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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도빈 Jun 09. 2023

헤어질 결정


처음 소주를 홀짝 대던 무렵, 선배 김종간이 그랬다.

후배님, 우리는 그저 알코홀을 식도로 부어대는게 아니에요. 기쁜 우리 젊은 날의 방황, 고독, 좌절, 불확실한 미래, 이런 것들을 이 잔에 하나씩 하나씩 모아 모아 보는 거에요. 그리고 탁, 잔을 털면 술과 함께 그것들도 사라지는 거지요. 뭐 낭만 그런 거라고 해두죠.

왜 낭만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는지, 허름한 내 머리로 이해할 수 없었으나, 역시 허름했던 그 선배는 멋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랬다. 그래서 나도 고독인지 좌절인지 방황 또 뭐, 아무튼 그런것들을 주구장창 털어 넣는 나날을 보냈다.


나도 거들었다. 선배님, 술은요. 한 손으로 들기 적당히 무거운 병을 계란 움켜쥐듯 소중히 들고 병따개로 뽕!. 크리스탈처럼 찬란히 빛나는 상대의 작은 그릇에, 존경이든 반론이든 고백이든, 그게 뭐든, 진실을 담아 적당히 부어주는 행위. 그 행위 자체가 아름답잖아요. 좋은 자리 좋은 사람 함께이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 한가 말입니다. 

이거 이거 병도 초록색인거 보세요. 초록이 뭐에요. 안전 아닙니까 안전. 그러니까 선배님과 나, 우리의 진실을 지키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는 든든히 지키는 그런, 청춘밭의 파수꾼이랄까. 

시상이 떠오르네요 선배님.


한 잔에

시야는 흐릿해 지고

두 잔에

사건은 멀어져 간다

석 잔에

너를 떠 올리다가

다음 잔에

우리를 확인한다


아니 스무살때 그랬다 치고 지금은, 여전히, 이때까지, 이 나이에,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왜 그러냐 물으시겠다.

얼마전에 누가 나이를 묻기에, 칠십구년 양띠에요, 빠른 생은 아니고, 학번은 구팔, 재수 안했고요. 네? 그렇게 안 보인다고요? 하하 그런 얘기 자주 듣습죠. 술 마시는 데 나이가 있나요 뭐. 그런데요. 마음은요 늘 스무살이에요. 라고 대답했다.

그랬다. 마음은, 마음만은 여전히 그때 그 시절이다. (정확히는 술을 마시면 스무살이다) 

그러므로 놀랍게도 여전히, 아직도, 정신줄 놓고, 주야장천 털어 넣는 나날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놀랍게도 여태껏 술을 끊어야 겠다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제는 술을 끊어야 겠다 생각했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말이다.


모두가 잠든 새벽, 어제도 어두운 뒷골목을 헤매고 다니다보니 그 시절 그 일들, ‘이게 다 술 때문이다’ 로 귀결 시켰던 그 사건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그러자 나와, 함께 했던 그들, 즉 우리가 몹시도 부끄러워져, 나는 차마 고개를 들고 걷지 못했다. 그러다 쿵! 허름한 간판에 허름한 내 머리를 부딪혔다(부딪쳤다 인가?).

물론 내 육체가 육척장신에 조금 모자란 탓이지만, 이것도 결국 다 술 때문이었다.

그 여파로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정신 못차리고 이런 잡글이나 쓰고 앉아 있다. 물론 허름한 내 머리에는 혹이 생겼고.  


술. 아마도 그건 사랑이었겠지. 나는 사랑을 했다. 허나 천계하노니, 이제는 헤어지려 한다. 현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아름답다 했다. 그러므로 내 청춘은 애초에 아름답긴 글러먹은 허름한 나날이었다. 하여, 이제사 시도컨데, 부디 이별만은 아름답기를.


그럼에도 나는 좋은 사람과 좋은 자리를 함께 할 것이다. 그곳에서 허름한 구석에 구부정히 앉아 김빠진 사이다 나부랑이나 홀짝 대며 그들을 지켜볼 것이다. 정신줄놓고 아무말이나 해 대는 그들을 지켜볼 것이다. 여전히 청춘이라 주장하며 방황, 고독, 좌절, 뭐 또 사랑 같은 것들을 털어내는 그들을 응원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들의 낭만을 함께 할 것이다. 어쩌면 이 쪽이 더 재밌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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