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의 도(冷麵之道)
중문관광단지에서 202번 버스로 두 시간을 달려 애월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날의 태양은 야트막한 오름 끝에 걸려 있었다. 우리는 윤여름의 결정으로 그곳에 들었고, 나는 그저 따랐다. 그 시절 우리는 그랬다.
-정팔씨! 그 생각하죠? 제주까지 와서 냉면이 뭐냐고. 그런데요. 제주 오면 갈치, 흑돼지, 고기국수, 또 뭐 돈가스? 이런 거 꼭 먹어야 해요? 아, 거기 가면 그거 먹어야지. 횡성 이면 한우, 영덕은 대게, 포항 물회, 담양이니까 떡갈비. 그럼 이렇게 생각해 봐요. 뷔페를 갔어요. 한우를 대게를 먹고 떡갈비를 물회에 찍어 먹으면, 그럼 뭐 전국 팔도 여행 온 기분일까요. 하여간 이런 사람들 좀 촌스럽거든요.
그러니까 제 말은 우리가 아무리 엥겔의 민족이라도 말이죠. 먹는 생각만 말고 여행 그 자체에 집중했으면, 느꼈으면 하거든요. 이곳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지, 공기의 맛은 단지, 쓴 지, 버스도 타고 시장도 가보고 김밥도, 백반도 먹어 보고. 그게 여행이거든요. 동감하죠 정팔씨?
윤여름은 중문 맥도널드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하지만 상기 서술한 대로 나는 토를 달지 않는다. 햄버거든 냉면이든 떡갈비든, 어디서 무얼 먹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내게는 우리의 첫 여행이라는 사실만이 유의미한 명제였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그리고 오해할까 하는 말인데, 오늘이 내 생일이라 냉면을 먹자 한 건 아니거든요. 세간에서는 기다란 국수를 먹어야 길게 산다잖아요. 그런 게 미신이거든요, 미신. 참 웃음밖에 안 나오죠. 사람들 촌스러워. 그렇죠? 그런데 말이에요…
그런데 말이라니. 불어 터진 면발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그랬다. 우리는 그런 사이니까.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평양냉면 즐기는 사람들 내가 좀 알거든요. 자, 일단 주변에서 물어요. ‘그거 무슨 맛으로 먹어요?’ 그러면 백이면 백 이렇게 대답하거든요.
‘슴슴한 맛으로 먹죠. 진정한 의미의 ‘평양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자극적인 새콤달콤이 아니라 은은한 고기 국물의 참미(眞味), 그러니까 설명하기는 힘든데 아무튼 복잡한 맛이 나는 것, 그것을 최고로 칩니다’
참 웃음밖에 안 나오죠. 복잡하니 설명이 어려워. 그런데 그게 또 은은해, 심심해. 또 이런 말도 해요
‘메밀향과 은근한 육수향이 넘어옵니다. 맞아요. 평냉은 입으로 먹는 게 아닙니다. 코로 먹는 거지요’
여담인데요. 우리 오빠가 훈련소 때 식사시간에 훈련병들이 하도 떠드니까, 교관이 ‘왜 이리 시끄럽나! 밥을 입으로 먹나!’ 그랬대요. 오빠는 웃음밖에 안 나왔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대요. 아무튼 요점은, 코로는 못 먹잖아요. 코끼리도 코가 손이지 입은 아니거든요.
냉면은 조금 더 불었다. 나는 식초와 겨자소스가 담긴 병만 들었다, 놓았다, 거렸다.
-어머나, 지금 그거 넣으려는 거예요? 그들이 봤다면, 웃음밖에 안 나온다, 했을 거예요. 그들은 어떤 맛도 원하지 않아요. 식초의 신맛도, 겨자의 매운맛도, 설탕의 단맛은 더더 욱요. 냉면의 도(冷麵之道)를 저버리는 행위니까요.
또 이런 말도 하더라고요. ‘나이가 들면 이 맛을 알게 된다’
그럼 오늘은 어떨까요? 뭐 먹어보면 알겠죠?
윤여름이 먼저 수저를 떠 주었기에, 나도 뜰 수 있었다. 젓가락으로 면발을 채는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의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이것 좀 봐요. 나 여전히 풋내기인가 봐요, 호호. 어쩌면 평생 이 맛을 모르고 살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마침내 어른이 될지 모르니까, 다음에 다시 확인해 봐요 우리.
그래서 맛있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나같은 애송이가 정확히 이해할 수 없지만, 다시 확인해보자는 말은 정확히 반가웠다.
-그런데 또 이런 말도 있거든요. ‘이게 무슨 행주 빤 물이냐, 걸레 빤 맛이냐. 너희들 입만 특별하더냐. 내가 맛 없어 맛 없다는데 어쩌란 거냐. 맛을 알아야 맛을 안다고? 정말이지 웃음밖에 안 나온다’
취향이라고 들어 봤죠? 그냥 서로 다른 거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자꾸 ‘틀리다’ 하니 그야말로 틀린 거죠. 우리 가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요, 날 때부터 한계限界 가 있거든요.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제한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까 연대가 필요한데요. 정리하자면… 저도 전문가는 아니라 여기까지만.
아무튼 너는 틀려, 나는 맞아. 이런 거 좀 촌스러워요. 정팔씨는 차디찬 도회지 남자이니까 동감하죠?
나는 평소 내 식대로 가위로 면발을 여러 번 자른 후 식초와 겨자 그리고 칠성 사이다를 부었다. 그리고 그녀가 뱉어낸 세계를 삼켜 버리듯 남은 냉면을 후루룩 삼켰다. 그런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