일 찰나를 지나, 수 억 찰나를 지나, 자유롭게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