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미완성으로 끝난 그녀들의 큰 그림
준영엄마가 하성·하정 엄마와 가깝게 지낸다는 소식을 들은 영호엄마와 호태엄마는, 그녀와의 자리에 자신들도 꼭 불러달라고 안달을 부렸다. 결국 준영엄마가 만남을 주선했고, 네 명의 엄마가 한자리에 모였다. 영호엄마와 호태엄마는 ‘서울대 출신 피부과 의사’라는 타이틀에 기대를 한껏 부풀린 채 참석했다. 특별한 교육 철학이나 실전 학원 정보가 쏟아져 나오길 기대했지만, 정작 만남은 소탈하고 단정했다. 결국 원하는 수확 없이 돌아간 두 사람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역력했다.
그녀들은 브런치 모임에서도 엄마들을 하나하나 관찰하듯 훑으며, ‘이 사람이 나에게 득이 될까?’를 먼저 따졌다. 이익이 되지 않으면, 스쳐 지나가는 인연쯤으로 대했고, 그런 인연엔 정을 붙이지 않았다. 그녀들의 곁엔 늘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거나, 혹은 묻어가려는 추종자들이 머물렀다.
하지만 쌍둥이 엄마는 달랐다. 즉각적인 득이 되지 않더라도, 옆에 두면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라 여겼다. 그래서 다른 누구보다도 더 관심을 기울이며, 관계를 조심스럽게 이어갔다.
‘서울대 출신, 피부과 의사’라는 간판은, 그녀들의 세계에선 결코 가볍지 않은 의미였다.
아이들이 5학년이 되자 정·회부회장 선거 후보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전학 온 하정이가 후보로 나가게 되었다. 입후보 등록을 위해서 친구 30명의 추천을 받아야 했다. 전학을 왔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늘 인싸 기질을 가지고 있던 하정이였기에 30명의 추천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정은 다른 후보 둘을 제치고 당당히 5학년 부회장에 당선이 되었다.
하정이의 당선 후, 수요일 브런치 모임에서 엄마들은 하정이의 당선을 축하해 주었다.
“하정이 당선 축하해요. 하정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더니 정말이었네요.”
“엄마 닮아 똑똑하고, 완전 인싸에요.”
“그런데 이번에 하성이는 왜 안 나갔어요?
“둘이 앉아서 뭐라고 쑥덕쑥덕하더니, 하정이만 나가더라고요. 그러더니 ‘표 나뉘면 안 된다’나 뭐라나…”
“그럼 내년 6학년 때는 둘다 나간데요?”
“네, 그때는 회장·부회장 두 자리니까 나가겠대요. 둘이 전략회의라고 하는 거 보고 완전 웃겼어요.”
엄마들의 대화를 조용히 듣던 영호엄마와 호태엄마는 콧방귀를 뀌었다. 쌍둥이의 꿈도 야무지다는 생각을 하는 그녀들이었다. 그녀들이 1학년 겨울방학부터 스피치 학원에 목을 메고 열과 성을 다한 것은 회장, 부회장 자리를 노리고 공을 들인 것인데, 우리의 큰 그림에 재를 뿌리냐는 맘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5학년 1년 동안 부회장 역할을 톡톡히 한 하정이의 인기는 엄마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었다. 부회장 역할을 하며 도움이 필요한 것을 하성이가 도와주며 해결을 해나갔기에 쌍둥이 남매 하성과 하정의 활약은 눈부셨다. 특히나, 남녀 친구들 간 다툼이 생기면, 하성은 남자아이들 사이로, 하정은 여자아이들 곁으로 자연스레 다가가 상황을 파악하고 풀어줬다. 선생님보다 쌍둥이를 먼저 찾는 친구들이 많았다.
영호, 호태엄마의 마지막 그림을 완성할 6학년 정·부회장 선거가 시작되었다. 쌍둥이 엄마는 하성, 하정에게 전적으로 맡긴 채 한 걸음 물러서 있었지만, 영호엄마와 호태엄마는 끝내 손을 거두지 않았다. 입후보 등록을 위해 필요한 서른 명의 친구를 섭외하는 일조차 아이들에게 맡기지 못했다.
그들은 평소 친분 있는 엄마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후보 추천서에 사인 좀 해달라”며 아이들 대신 부탁을 전한 것이다. 아이들이 주체가 되어야 할 선거가 어느새 또 다른 엄마들의 전장이 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준영엄마는 얼굴이 굳었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머릿속에선 말이 먼저 맴돌았고, 곧바로 전화기 너머로 목소리를 뱉어냈다.
“준영엄마, 이번에 우리 영호가 회장 선거에 나간다는데, 준영이한테 추천서 사인 좀 해달라고 얘기 좀 해줘.”
“어머, 언니. 그런 건 애들이 알아서 해야죠. 벌써 6학년인데, 내년이면 중학생들이잖아요. 이런 것까지 엄마가 나서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영호는 혼자서도 충분히 잘할 수 있을 텐데요. 저는… 못 들은 걸로 할게요.”
단호하게 전화를 끊은 뒤, 준영엄마는 헛웃음을 지었다.
‘도대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자식의 자율성을 말하면서도, 정작 그 자율을 가장 먼저 가로막는 건 그들 자신이었다.
언제부턴가 엄마들의 움직임은 음지에서 포착되지 않는 기류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달랐다. 마지막 목표를 앞두고 본색을 숨기지 않는 그녀들이었다. 풀숲 아래 숨어 있던 참새 떼가 인기척에 놀라 흩어지듯, 그들의 손길은 더 이상 조용하지 않았다.
선거일.
정·부회장 후보에는 영호, 호태, 하성, 하정이 이름을 올렸다.
득표수로 회장과 부회장이 결정되는 방식이었다.
개표가 끝났을 때, 회장은 하성, 부회장은 하정이었다.
쌍둥이의 전략은 완벽히 적중했고, 교실 안은 박수와 환호로 가득 찼다.
겨울방학마다 스피치 학원을 보내며 치밀하게 준비해왔던 선거였다. 엄마들을 미리 포섭하며 누구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치르는, 비교적 손쉬운 승리를 예상했던 정·부회장 선거였다. 하지만 정·부회장 자리가 뜻밖에도 하성, 하정의 몫으로 돌아가자 그녀들은 허탈감에 이어 허망함마저 밀려들었다.
자신들이 오랫동안 공들였던 것이 쌍둥이의 등장으로 무산되었다는 생각에 축하 인사를 건넸지만, 억지 웃음 속엔 씁쓸함이 가득했다. 주변의 엄마들이 쌍둥이에게 축하인사를 건낼 때 그녀들은 입만 웃었고 눈빛과 표정은 싸늘했다.
“쌍둥이가 회장, 부회장 다 돼서 너무 좋으시겠어요.”
“둘이 전략을 짠다고 하더니 결과가 좋아서 하성, 하정이도 무척 기뻐해요.”
“준영이가 하성이 선거운동 도왔다고 자랑하더라고요. 자기가 도운 친구가 회장이 됐다며 신나서 말했어요.”
“우리 가온이도 하정이 도왔다던데요. 마치 국회의원 선거처럼, 자기가 뭔가 해냈다는 듯 자랑스럽게 말하더라구요.”
“예전엔 이런 선거가 아이들한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배우는게 많네요.”
“맞아요. 백 번 교과서로 민주주의니 투표니 가르치는 것보다, 이렇게 몸으로 부딪쳐보는 게 훨씬 남는 것 같아요.”
하성, 하정을 축하하고 선거의 의미를 나누는 엄마들 사이에서, 영호엄마와 호태엄마는 말없이 시선을 돌렸다. 순간 영호엄마와 준영엄마의 눈이 마주쳤다. 영호엄마는 민망한 듯, 씁쓸한 듯,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입꼬리만 겨우 올렸다.
늘 여유로운 척,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던 그녀가, 자신이 그려오던 마지막 그림이 어그러지자 그렇게 애처롭게 웃고 있었다.
‘아이들이 민주주의의 실전을 배웠다면, 그녀들은 공든탑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진실을 체득했겠지. 단 한순간도, 자신들의 마지막 그림이 이렇게 허망하게 막을 내릴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겠지만.’
자신들의 욕망을 아이들을 통해 채우고 싶었던 그녀들의 억지 웃음이, 준영엄마 눈엔 왠지 조금 슬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