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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과 디자인,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

2023년도 리베란테 덕질을 시작하며...

by Balbi


23년도의 새로운 덕질은 소극적이고 조용하며, 관망하는 방식으로 가늘고 길게 지속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처음엔 괜한 짓을 하나 싶었지만, 최근 몇 년간 달라진 분위기와 체계적인 조직력을 보며 흥미를 느꼈다. 무엇이든 새로운 경험을 하면 배우는 것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다시금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 결국 좋은 경험이라 생각한다.


오랜 시간 디자이너로 일했지만, 결혼과 육아로 인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경력이 단절되었다.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다 보니 단시간에 초집중해야 했고, 밤을 새우며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일이 많았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런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어려워졌고, 일에 대한 회의감과 자신감 저하도 함께 찾아왔다. 더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리해 보려 했지만 뚜렷한 답을 찾기 어려웠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는 결론을 내리고 한동안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순간순간 주어진 기회와 일이 있으면 다 해보자는 태도를 가지기로 했다. 아이들 학교 활동이든, 개인적인 도전이든 무엇이든 시도해 보기로 했다.


덕질도 그 과정에서 만난 하나의 기회였다. 몇 년 전, 지금은 우주최강대스타가 된 아티스트의 덕질을 하면서 사람, 초상권, 저작권, 상표권 등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 이번에도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무엇을 배우게 될지 궁금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에 일단 부딪쳐 보기로 했다.


최근, 오랜만에 디자인 작업을 다시 하면서 내가 얼마나 이 일을 좋아하는지 새삼 깨닫고 있다. 한때 바닥까지 떨어졌던 자신감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나이 먹고도 할 수 있을까? 해도 될까?’라는 의문을 품었지만, 정작 시작해보니 일이 재미있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들어갈 때면 극도로 예민해지던 신경도 조금은 유연해졌고, 작업하면서 겪는 어깨와 손가락, 종아리의 통증도 해결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막노동이야, 막노동!’ 하면서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예전에 읽었던 『영혼을 잃지 않는 디자이너 되기』라는 책에서, ‘디자이너가 직면하는 가장 큰 적은 공포’라는 문장이 있었다. 클라이언트에 대한 공포, 실패에 대한 공포, 아이디어에 대한 공포. 이런 공포들을 극복하는 능력이 최고의 기술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동안 이런 공포들에 사로잡혀 내 일을 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익숙하고 안전한 곳에 머물며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디자이너가 직면하는 가장 큰 적은 바로 공포이다. 클라이언트에 대한 공포, 실패에 대한 공포, 아이디어에 대한 공포, 공포를 극복하는 능력은 아마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이 될 것이다. 가장 최악의 디자인, 가장 별 볼일 없는 디자인은 공포의 결과물이다. 공포는 공포를 낳는다. 클라이언트가 겁에 질리면 디자이너도 겁에 질리고, 결국 사람들도 겁에 질리게 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우리를 소심하고 위험을 회피하게 만드는 시장의 공포 속에서 운영된다. 우리는 대부분 익숙하고 안전한 곳으로 한걸음 물러남으로써 공포에 대처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한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돌아서서 ‘아, 삶은 따분해.’라고 말 할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 영혼을 잃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공포를 극복해야 한다.”


젊을 때보다 감각이 조금 떨어졌을지 몰라도, 이제는 공포감과 예민함을 조절하는 법을 배웠다. 통증을 다루는 법도 알게 되었다. 다시 시작해보자. 나이 먹은 중년이라고 디자인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무엇보다, 내가 재미있고 즐거우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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