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난 이미 다 알고 있었어
3학년을 준비하는 겨울방학에도 어김없이 아이들을 스피치 학원에 등록시킨 영호엄마와 호태엄마다. 새 학년 시작인 1학기에 아이들이 회장을 해야지만 엄마들 사이에서 자신들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녀들은 1학기 회장 선거에 크게 욕심을 냈다.
스피치 학원의 겨울 특강 시작과 동시에 아이들을 라이딩 하느라 분주한 그녀들이었다. 바쁜 나날을 보내던 그녀들 앞에 재윤엄마가 등장했다. 특강 3주차에 스피치 학원에 등록한 재윤이다. 학원 로비에서 마주친 그녀들은 서로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어머, 여기서 두 분을 다 뵙네요.”
“어... 안녕하세요.”
영호엄마와 호태엄마는 동시에 인사했지만, 표정에는 ‘여긴 우리만 아는 곳인데…’라는 당혹감이 묻어났다.
“재윤이가 3학년 때는 자신도 회장을 해보고 싶다고 해서 여기 와봤어요. 알아보니 여기 되게 잘 가르친다고 소문이 자자하더라고요. 호태엄마는 정보통이니까 당연히 알고 계실 줄 알았죠.”
“저도 그냥 소문 듣고 온 거예요, 잘 몰라요.”
호태엄마는 시치미를 뚝 떼며 말했다.
그녀들에게 이 학원은, 마치 자신들만 아는 ‘특별하고 은밀한 곳’이었다. 그래서 재윤엄마의 등장이 몹시 달갑지 않았다.
그리고 3학년이 되자, 세 아이는 같은 반이 되었다.
하지만 회장은 단 한 명. 하나의 자리를 두고 치러진 학급회장 선거에서, 재윤이가 회장으로 선출됐고, 영호는 부회장, 호태는 2학기를 기약하게 되었다.
회장은 재윤이지만, 엄마들 사이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여전히 영호엄마였다. 재윤엄마는 회장이 된 아들보다 훨씬 조용했고, 엄마들의 모임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영호엄마는 마치 교회에서 전도하듯, 엄마 한 명 한 명에게 전화를 걸며 브런치 모임에 끌어들이기 바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 엄마, 다단계 하나?” 싶을 정도였다.
영호엄마와 호태엄마를 중심으로 한 브런치 모임은 한때 10명까지 늘었지만, 반복되는 모임 속에서 서서히 인원이 줄어들었고, 결국 다섯 명 남짓한 인원만 유지되었다. 대부분은 서너 번 참석해보다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조용히 빠져나갔다.
인터넷 커뮤니티만 검색해도 알 수 있는 평범한 정보들을, 대단한 교육 노하우인 양 떠들며 엄마들의 중심에 서려는 두 엄마의 모습은 점점 피로하게 느껴졌다. 특히 다른 엄마가 새로운 정보를 꺼낼 때마다, 영호엄마는 눈을 내리깔고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난 이미 알고 있었어.”
그 말투는 들을 때마다 사람을 미묘하게 깎아내렸다. 무심한 척하면서도, 우위에 있다는 자의식이 흘러넘쳤다.
그러던 어느 날, 브런치 모임에 다섯 명의 엄마들이 모였다. 영호엄마, 호태엄마, 아리엄마, 그리고 새로 합류한 두 엄마였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수다가 이어졌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학원 이야기로 흘렀다. 아리엄마는 이번에 아들을 과학고에 보낸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제 친구 아들이 올해 과학고에 들어갔어요. 축하해주고 싶어서 밥도 먹고 선물도 했죠. 너무 기특하더라고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넌 지금까지 다닌 학원 중에 뭐가 제일 도움됐어?’ 그랬더니 사고력 수학학원이래요. 우리 동네에 있는 씨드 사고력 수학, 거기 원장님이 애들 교육에 정말 정성을 많이 들인대요. 이번 주에 아리 상담 한 번 받아보려고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영호엄마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어, 거기 씨드 사고력 수학! 우리 영호 선생님이잖아!”
익숙한 그 말투였다. ‘난 이미 알고 있었어’라는 뉘앙스를 또다시 꺼내든 것이다. 아리엄마는 순간, 가슴 깊숙이 쌓였던 짜증이 폭발했다.
“언니, 진짜… 이런 말 할 때마다 왜 꼭 그렇게 얄밉게 말해요?”
“'맞아, 그 선생님 너무 좋아' 이렇게 말할 수도 있잖아요.”
“근데 '응, 우리 영호 선생님이잖아' 어떻게 매번 그런식으로 말해요!”
“솔직히 기분 나쁘거든요. 듣는 사람 무시하는 거 같잖아요.”
“제가 참다 참다 말하는 거예요. 오늘은 정말 못 참겠네요. 이만 갈게요.”
아리엄마는 영호엄마가 변명할 틈도 주지 않고 그동안 참아왔던 짜증과 화를 터뜨리듯 쏟아내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녀가 떠난 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영호엄마는 물 잔만 만지작거렸고, 나머지 엄마들은 서로 눈치만 살폈다.
자신보다 어린 엄마들 사이에서 늘 부러움과 우러름을 받으며 중심에 서 있다고 믿었던 영호엄마. 그러나 아리엄마의 직언 한마디에 그 자리는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엄마들의 틈에서 늘 당당해 보였던 그녀의 모습은 그 순간, 늦여름 바닥에 떨어져 뒹구는 매미처럼 초라해 보였다.
그날 이후, 브런치 모임은 한동안 열리지 않았다.
겉으로는 단단해 보였던 허울 좋은 성이, 단 한 마디 직언에 무너져 내린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