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홀로서기

by Balbi

03 홀로서기


가온엄마의 말을 들은 후, 준영엄마는 서서히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웃었지만, 마음속엔 이미 선이 그어지고 있었다. 일주일에 세 번 모이던 브런치도 한 번으로 줄였다. 모임에 나가도 더 이상 푸념을 늘어놓지 않았다. 말라붙은 가지 끝에서 잎이 떨어지고, 그 자리에서 새싹이 트듯, 준영엄마의 마음에도 조용히 변화가 움트고 있었다. 말수가 줄어든 준영엄마에게 그녀들은 유도심문 같은 질문을 하기에 바빴다.


“준영엄마 요즘 왜 이렇게 조용해? 무슨 일 있어? 또 준영이 문제로 누가 뭐라고 한 거야?”

“아리엄마 또 뭐라고 하나? 지난번에도 싸움 가지고 엄청 시끄럽게 굴더니.”

“그냥 편히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그런가 요즘 마음이 편해져서 준영이 행동이 크게 문제로 느껴지지 않더라구요. 전문가들이 다 괜찮다는데 맘 편히 갖고 지켜보려구요. 지난번에 아리랑 싸운 건 사실이고 없는 말 만들어서 하는 거 아니면 그냥 냅둬야지 어떻게 해요. 자기 입 가지고 자기가 말한다는데 그걸 쫓아다니며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런데 말을 만들어서 없는 말 하고 다니거나, 뒤에서 헛소문 퍼뜨리는 건 절대 안 넘어갈 거예요.”


준영엄마의 말에 서로 눈짓을 하며 흠찟 놀라는 영호엄마와 호태엄마다. 이렇게 준영이에 대해 정리를 하며 선을 그으니 더 이상 그녀들은 이런저런 말을 붙이지 않았다.


그녀들과의 모임을 줄이며, 준영엄마는 요가를 시작했다.

아이를 입학시키고 줄곧 불안에 시달렸던 자신을, 이제는 조금은 다독이고 싶었다. 매일 아침, 조용히 바닥에 몸을 붙이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자, 굳어 있던 몸은 서서히 풀어졌고, 몸이 유연해지자 마음에도 작은 틈이 생겼다.

그 틈을 따라, 오래도록 외면했던 마음속 풍경이 서서히 드러났다. 타인에게 지나치게 의지했던 나약함, 영호엄마와 호태엄마의 호의를 아무런 경계 없이 받아들였던 지난날의 자신이 떠올랐다.

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갑작스러운 친절은, 때로는 경계해야 할지도 몰라.’

이제는 타인이 아닌, 오직 자신과 아이에게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학급에서의 소소한 일이 몇 건 있었지만, 준영엄마가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12월, 종업식이 다가왔다. 가온엄마의 제안으로 1학년 종업식 파티가 열렸고, 키즈카페 룸에는 아이들과 함께 온 엄마들 15명이 모였다. 영호엄마와 호태엄마는 아이들 학원 스케줄을 뺄 수 없다며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모임에 참석한 엄마들은 각자의 1년을 돌아보느라 바빴다.


“입학이 엊그제 같은데, 1년이 정말 순식간이었어요.”

“그래도 한 해 학교 다니니 이제 형님 같긴 해요.”

“우리 애는 생일이 늦어서 완전 유치원생 같았는데, 지금 보니 학교 급식 먹으며 많이 자랐어요. 내년엔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아요.”

“하교하면 낮잠 자느라 학원도 제대로 못 보냈는데, 영호나 호태 같이 듬직한 애들이 얼마나 부럽던지…”

“둘째는 꼭 1월생으로 낳고 싶어요. 물론 계획대로 될지는 모르지만요.”


웃고 떠드는 중, 가온엄마가 말을 꺼냈다.


“어, 모르는 사람 많네! 우리 유치원 엄마들은 대부분 알았는데.”

“뭘요?”

“영호랑 호태, 사실 12월생이잖아요. 출생신고를 늦춰서 1월로 했대요. 한 살 억울하게 먹는 게 싫어서 그랬다더라고요. 생일 늦은 친구들하고는 1년 차이나는 거 맞아요. 엄밀히 따지면 형님이죠. 아리엄마 우리 유치원 때 같이 들었잖아요.”

“아 맞다. 기억나요. 그 얘기 유치원 때 나왔었죠. 잊고 있었네요. 그냥 듬직하고 점잖다고만 생각했네…”


키즈카페 룸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말은 없었지만, 준영엄마가 처음 느꼈던 배신감이 조용히 번져갔다. 아이들로 인해 힘들어하고 고민하는 엄마들을 위로하듯 군림하고, 때로는 자신들만의 여유를 포장하고 있었기에 그 잠깐의 정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커피를 마시던 재윤엄마가 조용히 말했다.


“이런 말 맞는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배신감 들어요.

애들보다 한 살 많게 입학시켜놓고, 듬직하네 어쩌네 소리 들으며 우월감에 젖어 있었던 거잖아요. 그 와중에 우리한텐 걱정하지 말라며 동정의 눈빛까지… 소름이에요.”

“저 이런 방법이 있는 줄 오늘 처음 알았어요. 알았으면 나도 그렇게 할걸…

생일 늦은 애 학교 보내놓고 나만 속 끓고, 애는 애대로 스트레스 받고….”

“저 먼저 일어날게요. 다음에 봬요.”


재윤엄마의 한마디를 시작으로 엄마들 사이엔 제각기 다른 반응이 번졌다. 재윤엄마처럼 배신감을 토로하는 이들, 그런 방법이 있었냐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 그 자리가 불편해 슬쩍 일어나는 이들까지...


조금 전까지 웃음소리로 가득하던 공간은 금세 침묵과 찜찜함이 뒤섞인 공기로 채워졌다.

키즈카페 룸에 모인 엄마들의 반응을 보며 준영엄마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누군가의 위로에 기댄다는 건 결국 내 감정을 회피하는 일이었어. 그때 그 순간, 내 감정을 정확히 들여다봤어야 했는데.... 내가 흔들릴 때, 남의 말이 아닌 내 감정을 먼저 살펴봤어야 했어. 이제는 중심을 잃지 않고 남에게 휘둘리지 않겠어. 나와 내 아이에게만 집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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