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우리엄마가 너희 엄마는 너무 말이 많대
한동안 잠잠했던 브런치 모임이 진규엄마의 퇴직을 핑계로 다시 시작되었다. 브런치 모임에 늘 관심이 많았던 진규엄마였지만, 회사에 다니느라 자주 참석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가끔 휴가를 내어 얼굴을 비추며 엄마들과의 관계를 이어갔다.
그녀가 다니던 회사는 '마루교육'이라는 출판사였다. 아이들 교과서와 교재를 만드는 곳이었고, 진규엄마는 그곳에서 회계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비록 회계 파트였지만 교재를 만드는 연구진과도 친분이 있어 알짜배기 교육 정보를 곧잘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정보를 가끔 브런치 모임에서 풀어놓으며, 모임의 분위기를 이끌곤 했다.
오랜만에 열린 브런치 모임엔 영호엄마, 호태엄마, 가온엄마, 진규엄마, 준영엄마가 모였다.
“모두 너무 오랜만이에요.”
“언니, 퇴직 축하해요! 이제 뭐 하실 거예요? 보통 직장 오래 다니신 분들, 퇴직하고 나면 여행부터 가던데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요. 가까운 데부터 알아 보려구요.”
“어머, 그럼 이제 우리 교육정보는 못 듣는 거예요?”
“친한 동료들이 있으니, 들으면 또 나눌게요.”
진규엄마가 들려주던 교육정보를, 영호엄마와 호태엄마는 ‘핫한 정보’라며 연신 치켜세웠다. 그런 반응에 진규엄마도 으쓱해졌다. 마치 자신이 교육 트렌드의 최전선에 서 있는 엄마처럼 행동했다.
사실, 그녀가 전하는 이야기들은 교육 커뮤니티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금방 찾을 수 있는 흔한 정보들이었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모르는 척’ 리액션을 해주는 자리에서는,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진규엄마는 영호엄마, 호태엄마와 급격히 가까워졌다. 그 무렵, 엄마들 사이에선 코딩 학원 열풍이 불고 있었지만, 진규엄마는 코딩은 이미 한물갔다며 고개를 저었다.
코딩에 관심을 보이는 엄마들을 은근히 낮춰보는 말투였고, 대신 요즘은 철학교육이 대세라며 철학 학원 동행을 제안했다.
그리하여 셋은 매주 강남에 있는 철학 학원으로 아이들을 데려다주며 더욱 가까워졌다. 브런치와 강남 라이딩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관계는 겉보기엔 제법 돈독해 보였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어느 날, 하교한 호태가 엄마에게 학교 이야기를 들려주던 중 불쑥 말했다.
“엄마, 오늘 진규가 갑자기 그러는 거야. ‘우리 엄마가 너희 엄마는 말이 너무 많대’ 이러는 거 있지.”
“그래서 뭐라고 했어?”
“응, ‘우리 엄마 말 많아. 집에서 나한테 재밌는 얘기 많이 해줘’ 그랬어. 그랬더니 그냥 갔어. 근데… 그 말이 좀 기분 나쁘게 들렸어.”
호태엄마는 그 말을 듣고 순간 멍해졌다. 당혹감과 불쾌함, 뭔지 모를 부끄러움까지 복잡하게 뒤섞인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평소 아이들과 함께한 자리에서도, 아이들이 옆에 있건 말건 말조심 하나 하지 않던 진규엄마였기에 그 말이 누구에게서 나왔는지는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겉으로는 고상하고 유식한 척하지만, 그녀의 민낯은 이런 소소한 일상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제야 호태엄마는 알게 되었다. 진짜 품위는 말의 선택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셋이 함께 브런치 모임을 이어가며, 아이들을 강남 학원에 함께 데려다주는 일상이 반복됐다. 처음엔 자연스럽게 느껴졌지만, 어느 순간부터 진규엄마의 말투와 시선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특히 영호엄마 옆에 앉을 때마다 슬쩍슬쩍 던지는 ‘친한 척’의 톤이, 묘하게 신경을 긁었다.
다음 날도 세 사람은 어김없이 브런치 자리에 모였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말수가 줄어든 호태엄마에게 두 엄마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래? 컨디션 안 좋아 보여.”
“좀 그런가 봐요.”
그러다 호태엄마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
“어제 진규가 호태한테 ‘우리 엄마가 너희 엄마는 말이 너무 많대’라고 했다네요. 그 말, 좋게 들리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진규엄마는 피식 웃으며 넘기려 했다.
“아휴, 내가 진규아빠한테 호태엄마 말 재밌게 한다고 했는데, 진규가 그렇게 전달했나보다. 오해하지 마.”
그러나 화가 단단히 난 호태엄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언니, 그 말이랑 그 말은 다르죠. 그랬으면 진규가 ‘니네 엄마 말 재밌게 한대’ 정도로 말했겠죠. 애들이 들은 적도 없는 말을 그렇게 툭툭 내뱉겠어요? 평소에도 애들 앞에서 아무 말이나 하시던데, 그게 생활이셨나 봐요.”
“아니, 아이가 하는 말은 괜한 오해를 하게 만들잖아~ 난 진짜 그런 뜻 아니었는데~”
“지금 우리 애들이 유치원생이에요? 지금도 억지로 상황 모면하려고만 하시잖아요. 참 실망스럽네요.”
“나 그렇게 예의 없는 사람 아니야. 너무 몰아가지 마.”
“됐어요. 전 더는 진규엄마랑 볼 일 없을 것 같네요.”
그날 이후, 그녀들의 강남 라이딩은 막을 내렸다. 석 달 동안의 철학교육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웠을까? 엄마들은 관계의 민낯을 배웠고, 아이들은… 아마 별로 기억도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