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의 시간, 삼십분

통증이 알려준 시간의 밀도

by Balbi




삼십분.

시간을 ‘양’으로만 생각했을 때, 많지도 적지도 않은 어중간한 분량이라 여겼다. 한 시간을 공부했다고 하면 ‘응, 했구나.’하고 납득이 되는 양이라면, 삼십분은 ‘뭐야? 뭘 했다는 거지? 하다만 거 아니야?’ 이런 반응이 먼저 툭 튀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며 생각이 달라졌다.


삼십분은 집중의 시간이다.


26년을 시작하며 내 인생 처음으로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중년이후 내 삶의 숙원사업 중 하나는 악기 배우기다. 관심이 가는 몇몇 악기가 있었지만 오래 전 배우려고 사둔 바이올린이 눈에 들어왔다. 작년 온라인 강의로 바이올린을 조금 배워 보았으나 한계가 있었고 꾸준한 연습이 되지 않았다. 역시 악기는 대면수업이 답이라는 결론을 얻고 매주 토요일마다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수업을 받으며 진도를 나가기 위해서는 연습을 열심히, 꾸준히 해야 한다. 그리고 초반 예쁜 소리를 내기 힘든 바이올린은 인내의 시간이 필수다. 낑낑거리는 소리를 견디며 활을 긋다보면 어느새 처음보다는 안정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턱과 어깨로 악기를 지탱한 채, 왼손으로 네 개의 현을 짚는 일은 거의 노동에 가까웠다. 몇 번의 연습으로 왼손의 검지 손가락 끝은 어느새 굳은살이 배겼고, 누를 때마다 통증이 밀려왔다. 차츰 진도를 나가며 4번 손가락까지 사용해야 하는 순간에는 왼쪽 팔과 어깨가 뒤틀리는 듯 한 경험을 해야 했다. 어깨와 턱으로 바이올린을 지탱한 채, 왼팔의 각도를 꺾어가며 운지 하는 행위는 삼십분을 넘기기 힘들었다. 그 시간을 지나면 내 상체와 하체가 꽈배기처럼 꼬여진 것 같고, 왼손가락의 끝은 통증으로 욱신거렸다.


그렇다. 내가 우습게 생각했던, 어중간한 시간, 무언가를 하다만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삼십분은 꽤 긴 시간이었다. 그것을 넘어가면 몸의 통증으로 집중하기 힘들었고, 연습을 이어가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 이어질 뿐이다. 이것을 몸소 체험하고 나니 반성과 이해의 시간이 찾아왔다.


기타로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아들에게, 만족스럽지 않은 연습량으로 잔소리를 이어갔다. 기타도 현악기이기 때문에 왼손에 무리가 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무지할 수 있는지……. 나는 늘 이렇다. 경험을 통해 반성하고 이해하는 식이다.


악기를 연습함에 있어 삼십분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중과 휴식을 반복하며 그 쪼개진 ‘집중의 삼십분’을 쌓아 가면 되는 것 아닌가. 다른 작업들과는 다른 집중의 패턴을 만들어가며 입시준비를 하면 좀 더 효율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 작업과 그림을 그릴 때는 보통 3~4시간 꼼짝 않고 작업을 이어나가는 나도 바이올린 연습을 통해 그것이 힘들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버렸다.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기타 치는 아들을 한량 취급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한동안 개미와 베짱이에 나오는 베짱이라고 놀리곤 했는데,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베짱이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오랜 시간 주구장창 하고 싶어도 통증으로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좀 더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계획과 목표를 세우도록 도와줘야겠다.

‘집중의 삼십분’을 계속해서 쌓아가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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