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적인가, 개인주의인가? 한끗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나는 둘째다. 요즘같이 하나, 둘만 낳는 세상에서의 둘째는 크게 의미가 없지만 우리 때처럼 셋, 넷의 자녀가 있는 세상에서의 둘째는 둘째만이 갖는 특성이 있다.
둘째들은 대체로 냉정하고, 냉소적이며, 예민하다. 날카롭고 까칠해 보이기도 한다. 독립적이고 개인주의적이라는 평가도 자주 따른다.
둘째인 내가 스스로 파악한 특성이라 그것이 좋다, 나쁘다로 구분될 수 없다. 그냥 대체로 그러한 특성들을 보였기에 나열한 것일 뿐이다. 간혹 위, 아래에서 치여 둥글둥글한 성격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것은 둘째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 치임에 그들은 날카롭고, 예민하다. 그래서인지 촉이 살아있다. 좋게 말하면 촉이고 나쁘게 말하면 눈치다. 지금껏 눈치제로의 첫째와 막내를 본적은 있어도 둘째들을 본적은 없다. 중간에 끼여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 본능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으리라.
눈치를 살피고 살며 그것이 누적되어 때로는 그들을 냉정하고 냉소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나의 의지와 다르게 중간에 끼임으로 싸잡아 같이 매도되는 경우를 겪음으로 서서히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인가. 정확한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 속 문제적 인물들 가운데 유독 둘째가 많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성격적으로 나댐을 좋아해서라기보다는, 늘 중간에 놓인 위치가 그런 선택을 부추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러 번 글에도 썼지만 난 기억력이 좋지 못하다. 그럼에도 간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 중 하나가 있다면, 내가 초등 3~4학년 무렵으로 기억한다. 1남 3녀에서 둘째인 나는 당시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당시 글짓기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언니는 첫째라 관심을 받고, 남동생은 아들이라 관심을 받고, 막내는 막내라 관심을 받지만, 중간에 낀 나는 그렇지 못하다고. 당사자인 내가 그렇게 느껴서 글을 썼지만 부모임의 걱정은 걱정으로 끝났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자라면서 그것이 조금은 억울하다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오히려 좋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은 관심 밖이라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형제, 자매들 모두가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각자의 가정을 꾸려 살아가고 있지만 나만 차로 1시간 거리에 살고 있고 나머지 가족들은 가까운 곳에 모여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자주 얼굴을 보고 만나는 횟수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나는 물리적 거리의 중요성을 더 또렷하게 느끼게 되었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여백 말이다.
과거 30년 전 우리 친정은 말 그대로 폭삭 망했다. 그 여파는 꽤 오래 지속되었고 원상태로의 회복은 불가능했다. 당시 그 사건으로 모두가 마음에 큰 상처를 품고 있지만, 나는 내 머릿속의 지우개 덕분인지 많은 것을 잊고 산다. 그러나 언니와 막내 동생은 30년 전의 사건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과 올해 본인들의 자녀들 나이가 우리 집이 폭삭 망했던 당시 자신들의 나이와 비슷해서 인듯했다. 설 연휴에 만난 언니와 동생은 술잔을 기울이며 당시 본인들이 겪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지금 내 새끼들 나이였다. 저 어린 게 그 일을 겪었다고 생각하면 맘이 너무 아프다.’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가까이 살며 거의 매일 얼굴을 마주하다보니 그 시절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그녀들이 과거의 기억을 잊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고 사는 것이 모두를 위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설 연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