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이라는 이름의 용기

by Balbi


어린 시절에는 이성에 대해 느끼는 나 혼자만의 사랑이 짝사랑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이성에 대한 감정 외에도 여러 관계에서 짝사랑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음을 깨달았다. 상대가 알지 못하는 경우뿐 아니라, 알아도 감정의 크기가 달라 표현이 다른 경우 역시 짝사랑을 할 때의 마음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낀다.


한때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끙끙 앓으며 시간만 보내는 짝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덕질도 짝사랑의 하나니까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아티스트들은 나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나는 수많은 팬들 중 하나일 뿐이다. 내 사랑을 그들이 알 리 만무하다. 공연에서 환호하고 박수를 보내며, 가끔 편지를 보낸다고 한들 달라질 것은 없다. 내가 이만큼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을 전할 뿐, 아티스트로부터 사랑의 표현을 받을 수 없으니 짝사랑과 다를 바 없다. 결국 모든 애정은 일상적으로 모든 팬을 향한 감사의 인사로 환원될 뿐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덕질이라는 행위를 통해 나는 나대로 어떤 발전을 모색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티스트의 스케줄을 좇으며 시간을 보내고, 마음의 위로를 받으며, 정신적인 평안을 넘어 좀 더 쓸모 있는 인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이 모습은 참으로 긍정적이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명제 중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그중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만큼은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결혼하고 육아를 하는 여성이라면 대부분 느끼는 감정일 텐데, 사회생활을 하다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사회와 단절된 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감과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 같고, 더 이상 사회에서 내 자리는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잠식당한다.


나 역시 그런 감정에 오랜 시간 빠져 있었을 때 덕질을 통해 다시 할 수 있겠다는 마음, 다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그러나 자신감이라는 것은 그렇게 빨리 회복되지 않는다. 조금 차올랐다가 다시 쑥 빠져버리고, 다시 조금 차오르고 또 빠진다. 몇 년간 반복되던 그 마음은 또 다른 덕질을 통해 채워지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번에는 덕질이라기보다 존경심을 통한 깨달음과 용기다. 오랜 시간 묵묵히 한 분야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는 사실이 작은 용기를 전해주었다.


그 용기에 힘을 얻어 작은 도전을 시작했다. 늘 도전하는 삶은 피곤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로 인해 동력을 얻고 삶에 의미가 찾아진다면 해야 한다. 짝사랑이라 불렀던 그 감정은 어느새 나에게 작은 용기가 되었고, 앞으로의 삶에 의미를 찾게 해주었다. 그것은 결코 쓸모없는 소모적 감정이 아니었다.


짝사랑은 늘 상대에게서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하는 감정이라 여겨왔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안다. 어떤 감정은 되돌려 받지 않아도, 나를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짝사랑은 그렇게, 나를 앞으로 밀어주는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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