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도빈 Sep 01. 2023

가을이 오면

가을이 오면

 

 가을이에요. 더위를 처분하는 날, 처서(處暑)도 지났고, 겨울은 아직인 것 같으니 가을이 맞겠지요. 당신에게 가을은 어떤 계절인가요.


 한 번은 돗자리를 챙겼어요. 한쪽은 뽀로로 친구들이, 반대쪽은 온통 은박인 걸로요. 대공원 호숫가에  펼쳐 놓았죠. 의외라구요? 사람이 어떻게 맨날 후지기만 합니까. 저 같은 사람도 그러고 싶을 때가 있죠. 그런데 그 은박이 얼마나 반짝반짝 빛이 나던지, 눈이 부셔 견딜 수 없더라구요. 가을 태양이 여름만  못하다는 것도 사실 편견이에요. 아무튼 그래서 뽀로로를 곁에 두고 누워봤어요. 와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었어요. 그건 9월 26일의 하늘이었어요. 뭐 꼭 제 생일이라 그랬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날 하늘이 그랬어요. 뭐랄까, 누군가 지구를 뒤집어 놓았다랄까요. 짙푸른 지중해를 아래 두고 그 위에 내가 두둥실 날고 있는 것 같았어요. 물론 뽀로로와 루피도 함께요.

 자꾸 하늘, 하늘 말하다보니까, 유치원때로 돌아간 것 같아요. 어른이 된 이후에는 이 단어를 쓸 일이 별로 없잖아요. 저만 그런 건 아니죠? 어쨌든 그러고 있으니 팔 다리도, 기분도, 눈꺼풀도 하늘 하늘 해 졌어요. 그러다, 잠들어 버렸죠 뭐.


 가을 하면 또 뭐 있을까요. 살찐다. 다들 그러잖아요. 저도 그래요. 가을에도 변함없이 식욕이 좋아요. 때가 때인 만큼 먹을 게 많잖아요. 우선 작물에 ‘햇'이 붙죠. 그리고 우리만 살찌는 건 아닌가봐요. 먹거리도 그래요.


 우선 전어가 있겠네요. 사실 전어라는 물고기는 가을에만 사는 건 아닌데, 왜 우리는 가을에 주로 먹는 걸까요. 전문적으로는 전어가 이 시기에 지방질이 풍부하다네요. 아시죠? 우리가 맛있다, 느끼는 대부분은 지방에서 비롯 된다는 것을. 사실 일년 내내 전어를 먹는다 생각하면 전어의 매력이 떨어질 것도 같아요.  흔한 것은 편안하기는 하지만, 희소하거나 특별하지 못하죠. 참, 전어를 구울 때는 칼집을 내는 게 좋대요. 지방 때문에 껍질이 다 터져 버리니까, 그렇지 않도록 미리 여유를 주는 거지요. 먹기 좋은 게 보기도 좋다 잖아요. 소금은 조금 굵은 걸로 치는 게 나아요, 제 경험상 말이죠.


 도토리도 있겠네요. 아, 지난 가을에 도토리 주우려고 청계산을 몇 번을 갔는지 몰라요. 조금 번거롭기는 했지만 덕분에 체력 단련 제대로 했죠 뭐. 게다가 내 손으로 직접 마련한 식재료라니, 어쩐지 더 맛지지, 아니 멋지지 않나요. 물론 다람쥐 먹을껀 남겨뒀어요. 방앗간에서 가루를 내어 묵을 쑤어 보세요. 파, 마늘, 양파 섞은 조선 간장에 쿡 찍어 씹으면 쫀득쫀득, 말캉말캉 식감이 너무 좋잖아요. 칼로리도 거의 없대요.  그래도 과하면 안되겠죠. 코끼리도 채식만 한다잖아요.

 

 대하요? 말해 뭐해요. 푹 쪄도, 바싹 구워도 이거 만한 게 없죠. 안타깝게도 대하는 수명이 일년 남짓이라 해요. 그래서 9월부터는 대하가 월동 준비를 한다네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제철이래요. 살이 포동포동 차올라 식감이 좋거든요. 맛만 좋을까요. 들어 보셨죠? 가을 새우는 굽은 허리도 펴게 한데요. 타우린 있죠? 그게 음료에만 들어있는게 아니에요. 대하에도 함유되어 있어서, 혈액순환을 돕는데요. 그래서 허리 디스크 예방에 좋다 하더라고요. 저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새우 허리가 원래 좀 구부정 하잖아요. 잘 구운 대하의 머리와 꼬리를 잡고, 양쪽으로 쫙 펴보세요. 왠지 내 허리도 함께 세우게 된다니까요. 그래서 그런 말이 나온 게 아닌가, 뭐 그런 추론을 해 봤어요. 진짜에요, 한 번들 해 보시길.

 

 꼬막은 또 얼마나 어울리나요. 푹 쪄서, 간장, 파, 고춧가루, 깨소금, 듬뿍 얹어 놓으면 일품요리가 따로 없어요. 이걸 비법이라 해야 하나, 기술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삶을 때요. 다른 조개와 다르게 벌어지지 않게 삶아야 한다네요. 벌어지면 꼬막 특유의 맛을 내는 피 부분이 사라져, 질기고 맛이 덜 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한두개 벌어지기 시작할때면 불을 끄세요. 저요? 저는 그냥 다 벌어져 속이 훤히 보일 때까지 삶아요. 그래야 까 먹기가 좋거든요. 아시잖아요. 뭐든 맛있게 먹는 사람이라는 걸.


 어떠신가요? 맞아요. 모두 술 안주로 어울리는 음식이네요. 그래요. 가을은 참, 술 먹기 좋은 계절이에요. 여름엔 가뜩이나 더운데, 술은 열을 내니까 더 덥고. 겨울은 절대 공원 벤치에서 잠들면 안되는거 아시죠?  봄은 또 어때요. 꽁꽁 얼었던 세상이 파릇파릇 희망으로 물드는 그 계절에, 우중충하게 술판이나 벌인다고요? 그래요. 이제 공감하시나요? 술은요. 가을이에요, 가을. 지금이 가을이라, 오늘 당장 한 잔할 명분이 필요한 거 아니냐고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계절이 그래요. 계절이. 쓸쓸하잖아요. 한 잔 필요하잖아요.


 자자, 분위기를 바꿔서. 옛부터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단언하잖아요. 이건 또 왜 이럴까요. 저는 전문가가 아니기에, 사회적, 유전적, 철학적 지식은 드릴 수 없지만, 직관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어요. 독서는 술과 닮아 있다고. 정확히는 책과 술이 닮았다 해야 겠네요. 책을 읽으면요. 열이 나니까, 가뜩이나 더운 여름엔 읽기가 좀 그렇고. 겨울엔 공원 벤치도, 저잣거리도, 대공원 호숫가도 춥죠. 머리고 손이고 다 꽁꽁 얼어 책이 안들어와요. 그럼 봄은요, 봄은 뭐, 희망이라니까요. 시시하게 책이나 읽고 있을 수 있으시겠어요? 가을이 좋아요. 삼단 논법이라고 들어보셨죠? 가을은 낭만, 책도 낭만, 그러므로 가을은  책. 이상하다고요? 말했잖아요. 전문가는아니라고. 더 이상의 설명이 더 필요할까요? 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요. 뭐 그렇다고 모든 일에 다수를 따라 줏대없이 살라는건 아니고요. 이 계절의 독서가 그렇다구요.


 그래서 저요? 제가 보기와는 다르게 사십대잖아요. 이런 데서 왜 나이 얘길 하느냐구요? 건강을 생각해야 하는 나이라 그래요. 갑자기 왜 삼천포로 빠지냐고요? 에이, 그리 말씀하시면 서운하죠. 저도, 삼천포 주민들도요.

 몇년전 이었나요. 제가 담배와 헤어지기로 결심 했던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성공했냐구요? 아휴 성질도 급하셔라. 일단 얘기를 한 번 들어 보시라니깐요. 그러니까 결론 부터 말하자면, 저는 ‘다독가’가 되었어요. 다독가가 뭐냐고요? 아시면서, 저랑 연결 되니까 혼란스러우신거죠?

그렇게 금연을 했어요. 시도 했었다, 말해야 정확 하겠지만, 아무튼. 왜 생각이 안나겠어요. 이십년 넘게 함께 했던 친구이고, 연인이자, 스승이며, 동반자였던 그녀. 아, 지금부터 담배를 의인화 할게요. 그거 아세요. 사람이 간절히 원하면, 내가 아무리 부정해 봐도, 진정 원하면요. 꿈에 나와요, 꿈에. 그러니까 꿈에서 만났어요, 그녀를, 담배를요. 흡연몽(吸煙夢)이라고 칭할까요. 좀 창피한 일이지만 정말 그러더라고요. 그래서요, 저는 잠을 원했어요. 그 곳에서 우리는 합법적으로 만날 수 있었어요. 예전처럼 말이죠. 아시죠? 한 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을 때는 전보다 훨씬 뜨거울 수 있다는 거요. 물고 빨고 보듬고 할퀴고. 표현이 좀 그렇지만, 우리는 전보다 더욱 애틋했어요.

그래서 아무때나 잠을 청했어요. 소파에서, 회의실에서, 술자리에서, 심지어 산책할 때도요. 그렇게 우리는 밀회를 즐겼죠. 너무 자주 만났을까요. 잠이 오지 않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나름대로 노력도 했죠. 노력만이 살길 이잖아요? 운동장을 대여섯 바퀴씩 돌아 피곤케 하고, 술도 막 퍼먹고, 지루한 프랑스 영화도 들여다 보고 했죠. 그런데 세상 일이 노력만 가지고 되나요. 모두 실패였어요. 물론 그녀에 대한 제 욕심이 과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책이, 독서가 정말 좋은 약이라는 걸. 그때부터 였을 거에요.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무슨 책을 읽었냐고 물어보지는 마세요. 작가에게 미안해지니까요. 그렇게 읽다가 잠들고 눈 뜨면 또 읽고, 책을 베고도 자고 덮고도 자고, 심지어 깔고도 잤어요. 저는 닥치는 대로 잠이 들었어요.

그 이후로도 지속했어요. 그녀를 만나기 위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요. 그러다 보니까, 남들이 그러대요. ‘다독가 多讀家’라고. 요즘 흔치 않은 젊은이라고. 그것은 그녀가 내게 준, 말하자면 또 하나의 선물이었어요. 다독가 이니, 당연히 가을에도 읽겠죠?

말하다보니 너무 제 얘기만 한 것 같네요. 좌우지간,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란 말에 공감하시나요? 모르겠다면 바로 윗 단락을 한 번 더 정독해 보세요.


그나저나 그래서 작별은 성공했느냐고요? 정말이지 당신 눈에는 아직도 제가 후지기만한 사람으로 보이나봐요. 우리 시대 대문호 한강 작가 아시죠? 소설 ‘작별' 쓰셨고, 또 ‘작별하지 않는다'도 쓰셨죠. 이것 보세요.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게 작별 이에요. 어쨌거나 공개적으로 쓰기엔 너무 프라이빗한 문제고, 지면 관계상 이만 줄여야 된다네요.

설혹, 나는 그래도 최작가의 건강과 관련된 문제이니 꼭 알아야 겠다, 하시는 분은 제게 편지 주세요. 저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어떤 안주를, 얼마나 마실건지를 말이에요. 만나서 전부 털어 놓을게요. 참, 술은, 소주인거 아시죠? 가을엔 소주 잖아요. 빨간 걸로요.

  


매거진의 이전글 헤어질 결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