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 80주년 전야제의 단상
어느 순간부터 달력의 빨간 숫자, 국경일의 의미가 특별하게 다가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말처럼 쉬는 날이 주중에 하루 더 있는 날 정도라는 느낌이 있을 뿐 특별하지 않았다. 그러나 덕질하던 아티스트를 군에 보내고, 그가 국가 행사에 등장하는 것을 보기 위해 각종 기념식을 챙겨보기 시작하며 국경일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다.
덕질의 순기능이 아닐 수 없다.
여러 국경일 중에서도 삼일절과 광복절은 유난히 마음 깊이 끓어오르는 분노와 해방감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12월 3일 비상계엄과 맞물려 맞이한 광복 80주년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여러 기관과 지자체에서 기획한 행사 중 하나에는 꼭 참석해 그 특별함을 기념하고 싶었다. 그래서 참석한 행사는 국회에서 열린 광복 80주년 전야제였다.
광클릭으로 예매에 성공해서 기쁜 마음으로 참석했지만, 관대함과 인류애가 넘치는 그 순간에도 까칠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이 꼭 있었다. 많은 사람이 질서를 지키며 차례대로 입장해야 하는 순간 스리슬쩍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 살지 마오! 당신들은 이런 역사적인 행사에 참여할 자격이 없소!”
조금은 오바스럽고 작위적인 표현일지 모르지만, 그들의 행태는 마치 독립의 순간에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않다가 해방이 되니 ‘나 역시 당신들과 같은 뜻이었소.’ 하는 이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다른 행사도 아니고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모두가 뜻 깊은 순간을 기념하고자 나온 행사에서 새치기라니. 그들은 분명 행사에 등장하는 아티스트에만 눈이 멀어 있는 부류일 것이다.
전야제 당일, 우리는 행사 시작 세 시간 전에 국회에 도착했지만 이미 수많은 인파가 줄을 서 있었다. 줄의 끝은 어디일까? 국회 정문을 기준으로 270도를 돌아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두 시간이 지나 국회 내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두 시간 줄을 서있는 동안 누리 앞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은근슬쩍 새치기 하려는 이들을 보며 ‘아이들을 앞세우고 그러고 싶니? 안 창피하니?’ 라는 말을 삼키며 친절히 줄의 끝을 안내했다. 그래도 그런 부류는 그나마 좀 나은 거였다. 입구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4줄로 섰던 줄이 출입 확인을 하며 약간 흐트러진 틈을 타 아무렇지 않게 끼어드는 이들까지 있었다. 그 순간에는 혼잡스러움으로 뒤로 가야 한다는 말을 못한 것이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곳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은 두 시간 이상 기다림을 견뎠는데, 자신은 무슨 권리로 그런 특권을 누리려고 하는지, 양심은 어디 있는 것인가. 당신 같은 사람은 이 행사에 참석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모든 사람의 생각이 같을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러나 인간으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양심과 도덕심은 가지고 살자.
자신의 양심 없는 행동을 약삭빠름, 현명함이라고 포장하지 마라.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오래전 우리 민족이 고통 속에서 산 것이다.
광복 80주년 전야제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었다. 우리가 함께 기억하고 기념해야 하는 역사적 축제였다. 누군가의 약삭빠름이 아닌, 모두의 기다림과 질서 속에서 더 빛이 났다. 그 자리를 지킨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함께하는 광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