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서울대 출신 피부과 의사 엄마
영호엄마, 호태엄마는 4학년이 된 아이들의 늘어난 학원스케줄로 덩달아 바빠졌다. 여전히 새로운 엄마들을 불러 모으며 브런치 모임을 이어나갔다.
고학년이 되었다며 공부에 더욱 고삐를 죄는 분위기 속에 새로운 전학생이 등장했다. 준영이네 반에 남매 쌍둥이가 전학을 온 것이다. 남매 쌍둥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전학생 소문은 순식간에 학년 전체에 퍼졌다.
준영이도 전학 온 친구에 대한 소식을 전하느라 신이 났다.
“엄마, 우리 반에 남자애랑 여자애 둘이 전학 왔는데 쌍둥이래. 근데 하나도 안 닮았어.”
“아, 이란성 쌍둥이구나. 원래 이란성은 생김새가 다르지. 더군다나 남자, 여자면 더더욱 그래.”
“맞아. 그래서 쉬는 시간마다 그 친구들 옆에 가서 말도 걸고 얼굴도 살펴봤어. 근데 하성이가 엄청 재밌더라.”
“하성이가 전학 온 친구야?”
“응, 남자애가 하성이고, 여자애는 하정이야.”
“둘 다 이름도 예쁘네. 친구들하고 잘 지내!”
“응. 하성이랑은 벌써 친해졌어.”
며칠 후, 하교 중인 준영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하성이랑 우리 집에서 놀아도 돼?”
“그래, 넌 피아노 학원만 가면 되니 괜찮은데, 하성이 학원 안 간데?”
“응, 하성이도 학원 안 간데.”
“그럼 같이 와서 놀아.”
잠시 뒤, 준영이는 하성이와 하정이를 데리고 집에 왔다.
“엄마, 하정이도 학원 안 간데, 그래서 같이 왔어.”
“그래. 하성이, 하정이 어서와. 반가워.”
“안녕하세요.”
쌍둥이는 밝은 미소로 인사했다.
아이들에게 간식을 내주며 준영엄마가 물었다.
“하성이, 하정이 엄마한테 준영이네 간다고 말씀드렸지?”
“네. 할머니가 조금만 놀다 오라고 하셨어요.”
“할머니랑 같이 사는구나.”
“네. 엄마가 일하셔서 할머니가 저희 봐주세요.”
“그렇구나. 준영이는 피아노랑 검도만 다녀서 시간이 좀 있는데, 하성이랑 하정이는 오늘만 한가한 거야?”
“아니요. 저희는 태권도만 다녀요.”
“그래? 준영이만 학원 안 다니는 줄 알았는데, 같이 놀 친구 생겨서 다행이다.”
그날 이후로도 하성이와 하정이는 종종 놀러 왔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하교 후 곧장 학원으로 향하는 상황이라 셋이 함께 놀 기회가 많았다. 자주 마주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쌍둥이의 엄마가 피부과 의사라는 사실, 그것도 서울대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준영엄마는 명문대 출신 전문의 엄마가 아이들을 태권도 학원만 보내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어느 날, 하성이와 하정이가 자주 놀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들의 엄마가 준영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준영 어머니 안녕하세요. 하성.하정엄마에요.”
“네. 안녕하세요.”
“저희 쌍둥이 그렇게 자주 놀러가서 어떡해요. 너무 죄송해요. 제가 그만 가라고 해도 아이들이 눈치가 없네요.”
“아니에요. 얌전히 잘 놀아서 전혀 힘들지 않아요.”
“제가 감사하고, 죄송해서 식사한번 대접하고 싶은데 시간 좀 내주세요.”
“정말 괜찮아요.”
“그래도... 아이들이 좋은 친구를 만나서 저도 인사드리고 싶었어요. 저 수요일 오전은 늘 괜찮은데, 어떠세요?”
“네. 저도 수요일 오전 괜찮아요.”
“그럼 다음 주 수요일 10시 어때요?”
“좋아요.”
그렇게 첫 만남을 가진 두 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대화를 이어갔다.
“쌍둥이 자주 놀러가서 힘드시진 않으셨어요?”
“아니에요. 정말 얌전히 잘 놀아서 괜찮아요. 오면 주로 보드게임 하거든요. 사실 전, 우리 준영이만 학원 안 보내는 줄 알았어요. 친구들이 다 바빠서 그동안 외로워했는데, 하성이 하정이랑 잘 어울려서 저도 좋아요. 태권도만 다닌다면서요?”
“네, 지금은 그래요. 사실 작년까진 이것저것 많이 시켰죠. 그런데 전학 오기 전에 하정이가 좀 아팠거든요. 그때 학원 다 끊고,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게 뭘까,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했어요.”
“어머, 많이 걱정되셨겠어요. 지금은 괜찮은 거죠?”
“네, 아주 건강해요. 그 일을 겪고 나서, 제가 오히려 많이 배웠어요.”
“애들한테 들었는데, 의사 선생님이시라면서요. 교육에는 더 엄격하실 줄 알았어요.”
“그런 편견들, 많죠. 근데 저희 엄마도 늘 그러셨어요. ‘너도 고등학교 가서야 공부했잖아. 애들 너무 조이지 마라’ 하고요.”
“좋은 말씀을 자주 해주시네요.”
“교육관이라고 할 건 없지만, 남들 따라가느라 바쁘게 돌리는 건 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지금은,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도요. 생각이 참 비슷하네요.”
준영엄마는 소탈하고 유쾌한 하성.하정엄마가 마음에 들었다. 명문대 출신의 피부과 의사라는 점을 전혀 내세우지 않고, 겸손하고 예의 바른 태도를 보이는 모습에 호감이 생겼다. 하성.하정엄마 역시 따뜻하고 솔직한 준영엄마가 마음에 들었다. 두 사람은 가끔 수요일 오전마다 만나며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아갔다.
그리고 ‘준영엄마가 서울대 출신 피부과 의사와 친하다’는 소문은 자연스레 영호엄마, 호태엄마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