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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정치에는 진짜 전문가가 없는가

by Balbi


전문가란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나는 한 분야에서 전문가 행세를 하려면 적어도 그 분야에서 최소 10년의 실무 경험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10년도 전문가라고 내세우기에는 결코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짧은 경험만으로 전문가 행세를 하려는 이들이 너무 많다.


오랜 시간 디자이너로 일하며 전반적인 프로세스가 보이고 이해가 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것이 내가 일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거나 아둔해서가 아니다. 한 분야에서 숙련도가 쌓이려면 물리적인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전문가인 척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걸 피부로 느낀 건 아이들이 어릴 때였다. 육아로 힘들어하던 시절, 또래 아이를 키우던 동네 엄마는 자신이 유아교육 전문가인 양 떠들어댔다.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어려 사회 경험도 적었고 육아 경험도 비슷했다. 그런데 유치원 교사 경력 6~7년을 내세워 전문가 행세를 하는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었던 기억이 있다. 그 짧은 경력으로 전문가라니… 그 후로 나는 ‘최소 10년 이상의 실무 경력자만 전문가로 인정한다’는 나만의 기준을 세우게 됐다.


이렇듯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의 시간 축적이 꼭 필요하다. 누구나 그 중요성을 알면서도 왜 유독 우리 사회는 정치인의 전문성에 관대하고 무신경한 걸까?


정치판에서 목소리를 내고 전면에 나서려면 적어도 그 분야에서 일정 기간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무 경험을 쌓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검사, 판사, 변호사 출신들이 바로 정치판에 뛰어들어 전문가 행세를 하는 걸까?

국회가 입법기관이니 법에 정통한 그들이 쉽게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국회의원, 정치인의 역할이 법을 만드는 데만 국한되지 않는다. 민생을 살피고, 정부를 견제하고, 다양한 정책을 제안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 또한 그들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판에서는 행정전문가, 과학전문가, 노동전문가, 예술전문가를 보기 힘들다. 유독 법률전문가만이 정치판을 독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경험한 정치인들을 보면 어떤 이슈로 혜성처럼 등장해 갑자기 ‘빵’ 뜬다. 속된 말로 떡상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 떡상을 발판 삼아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같은 말로 대중을 현혹시키고 정치판에 자리를 잡는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이들이 화려한 법률전문가 경력만으로 당대표가 되고, 갑자기 당의 핵심 인물이 되는 현실을 지켜봤다.


정치가 이렇게 쉽게 뛰어들어도 되는 가벼운 영역인가?

법률전문가라면 정치도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이 얼마나 오만하고 건방진 생각인가?


우리는 각 분야에서의 전문가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전문성에 신뢰를 갖고 믿고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유독 정치라는 분야에서는 전문가의 기준이 낮고, 아무에게나 그 자리를 내어주는지 이해할 수 없다.


최근 야당 대표가 정치 경력 불과 3년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당을 대표하는 인물인데 정치 경력 3년이라니? 그 당 내에서 목소리를 내는 인물 중에는 강사 출신이 지난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실소를 자아내는 일이다. 마이크를 잡고 크게 외치면 핵심 인물이 되는 정치판의 생태가 너무 아이러니하다.


또 다른 야당 대표도 학계 경력은 화려하지만 정치 경력은 걸음마 수준인데, 왜 겸손하지 못한 걸까?


물론 시국과 정치에 대해 국민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는 있다. 그러나 거대 야당의 대표와 그 내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만큼은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전문가다운 경력을 갖춘 이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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