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겨울방학과 타고난 리더십의 비밀

by Balbi

04 겨울방학과 타고난 리더십의 비밀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영호엄마와 호태엄마는 더 바빠졌다. 방학 특강으로 오전 시간에 가능한 수업들을 알아본 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기 시작하니, 방학 전보다 오히려 더 바빠졌다. 월·수·금은 피겨스케이팅, 화·목은 스피치 학원. 아이들 겨울방학이 아니라, 엄마들의 겨울캠프 같았다.


스피치 학원은 원래 오전 강의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호엄마와 호태엄마의 끈질긴 요청 끝에, 화·목 오전 11시 특강반이 새로 생겼다. 세 살 위 첫째가 있는 호태엄마가 정보력이 있다면, 그 정보를 바탕으로 실행하는 건 영호엄마의 몫이었다.


작년, 호태엄마는 호태 형을 이 스피치 학원에 보냈고 효과를 봤다고 믿고 있었다. 매년 나가던 학급 회장 선거에서 번번이 떨어지던 호태 형이, 학원 특강을 받은 후에는 드디어 회장이 되었던 것이다. 다른 엄마들이 “요즘 시대에 웅변학원 같은 걸 왜 보내?”라며 고개를 갸웃할 때, 그녀는 혼자만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밀을 영호엄마에게만 은밀히 공유했다.


사실 호태 형이 간절히 원했다던 학급 회장 자리는 호태엄마 자신의 욕심이었다. 그녀는 학창 시절 성적은 괜찮았지만, 리더십에서는 항상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어른이 된 후에도 마음 한편엔 늘 채워지지 않은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호태엄마는 그 아쉬움을 아이들을 통해 풀고자 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루겠다는 강박은 그녀를 조금씩 지배했고, 그것이 결국 '회장 만들기'라는 집착에까지 이른 것이다.


“호태 형이 2학년 때부터 학급 회장 하겠다고 하더니 계속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예전에 우리가 다녔던 웅변학원을 찾아봤는데, 요즘은 그런 학원이 없잖아요. 대신 스피치 학원이 있더라고요. 전화해 보니까 고등학생이나 취업 준비생 면접 준비 위주래요. 초등반은 없냐고 하니까, 저처럼 가끔 문의하는 엄마들이 있어서 겨울 특강반을 만든다길래 바로 넣었죠. 그 덕분인지 호태 형이 4학년 때 회장 됐잖아요.”

“어머, 그 학원 진짜 잘 가르치나 봐.”

“이건 언니만 알고 있어요. 스피치 선생님한테 부탁하면 연설문도 써줘요.”

“초등학교 회장 선거 연설문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선생님한테까지 부탁해? 애들이 자기 수준에서 준비하면 되는 거 아니야?”

“에이, 언니 너무 모르신다. 요즘은 우리 학교 다닐 때랑 달라요. 애들이 유튜브 같은 걸 많이 보니까, 콘텐츠처럼 재밌게 스토리를 짜거나, 어른스럽게 해야 한다니까요. 이번 겨울방학에 우리 호태랑 같이 보내요. 문제는 오전반이 없다는 거예요. 오전 11시에 하나 만들어주면 딱 좋은데.”

“그런 건 내가 잘하지. 날 잡아. 같이 학원 상담 가자. 이렇게 저렇게 얘기하면 반 하나쯤은 만들어주겠지.”


결국 두 엄마의 끈질긴 설득으로 11시 특강반이 개설되었다. 영호와 호태는 스피치 학원 특강을 받은 덕분인지 2학년이 되면서 각자 반에서 회장이 되었다.

‘역시 타고난 리더십’이라는 칭찬이 쏟아졌고, 아이들을 통해 소식을 들은 엄마들 중, 영호와 호태의 출생년도를 아는 이들은 조용히 코웃음을 쳤고, 모르는 이들은 ‘참 듬직한 녀석들’이라며 감탄했다.


아이들이 2학년이 되며 조금은 숨통이 트인 엄마들은 오랜만에 브런치 모임을 가졌다. 수다가 한창 무르익을 즈음, 자연스레 화제는 며칠 전 있었던 학급 회장 선거 이야기로 흘렀다.


“영호랑 호태 회장된 거 축하해요. 역시 듬직하고 형님 같으니 애들도 둘을 뽑았나 봐요.”

“우리 애 말로는 영호가 연설을 엄청 재밌게 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반 호태는 엄청 멋지게 했다네요. 우리 애가 ‘엄마, 뉴스에 나오는 아저씨 같았어’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어른스럽게 멋졌구나 싶었죠.”

“준비 따로 시킨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잘했대요?”


가온엄마가 물었다. 영호엄마와 호태엄마는 능청스럽게 시치미를 뗐다.


“학급 회장 나가는데 뭘 준비해요. 저도 몰라요. 지가 알아서 하더라고요.”

“우리 호태도요. 따로 신경 안 썼어요. 형 하는 거 보면서 배웠나 보죠.”


몇몇 엄마들은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며 부러움과 감탄이 섞인 눈빛을 주고받았고,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영호와 호태는 겨울방학 두 달 내내 스피치 학원에 다니며 철저히 준비했다. 연설문은 선생님이 써준 걸 받아 외웠고, 발표 톤, 시선 처리, 손짓까지 세세히 훈련받았다. 그 ‘자연스러운 연설’도 사실은 철저한 반복 연습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그런 속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그저 ‘듬직한 형님 같은 아이들’이라며 박수와 찬사를 보냈다.


그날 브런치 모임은 웃음과 칭찬 속에서 마무리됐다.

누가 진짜 연설을 한 것인지—아이들인지, 엄마들인지—알 수 없는 겨울방학은 그렇게 지나갔고, 새 학년이 밝았다. 그리고 다시 봄이 오면, 또 누군가는 ‘타고난 리더’라는 찬사를 받을 것이다. 늘 그렇듯, 되풀이된 연습과 조용한 연출은 감춰지고, 그 보이지 않는 손길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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