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고교 진학을 앞두고 입시 설명회에 다녀왔다.
학교 홈페이지와 입시 자료로 기본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으나, 학교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었다. 새로운 장소와 공간에 가면 직감적으로 전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나와 맞지 않는 곳은 금세 알 수 있다. 불편감이 크게 밀려오고 이질감이 느껴져 잠시도 그곳에 머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남산자락에 위치한 학교는 외관상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뒤편으로 보이는 남산타워와 어우러져 오래된 건물이 묘하게 근사해 보였다. 서포터즈 학생들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 설명회장으로 입장했고, 5시 정각에 설명회는 시작되었다.
요즘은 어디를 가든 학교장의 설명을 귀담아 듣는다. 예전에는 기관장들의 인사말이 그저 좋은 말만 나열된 형식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해 흘려들었지만, 지금은 다르게 들린다. 그들의 말 속에는 교육 철학과 방향이 담겨 있다. 어떤 생각으로 아이들을 이끌어 가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학교장의 인사말과 선생님들의 설명을 들으며 이 학교에 꼭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보내고 싶다고 다 보낼 수 있는 학교는 아니다. 1차, 2차 실기시험이라는 관문을 넘어야 한다.
입시를 준비 중인 아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러 활동에 정신이 분산되어 있는 탓인지, 내 욕심만큼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 욕심을 채우려는 잔소리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그저 입을 꾹 다물고 묵언 수행 중이다. 아들과 나의 간극이 클 때는 잔소리가 속사포처럼 쏟아지지만, 그 말들이 도움이 되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어려운 시기 자극이 되라고 해준 조언과 쓴 소리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 도움이 되었다고. 나도 결국 좋은 말만 해주는 게 맞는 걸까 싶다.
최근 인스타에서 본 문장이 떠오른다. ‘엄마는 감정노동자가 아니라 사랑노동자다.’ 그래서 더 힘들다. 그저 묵묵히 바라봐주고 응원해야 하는 엄마 노릇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덕질하는 아티스트라면 거리를 둔 관계이기에 무조건적인 응원이 가능하지만,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대회와 입시가 끝날 때까지는 정말 내가 응원하는 아티스트 바라보듯 보며 무조건적인 응원만 해줘야 할까? 보통 아티스트와 소통할 때 이름 뒤에 ‘님’을 붙인다. ‘00님~’
‘지후님, 오늘도 파이팅!’
‘지후님, 연습 너무 힘들죠. 쉬엄쉬엄 하세요.’
이렇게 말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부터 집에서도 이런 주접을 떨어볼까.
으아. 엄마 노릇 너무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