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나의 대화는 어찌 보면 늘 도돌이표 같다. 각자의 관심사를 이야기하며 의견을 구하는 듯하지만, 결국은 정해진 답에 동의를 구하는 형식이 된다.
지난겨울, 코트 한 벌을 사겠다고 인터넷 쇼핑몰을 뒤져 각기 다른 컬러와 디자인의 코트 세벌을 골라 놨다. 아들과 딸에게 보여주며 어떤 디자인이 나에게 어울리겠는지 의견을 물었다.
“엄마가 세 벌 골라놨는데 한번 봐봐. 디자인이랑 컬러 중 뭐가 어울릴지.”
“엄마, 이거 예쁘다. 이게 제일 낫네.”
“근데 컬러가 너무 밝아서 좀 부해 보이지 않을까? 이게 더 날씬해 보일 것 같지 않아?”
“아~ 뭐야. 결국 답은 정해져 있었네. 우리 의견은 그냥 확인용이었잖아.”
골라 두었던 세벌의 코트 중 내가 맘속으로 가장 우선순위에 두었던 디자인을 모두가 함께 동의해 주기를 바랐던 걸지도 모르겠다.
냉정히 생각해 보자.
선택의 순간, 진심으로 결정 장애가 와서 고르지 못했던 것이었는지, 아니면 내 선택에 확신이 서지 않아서 타인의 동의를 바랬던 것인지.
사람의 성향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후자의 상황이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중요한 결정에 98% 이미 결정은 내리고 남은 2%만의 동의를 구하고 최종 결정을 기다리는.
아들의 관심사는 기타와 기타 연주에 필요한 이펙터 등이다.
이 녀석과의 대화는 오직 그런 장비를 뭐로 살지 내게 물을 때뿐이다.
“엄마, 이거 봐봐. A모델이랑 B모델이랑 성능은 이런 차이가 있는데 가격은 거의 두 배 차이야. 그럼 어느걸 사는 게 나을까?”
이런 물음이 끊이지 않는다. 페달보드를 사는데도 사이즈를 어떤 것으로 하는 게 좋을지 묻고 또 묻고……. 듣는 입장에서는 진이 빠진다. 답을 해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이 많다 보니, 이제는
“엄만 잘 몰라. 학원 형들이나 선생님한테 물어봐.”
하며 슬쩍 넘겨버리게 된다.
사춘기라는 벼슬을 틀어쥐고 방에 박혀 목소리도 잘 들려주지 않는 지금, 그런 질문이라도 해주는 게 고맙다고 생각해야 할까.
하지만 결국은 또 제자리로 돌아가는 도돌이표 같은 대화에 점점 지쳐간다.
그래서 또 목소리 높여 소리를 꽥 지르고 만다.
“야! 돈이 네 통장에 들어오면 구매 직전에 모델을 골라놓고 물으라고! 당장 살 것도 아닌데 계속 물어가며 고민만 하면 뭐할 건데!”
“아니……. 언젠가는 살 거니까 물어보는 거지…….”
결국 모든 선택은 스스로의 결정이 가장 중요하다. 이미 마음속에선 98%쯤 답을 정해두고, 나머지 2%의 동의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아니라고? 조용히 곱씹어 보기를. 당신도 어쩌면, 마지막 마침표 하나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