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키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방탄소년단 멤버들에게 유재석 씨가 데뷔 전에 힘든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물었다. 멤버들이 인터뷰에서 나눈 이야기 중에는 앞날에 대한 불안함도 있었고, 고된 연습 이후에 식욕을 참고 계속해야 하는 다이어트도 있었다. 그중에서 연습생들이 많게는 십여 명까지 논현동의 한 가정집에 함께 살았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집이란 휴식과 안정감을 얻는 장소인데, 가족을 떠나서 혈혈단신으로 낯선 이들과 지낸다는 건 쉽지 않았을 거로 짐작한다. 오로지 꿈만을 좇느라 시간을 쪼개서 살았다고 해도 혈기왕성한 십 대의 젊은이들이 좁은 공간에서 매일같이 얼굴을 보다 보면, 아무래도 트러블 없이 순조롭게만 지낼 수는 없었을 거였다.
"연습생 시절부터 유명해지기 전까지 한 집에서 살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팀원들 간에 싸우지 않고 한 집에서 지낼 수 있었어요?"
BTS 멤버들은 ‘남자 일곱 명이 한 집에 모여 있는데, 싸우는 게 당연하다’고 입을 모아 대답했다. 하지만, 그들은 해결책으로 혹시라도 싸움이 발생하면, 이유를 불문하고 반드시 24시간 이내에 서로 화해하는 것을 철칙으로 했다.
나는 방탄소년단이 갈등에 대처하는 방식이 현명하게 느껴졌다. 멤버들 사이의 갈등을 장기적인 문제로 가져가지 않고, 바로 풀어버리기 위해서 적어도 24시간이라는 데드라인을 정해놓았다. 이 시간 안에 당사자들은 앙금을 털고, 갈등을 해체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문제 해결의 횟수가 거듭될수록, 멤버들은 어떤 갈등이 생겼더라도 24시간 뒤에는 우리 사이가 변함없을 거라는 믿음까지 갖게 될 테니 말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긴 하나, 사실 상 함께 있는 사람들과의 갈등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와 타인은 독립된 존재인 만큼,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론 갈등이 생긴다. 모든 갈등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도 없고, 나의 내면에 부정적인 감정이 차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참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참는 이유 또한 여러 가지가 있다.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밖으로 내보이는 건 왠지 속 좁은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냥 내가 한 번 참으면 돼지' 이렇게 대인배처럼 상황을 넘기는 게 더 그럴듯한 해결책 같으니까. 그리고, 상대방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건 실제로 불편한 상황을 맞닥뜨리는 일이라서 상당히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과연, 이 이야기를 해서 내가 얻을 것이 잃을 것보다 많은지'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바로바로 풀어내지 않고 내부에 쌓아두는 경우가 더 문제일 때가 많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속으로 삼켜버린 갈등이 나중에 발생하는 더 큰 문제의 시발점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건강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풀어내는 편이 더 좋다.
일터에서의 부정적인 감정의 대부분은 사실은 사소한 것에서 오곤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내 개인적인 영역이 누군가로부터 자꾸만 침범당할 때마다, 기분이 점점 나빠졌다. 동료 한 명이 나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지 않은 채, 내 마우스에 먼저 손을 갖다 대는 것이다. 내가 보고 있는 화면에 대해서 무언가를 설명해주고 싶어 하는 그의 성급한 의도는 알겠으나, 그러다 보면 내 손 위로 그 사람의 손이 겹쳐지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한테 설명을 먼저 요청한 적도 없었으니, 더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럴 때마다 화가났다.
'이 사람은 왜 나한테 마우스를 좀 써도 되냐고 미리 허락을 구하지 않는 거지?'
마우스를 내어 달라고 미리 말했으면, 당연히 사용하게 해 줬을 텐데 왜 자꾸만 무례를 범하는 지 모를 일이었다.
사람들 사이에는 말 그대로 물리적인 거리가 지켜지는 게 중요하다. 관계의 종류에 따라서 친밀감의 거리가 다르긴 하지만, 일터에서 만나는 동료들 간에는 대략 45cm~120cm 정도의 거리가 지켜져야 한다. 자칫해서 '친밀감의 거리'가 침범당하면, 뇌의 편도체가 활성화되면서 상황을 '위험'으로 인식하고 불쾌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무례함의 강도가 사소하다고 해서, 결과까지도 그저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자꾸만 그 사람이 나의 '친밀감의 거리'를 침범하는 일이 잦아지니까, 그럴 때마다 슬며시 부아가 치밀었다. 설명이고 뭐고 듣고 싶지도 않고, 화가 났다.
불필요한 신체접촉이 계속되면, 의도가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기 마련이다.
'이게 내 마우스지, 자기 거야?'
어느 날 참지 못하고, 마우스를 밀어주면서 말했다.
"마우스 달라고 말하면 줬을 텐데요."
따지고 보면, 그 일의 시발점은 그 사람의 무의식적인 습관이나 실수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일들로 인해서 사람과의 관계가 틀어지고,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 그런 일들의 누적으로 인해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한동안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서 상대방도 그런 내 감정을 느끼도록 놔두었다. 나중에 그 사람과 다른 일을 계기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정확하게 저 사건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일부 걷어내긴 했다.
중요한 건 내 안에 샘솟는 부정적인 감정을 모른 척하지 않아야 한다. 사실 상 부정적인 감정은 실체가 있는 나의 감정인 것이고, 상대방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모든 일엔 원인과 결과가 있다. 부정적인 감정 역시 당연히 이유가 있다. 사소하다고 해서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자꾸 무시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감당하지 못할 파고로 다가온다. 내가 나를 돌보지 않은 채, 내 감정을 모른 척하는 게 계속되면 나중에 부정적인 감정의 늪에 빠져서 한참이나 헤매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 부정적인 감정에는 반드시 적극적으로 대응해서 흘려버려야 한다. 부정적인 감정이 빠져나간 빈 곳을 다시 좋은 에너지로 채우면 된다.
하루 일과를 마칠 때쯤, 가끔씩 턱 밑까지 화가 차오를 때가 있다. 나의 감정 그릇에 딱 그만큼의 부정적인 에너지가 채워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의 감정 그릇의 용량을 파악해서 그날의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내 감정 그릇이 채워지거나, 넘쳐흐르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매일매일의 기분을 관리하다 보면, 그게 쌓이고 쌓여서 결국 인생 전체를 관리하게 된다.
그날의 부정적인 감정은 되도록 그날 풀어야 한다. 중요한 건, 혹시라도 누군가의 부정적인 감정을 내가 받았더라도 그걸 상대에게 되갚거나 다른 사람에게 릴레이 경주처럼 전달하지 않을 수 있는 해소 방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 상사는 고객으로부터 컴플레인 전화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바로 알 수가 있었다. 전화 통화를 끝내고 나면, 곧바로 씩씩 거리면서 팀원을 불러서 자신이 받은 부정적인 피드백을 그대로 전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참 안타까웠다. 언젠가는 터질 폭탄 돌리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떠안은 부정적인 감정을 고스란히 남에게 전할 수 밖에 없는 상급자의 고충을 이해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누구라도 그런 식으로 감정을 해소하거나 여과하지 않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주변에서도 느끼게 하는 문화가 거듭된다면 결국 조직에도 해로울 게 뻔하다.
나를 화나게 하고 힘들게 만드는 일의 원인이 과거와 현재 중에 어디에 속해 있는지 구분할 줄도 알아야 한다. 과거의 경험이라면, 그저 흘려보내는 편이 낫다. 현재 진행 중인 일이 아닌 이상, 그건 이미 지난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사는 게 부정적인 감정을 흘려버리는 데에 도움이 된다.
현재의 경험이라면, 앞에서도 말했듯 적극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의 원인에 맞대응하는 것을 추천한다. 부정적인 감정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게 뭔지 연구하고 찾아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든, 땀을 흘리고 숨이 찰 때까지 운동을 하든, 좋아하는 장르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든, 아무 생각 없이 게임을 하든, 그림을 그리거나 명상을 하든지 종류는 상관없다. 자신에게 맞는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아서 써먹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야 말로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