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일은 오늘, 8월 4일이다. 한여름 삼복더위의 중심에 있다. 에어컨도 없던 시절, 무더운 날씨 속에 엄마를 고생시키며 태어난 딸이다. “너도 고생 좀 해봐라!” 하고 하늘이 장난친 걸까. 나 역시 첫째를 7월 말에 낳았다. 아들이 예정일에 태어났다면, 나와 딱 하루 차이였을 것이다.
쨍쨍 내리쬐는 햇빛은 해변에서나 반갑지, 어디서든 그늘을 찾아 헤매게 만드는 한여름의 폭염은 반갑지 않다. 여튼 우리 모자의 생일은 늘 중복 즈음에 걸쳐있다. 그래서일까. 애미나 아들이나 예민하고 까칠하다.
어릴 적 부러웠던 건 학기 중 생일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학교에서 자연스레 쏟아지는 축하의 말과 눈길, 그건 그들만의 특권 같아 보였다. 반면 내 생일은 항상 여름방학 한복판, 그것도 휴가의 절정기. 친구들의 축하는커녕 연락도 닿기 어려운 시기라, 어쩐지 손해를 보는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짐했다.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절대 방학 중에는 낳지 않겠다고. 그런데 웬걸, 아들의 생일은 나보다 엿새 빠른 7월 29일. 결국 아들도 매년 여름방학 생일이다. 하지만 ‘라떼’보다는 낫다. 핸드폰과 SNS 덕분에 어디선가 축하 메시지는 도착하니까 말이다.
성인이 된 후로는 남들의 축하를 기대하기보다 스스로 내 생일을 챙기고, “오늘 내 생일이야~” 하고 엎드려 절받기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릴 땐 그냥 지나치기도 했지만, 이제는 내 요구가 아주 노골적이다.
“엄마 생일이다. 선물 줘. 선물 없으면 손편지나 카드도 좋아!”
우리 가족은 늘 생일 당일 아침엔 미역국, 저녁엔 외식을 한다. 하지만 올해는 아들의 학원과 밴드 스케줄로 일정이 꼬였다. 그래서 아들과 내 생일을 합쳐 일요일 점심에 한 번 외식으로 퉁쳤다.
그 자리에서 내가 선물을 노골적으로 요구하자, 아들이 주머니에서 종이를 하나 꺼냈다.
“엄마, 이거 청소년 수련관에서 받은 커피 쿠폰인데, 선물로 줄게.”
“음… 그래. 이거라도 어디야.”
하지만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마음이 바뀌었다.
“아들, 이거 안 되겠어. 엄마 이거 안 받을래. 네가 이걸로 커피를 사다 주든가, 아니면 다른 선물을 줘.”
“엄마, 나는 카드 만들어 줄게.”
둘째는 도화지, 물감, 가위, 풀 등을 준비해 몇 시간을 사부작거리며 근사한 팝업카드를 만들어 주었다. 이럴 때 정말 ‘딸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실감한다. 감성 충만한 아들이라면 모를까, 우리집 아들에게선 1도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니까.
‘생신카드’라는 제목이 적힌 카드 표지를 보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서현아, 그냥 생일이라고 해줘. 생신이라니, 할머니 된 기분이야.”
“친구도 아니고 어른인데 생신이 맞잖아.”
“그래도 담부터는 그냥 생일이라고 해줘.”
오늘은 아들 손에 들려오는 커피든 젤리든, 뭐든 꼭 하나는 받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