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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사유

by Balbi


나에게 첫인상은 상당히 중요하다. 지금껏 첫인상을 보고 내린 상대에 대한 판단이 크게 빗나간 적은 거의 없었다. 적중률이 90%는 되는 것 같다.


첫인상이라 함은 단순히 잘생김이나 못생김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론 잘생기고 예쁘면 호감도가 올라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첫인상이라고 하는 이 단어는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호감도가 상승하는 준수한 외모뿐 아니라 그 사람의 눈빛, 시선처리, 말투, 상대에 대한 배려, 평소 기본태도 등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덕질에서도 첫인상은 큰 역할을 했다. 첫인상에 그의 노래나 연기가 더해져 단번에 빠져든 적도 있고, 서서히 스며든 적도 있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순간 이미지를 기반으로 판단을 내리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지난겨울, 비상계엄이 아니었다면 남편과 나는 각자의 언어로 각자의 관심사를 말하기 바빴을 것이다. 나는 아티스트의 노래를, 남편은 정치를 말이다. 하지만 그날 이후 우리의 대화는 하나의 주제로 모아졌다. 때로는 열을 올리고, 때로는 기막힘에 헛웃음을, 또 때로는 통쾌함에 박수를 보냈다. 그 많은 대화를 나누며 정책을 운운하는 남편에게 늘 이야기 했던 것이 있다.


“정책 중요하지! 그런데 잘 생각해봐. 사람들이 정치인의 입에서 나온 공약을 얼마나 기억하겠어? 굵직한 것만 남고 세세한 건 기억도 못 해. 대부분 정치인의 이미지를 보고 판단한다고.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이슈가 좋든 나쁘든 언론과 방송에 자주 나오면 그게 자기한테 유리하다고 생각해. 자주 노출돼 익숙해지면, 그 익숙함이 친근함으로 바뀌거든. 그러면 선거철에 사탕발림 공약 하나 내밀고 당선을 노리는 거지. 유권자는 공약을 보고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언론과 방송이 만든 친근함이 무기가 되는 거야. 공약은 어렵지만 이미지는 직관적이잖아. 그래서 난 정치인에게 공약보다 이미지가 훨씬 중요하다고 봐.”


그래서일까. 이렇게 언론과 방송으로만 접하던 아티스트와 정치인을 직접 대면했을때, 그동안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달라 당황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결국 우리는 언론과 방송이 만든 이미지 속 인물을 보고 있는 셈이다. 아티스트나 정치인이 “나 원래 그런 사람 아니에요. 당신들이 마음대로 생각하고 판단해놓고 왜 나한테 뭐라 그래요?”라고 한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우리의 몫일까? 아니다. 그들 역시 안다. 자신들의 눈빛, 말투, 태도가 대중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말이다. 우리는 그 계산된 행동 속에서 드러나는 작은 디테일에 빠져 덕질하지만, 대중은 대부분 그 디테일까지 보지 않는다.


이런 내 생각에 방점을 찍어준 건 얼마 전 유튜브 방송에서 들은 박구용 교수의 말이다. 그는 이 현상을 ‘이미지 사유’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이미지를 단순히 외형이나 장식으로 보지 않고, 이미지를 통해 생각하고 판단하며 세계관을 형성한다고 말이다. 정치인의 이미지는 단순히 얼굴·제스처·스타일 같은 겉모습이 아니라, 대중의 정치적 감각과 판단을 움직이는 지적·정서적 장치라는 것이다.


TV, 인터넷, 유튜브, 인스타 등 시각적 이미지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이미지는 사실상 가장 강력한 정치적 언어가 된다. 긴 문장속에 담긴 메시지를 이해하기보다 이미지화 된 직관적인 단어로 판단하는 세상이니 말이다.


결국 ‘이미지 사유’란 정치인의 이미지가 단순한 외형을 넘어, 유권자가 그를 바라보고 선택하는 사유의 틀 자체가 된다는 의미다.


우리는 이미지로 사유하고 판단함을 경계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판단 기준이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라고 믿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감정에 크게 기대고 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개인의 가치 판단도 감정을 기반으로 논리로 전개된다. 그렇다면 가치 판단의 기준이 논리적이냐 비논리적이냐는 논외로 해야 하는 걸까.

옳고 그름, 선과 악의 구도로만 가치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일까?


이미지가 지배하는 시대,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 그 질문이 유난히 무겁게 다가오는 늦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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