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어도 태어난 순서와 시기에 따라 기억과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1남 3녀 중 차녀로, 두 살 위 언니와 세 살 아래 남동생, 일곱 살 아래 여동생이 있다. 사남매가 모여 옛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같은 사건도 기억과 해석이 제각각이다. 지금은 일곱 살 차이도 크지 않게 느끼며 친구처럼 지내지만, 성장기에는 그 차이가 분명 컸을 것이다.
막내에게는 지금 중학교 2학년인 쌍둥이 아들딸이 있다.
그녀가 조카들만 한 나이였을 때, 우리 집은 폭삭 망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빨간 딱지가 집안 곳곳에 붙었다. 30평대 아파트를 팔아도 해결되지 않던 빚에 온 가족이 힘겨웠던 시절이다.
그때 나는 스물두 살이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엔 그 시절이 희미하다. 안 좋은 기억은 금세 지워버리는 내 머릿속 ‘지우개’ 때문이다. 빚쟁이들이 독촉하던 장면만 어렴풋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데 막내는 그 모든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특히 지금 조카들이 자신의 그 나이이기에, 그 시절이 더 생생하게 떠오른다고 한다. 빚쟁이들이 학교까지 쫓아와 도망치던 순간, 느닷없는 모멸감과 두려움, 치욕스러움이 여중생이었던 그녀를 짓눌렀다.
한창 사춘기였으니 부끄러움, 억울함, 분노가 뒤섞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가족 모두가 각자 살아남기에 바빴다.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어줄 여유가 없었다. 말 그대로 ‘각자도생’의 시절이었다. 그 여파로 우리 사남매는 부모의 도움이라는 것을 받아본 적이 없다. 대학도, 결혼도 모두 스스로의 힘으로 했다. 좋게 말하면 자립심이 강한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으면 부모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리고 나 역시,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어떻게 그런 상황까지 가게 되었는지 아무도 말문을 열지 않는다. 솔직하게 힘들었던 점과 원망을 털어놓는다면 마음속 앙금이 옅어질지도 모르지만, 그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모든 화살이 엄마를 향할 것을 알고 있다.
평생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오며, 30년 전 일을 지금까지도 엄마 탓으로 돌리며 쉼 없이 원망하던 아버지. 그 원망이 조금 누그러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아직도 술이 들어가고 기분이 나빠지면 옛 원망이 다시 쏟아진다.
TV 속 상담 프로그램에서는 오래된 감정을 대화로 풀어내고 서로 사과하며 화해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 그런 결말이 찾아올 것 같지는 않다. 누군가 먼저 말을 꺼내는 순간, 잦아든 불씨가 다시 활활 타오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 일을 꺼내지 않는다. 그냥 ‘지나간 과거’이자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겨둔다.
막내와 깊이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 시절 여중생의 마음을.
중학생 아들을 키우는 엄마가 되고 나서야, 그때의 동생이 참 가엾게 느껴진다.
결국, 같은 시간을 지나도 기억의 무게는 제각각이다. 누군가에겐 잊힌 시간이고, 누군가에겐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