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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도빈 Nov 16. 2024

비 책


이비인후과에 갔다.

의사가, 어떻게 오셨냐 물었기에, 자전거 타고 왔다 대답했다. 

의사가, 혹시 알러지가 있냐 물었기에, 와인을 마시면 포도의 아황산염 때문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 제 정신이 아니게 된다 했다. 그러면서, 포도주 알러지 탓에 여지껏 근사하고 부티나는 데이트 한 번 할 수 없었다고, 화이트나 레드나 마찬가지라고, 물론 참이슬을 곁들인데도 로맨틱 혹은 성공적일 수 있으나, 그러기 위해선 모던 샤프한 외모에 언어의 연금술사여야 하는데, 보시다시피 나는 전형적인 북방계 후손답게 클래식 페이스에 그녀 앞에만 서면 작아지기만 하니, 더 자세한 설명과 소명은 필요치 않을거라고,덧붙였다. 

의사는 가운데 손가락으로 자신의 동그란 금테 안경을 치켜올리고 헛기침을 몇 번 해 댔다. 내 말에 차마 손바닥을 쳐 가며 대놓고 동조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공감의 제스츄어일 것이다. 진료실 한 쪽 벽에 명조체로 ‘고객은 늘 옳다’ 라고 적혀 있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그래서 증상은 언제가 가장 심한가요?

-대중 없어요. 시도 때도 없이. 선생님, 그래서 원인이 뭐죠? 

-환자분! 우선 정밀 검사를 해야 합니다. 본원은 최신식 독일제 장비로 외이와 중이, 내이 및 청신경까지 소리가 지나가는 전 과정을 진단합니다. 게다가 대한 이비인후과 학회에서 인증받은 청능사가 함께 합니다. 말하자면 국내 유수의 대학병원과 같은 서비스를 받으시는 겁니다. 


정밀한 검사는 지루하고 긴장된 과정이었다.


-외이, 중이, 귀청, 달팽이 모두 정상입니다.

-이상이 없다고요? 정말이지 불편해 죽겠습니다.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아무 이상이 없으니 이제 그만 진료실에서 나가주십시오.

나는, 아니 전문가 양반! 현대건 근대건 독일이건 불란서건, 병원에 왔으면, 불편해서 왔으면, 뭐라도 아무 말이라도, 원인과 해결책을 줘야지, 이상이 없다 하면 그게 이상 있는 거 아니오, 고객이 늘 옳다 하지 않았소!, 라고 면전에 퍼붓지 않았고,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최신 검사 장비와 최상급 의료서비스를 경험한 자로 부탁 드립니다. 부디 한 말씀만 하십시오. 

-존스 홉킨스 연수까지 다녀온 제가 이런 말 드리기 조금 그렇습니다만,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 하겠다는 히포크라테스 정신에 따라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일찌기 한학을 공부하신 제 조부께서는 그 의술이 매우 탁월하셨습니다. 특히 원인 모를 병으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당신만의 처방을 하곤 하셨는데, 그 때문에 팔도의 백성들이 밤 낮으로 몰려와 대문 밖까지 줄을 섰답니다. 그런데  명성이 만방에 다다르니, 왜놈들의 눈에도 띄었던 것이지요. 하여 조선총독부로 끌려가셨고, 해방을 맞을 때까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근무하셨다 합니다. 일본 경찰과 군 간부들이 주된 대상이었는데, 그들의 증상이 지금 환자분과 매우 유사 하였다 합니다. 

-그 놈들도 귀가 가려웠나요? 

-가렵다 마다요. 어떤 환자는 가렵다 가렵다가, 심지어 피가 줄줄 흐르기도 했다지요. 자, 할아버지는 어떤 처방을 하셨을까요. 한학에 통달하고, 그 명성이 저잣거리 너머 팔도에 달했던 제 조부의 대답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러니까 그게 말입니다.


나는, 아니 의사 양반, 무슨 서론이 이리 길어, 집안 자랑일랑 집어 치우고 처방을 하라고! 라고 말하지는  않았고, 그저 그 분의 입만 주시 했다. 


-노트를 한 권 사십시오.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영어든 무지든 모눈종이든 음악이든 깍두기 공책이든 괜찮습니다. 

‘그들’을 기억해 보십시오. 기억해 내십시오. 

당신으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받고, 슬픔과 우울, 분노와 화로 물들었던 그들을 말입니다. 그들은 욕과 험담, 심지어 저주를 담아 당신의 이름을 담았다 뱉어냅니다. 맞습니다. 결국 그들의 입이 당신의 귀를 가렵게 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 그들에 관해 준비한 노트에 쓰십시오. 어떤 상황이었는지, 왜 그랬는지, 당신은 몰랐는지 알았는지, 당신은 일부러 그랬는지 본의 아니었는지, 그들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나라면 어떤 심정이었을지, 상세히 기술해 보십시오. 

그리고 조치 하십시오. 사과를 하려거든, 용서를 구하려거든, 참회를 하려거든, 당신은 분명, 정중히, 진심으로, 구체적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집안에 내려오는 비책입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분명 내가 아는 누군가, 혹은 알았던 누가 나를 입에 올리고 있다. 그 누군가의 얼굴은 필시 굳어 있을 테고 말이다. 허나,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들’이 없었다. 하지만 원인을 알았고 방법이 있다 하니 병을 해결할 수 있다. 희망이란 이토록 좋은 것이다.

나는 병원을 나와 약국 대신 모닝글로리 들어 처방전 대신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어떤 선도 그어 지지 않은 텅 빈 공책을 골라 가방에 넣었다. 편의점에 들러 담배와 라이터, 양초를 샀다. 무인카페에서 차가운 커피를 내렸다. 귀가 가렵다. 참을 수 없을만큼 가렵다. 손가락을 귓구멍에 넣고 사정없이 후볐다. 손 끝에 옅은 피가 묻어 났다. 나는 한 참을 걸어 시립도서관에 들었다. 


그 어느때보다 집중해야 했다. 그들을 만나야 했다. 나는 도서관 3층 명상실 제일 구석진 곳에 방석을 깔고 가부좌를 틀었다. 가방에서 양초를 꺼내 불을 붙이자 파라핀 타는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플레이 리스트의 버튼을 눌렀다. 카르네쉬의 ‘A journey of the heart’ 가 흘렀다. 외이를, 고막을, 중이를, 달팽이를 건너, 머리로, 가슴으로, 손가락, 새끼 발가락으로 번진다. 산스크리트어로 연민, 동정을 뜻하는 ‘카르네쉬’. 나는 조금 더 자비로워진 것 같다.


그러니, 이제 기억해 보자. 기억해 내야 한다. 그들, 그리고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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