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월 6월 광고디자인 진행건
멀찍이 떨어져 관망하던 덕질에서 적극적인 덕질로 방향을 바꾸며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고 있다. 주변에서는 쓸데없는 재능 낭비라고들 하지만, 지금처럼 방향을 잡지 못한 상황에서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이것저것 해보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에 시도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일들을 만들어가다 보니 ‘내가 디자인한 것을 사람들이 보고 좋아해주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행복해하는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랜 시간 해왔던 일이 지겹고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던 터라 새로운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깊이 있는 덕질을 하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 자신을 다시 찾아가고 있다.
지난 6월, 팬들이 리베란테의 팬텀싱어4 우승 축하 광고를 코엑스몰에 일주일간 진행했다. 여러 시안 중 회원들의 투표를 통해 최종 시안을 선정해 코엑스몰 두 곳에 광고를 게시하는 방식이었다. 운 좋게도 내가 디자인한 시안이 선정되어, 일주일간 코엑스몰 광고판에 걸렸다. 많은 팬들이 인증 사진을 남겼고, 마지막 날에는 아티스트 네 명이 직접 인증 사진을 남기는 깜짝 선물 같은 일이 벌어졌다.
“내가 디자인한 거 코엑스몰에 광고 중이야~”라고 언니와 동생에게 자랑하듯 말하니, 덕질 경험이 없는 언니와 동생은 왜 공짜로 해주냐, 상금이라도 있는 거냐는 식의 질문을 쏟아냈다. 덕질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웃을 법한 질문들이었다.
광고 기간 동안 한 번은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강남이 멀게만 느껴져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냥 넘길 참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날 덕주들의 인증이 올라오자 마음이 달라졌다. 덕질하는 팬 입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의 인증만큼 큰 선물은 없었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을 졸라 정말 오랜만에 강남으로 향했다.
코엑스몰에 도착해 광고를 기다리는 동안 게임 광고, 유산균 광고, 우주대스타의 광고가 지나가고, 마침내 푸른 배경의 화면이 사방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9개 기둥 36면에서 동시에 쏟아지는 장면에 절로 “우와” 소리가 나왔다.
‘와… 내가 디자인했지만 큰 광고판으로 보니 정말 멋지다!’
함께 간 남편과 둘째와 셋이 각자 원하는 위치에서 사진을 찍고 영상을 남겼다. 주변에는 마지막 날 인증을 남기기 위해 온 팬들도 함께 사진을 찍고 있었다.
감탄도 잠시, 직업병이 발동했다. 컬러가 내가 의도한 대로 나왔는지, 해상도가 낮아 이미지가 깨져 보이진 않는지 꼼꼼히 체크했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 데이터만 문제없다면 거의 그대로 출력되지만, 습관처럼 이런 것들을 확인하게 된다.
예전에 일할 때는 외장하드에 데이터를 담아 출력실에 가고, 교정을 따로 보고, 인쇄 감리까지 가서 하나하나 확인해야 했다. 지금은 그런 과정이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누가 디자인했는지 궁금해하지도 않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지만, 내가 디자인한 것을 보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나 역시 행복해진다. 디자인이라는 것이 참 직관적이라, 작업 과정에서의 고심에 비해 평가는 너무나 쉽고 간단하다. 젊은 시절엔 이런 평가에 상처도 많이 받고 일에 회의감도 들었지만, 이제는 담대해졌는지 유연해졌는지 크게 상처받지 않는다.
‘음… 맘에 안 들 수도 있지, 다 생각이 같은 건 아니니까.’
수정 요청이 들어오면 ‘OK, 어떻게 수정할까? 안 되는 게 어딨어~ 수정 가능하지~’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확실히 상황 대처 능력이 유연해지고 담대해졌다. 모든 상황에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업무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단단해졌다.
이 단단해진 마음을 바탕으로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해내고 싶지만, 쉽게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무엇이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지 냉정하게 하나씩 적어보아야겠다.
무엇이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