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아이들 따라 회장이 된 엄마들
영호와 호태가 회장이 되고 일주일 후, 학교의 총회가 열렸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난 뒤, 영호엄마와 호태엄마는 아침부터 같은 반 엄마들 중 연락처를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리느라 분주했다. 총회에 앞서 함께 커피 한 잔 마시고 가자는 내용이었다.
올해도 영호와 같은 반이 된 준영이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준영아, 오늘 총회 갈 거지?”
“네, 가야죠. 새 학년 선생님 처음 뵙는 자리인데요. 안 가는 엄마들도 있대요?”
"큰애 있는 집은 꼭 갈 필요 없다고 안 간다는 엄마들도 있고, 회사에서 휴가 못 내서 못 가는 엄마들도 있더라구."
“아, 꼭 가야 하는 건 아니구나.”
“그래도 가는 게 좋지. 선생님도 뵙고, 1년 동안 아이들 어떻게 지도하실지 들을 수 있으니까. 총회가 2시 시작이니까, 학교 앞 스벅에서 12시에 커피 한 잔 하고 같이 갈래?"
"네, 좋아요."
약속 시간에 맞춰 스벅에 도착하니, 여러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영호엄마 주변엔 같은 반 엄마 다섯 명이 모여 있었다.
“안녕하세요. 다들 일찍 나오셨네요.”
준영엄마가 인사하자, 모여 있던 엄마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아침부터 영호엄마가 일일이 전화를 돌려 다 불러 모은 것이다. 잠시 후 두 명의 엄마가 더 합류해 총 8명의 엄마들이 모여 수다를 나누었다.
총회 시간이 가까워지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교 정문 앞에 호태엄마가 보였다. 같은 반 엄마들과 함께 있는 걸 보니, 그녀의 반도 티타임을 마치고 학교로 이동한 듯했다. 그 사이에, 이번에 호태와 같은 반이 된 재윤엄마가 보였다. 오랜만에 만난 준영엄마와 재윤엄마는 반갑게 인사했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네, 잘지내셨어요? 지난번 브런치 모임에 못 나갔더니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재윤이네 반도 오늘 티타임 하고 오나봐요. 우리 반은 스벅에서 만나서 차 한잔 하고 오는 길이에요.”
“네, 우리 반은 탐스에서 모여 차한잔 하고 왔어요. 아침부터 호태엄마가 전화를 돌려 다 모았더라구요.”
재윤엄마의 말에는 미묘한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어차피 학교에서 만날 텐데 굳이 아침부터 전화를 돌려가며 모임을 준비했어야 했나 하는 불편한 기색이었다. 여러 명이 모이는 자리인줄 알았으면 굳이 일찍 서둘러 나오지 않았을 재윤엄마였다. 커피한잔 하고 학교로 이동하자는 호태엄마의 제안에 단둘이 만나는 줄 알고 나온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아이들의 출생년도에 관한 이야기였다. 다른 사람을 통해 들은 이야기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지만, 다른 엄마들이 있으니 그 말을 꺼내보지도 못한 채 학교로 향하는 길이었다. 괜스레 헛걸음한 기분에 입술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엄마들은 각자의 교실로 들어가 새로운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앞으로의 1년 동안의 교육 방향을 설명했고, 이어 학부모회 반대표 지원자를 받았다. 영호엄마는 아이가 회장이니 자진해서 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총회가 끝난 후, 재윤엄마는 호태엄마의 반대표 수락 과정을 두고 준영엄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호태엄마, 그런 거 하고 싶어서 호태 회장 시킨 거 아니에요? 그냥 '제가 할게요.' 하면 될 것을, ‘저 그런 거 못해요’ 하며 이리저리 빼더라구요! 제가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다 아는데...”
“정말 나서는 게 두려워서 그런 걸 수도 있죠.”
”제가 들은 게 있다니까요. 들은 게 있는데 교실에서 그러는 거 보니까 너무 웃긴 거에요.”
“무슨 이야기를 들었길래요?”
“영호랑 호태 이번에 회장 시키려고 겨울방학 특강 보냈다잖아요.”
“뭐 애들이 하고 싶어하면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그 학원이 단순한 특강 학원이 아니더라구요. 선생님이 연설문 원고도 써주고 아이들 앞에서 연설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연출까지 해주는 그런 곳이래요.”
“그런 데도 있어요?”
"재윤이 말로는 호태가 선거 연설할 때 뉴스 앵커처럼 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때는 그냥 잘하네 싶었는데, 강남 사는 친구랑 통화하다 알게 됐어요. 연설문까지 준비해주는 스피치 학원이 있다는 거예요. 그 친구 말로는, 신도시에 요즘 유행하는 학원들 많이 들어오니까 너희 동네에도 있을 거라며… 찾아보니 진짜 있더라구요. 제 친구가 하는 말이 애들이 수준 이상으로 연설을 잘했다 싶으면 그 학원의 손을 거친 걸 수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영호랑 호태가 벌써부터 명예욕이 있나 봐요.”
“그게 애들 명예욕이겠어요? 엄마들 욕심이지.”
재윤엄마에게 단단히 찍힌 영호엄마와 호태엄마였다.
영호와 호태가 회장이 되자, 두 엄마도 덩달아 바빠졌다. 엄마들 사이에서는 "애들이 회장이지, 엄마들이 회장이야? 왜 저래?" 하는 불만 섞인 말들이 심심찮게 들렸다. 실제로 영호엄마와 호태엄마는 아이들이 회장이 되자 마치 자신들이 반의 리더인 듯 행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