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보았던 글이 관계의 민낯을 보여주는 듯해서 씁쓸하다.
그녀와의 인연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는 내 인생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믿으며 살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가깝다고 생각하던 그때에도 마음 한 구석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텅 빈 느낌이 종종 들었다. 공허함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조금은 내성적이고 사람을 가려 사귀는 탓에 내 주변엔 늘 사람이 많지 않았다. 반면 서글서글하고 유쾌한 그녀의 곁에는 언제나 사람이 넘쳐났다. 내가 그녀를 특별하다고 여길수록, 그녀 역시 나를 특별한 친구로 여기고 있을까 하는 의심이 따라왔다. 그런 의심이 고개를 들 때마다 그녀는 “제일 친한 친구, 맘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는 너뿐이야.”라는 말로 나를 안심시켰다. 그 말 위에서 쌓아온 수많은 추억들은 한때 우리를 꽤 끈끈한 관계로 이어주었다.
그럼에도 다시 공허함을 느끼는 순간들은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관계를 단절시킬 만큼의 상처나 집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서로의 삶은 바쁘게 흘러갔고, 우리는 각자의 생활을 존중하며 긴 시간을 이어왔다.
가끔 안부를 묻고, SNS를 통해 서로가 잘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한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이 관계는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문득 들었다. 과거에 친밀했던 친구들 또한 결국 시절인연으로 남는 현실 앞에서, 이제는 슬프기보다 덤덤한 마음이 앞선다. 더 이상 관계에 연연하거나 집착하지 않는 나이에 이른 것이다. 그럼에도 요즘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인연들에 대해 한 번쯤 곱씹게 된다.
‘이 관계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아니면 시절인연으로 남게 될 것인가.’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던 때, SNS에 올라온 짧은 글 하나를 보게 되었다. 관계의 깊이와 온도를 간결하게 정리해주는 문장이었다.
언제나 내 편인 척
좋은 사람인 척 행동하지만
이제 더 이상 믿지 않아.
내가 너를 찾았을 때
너는 늘 내 옆에 없었으니까.
@iamkimbunny
그 글을 읽는 순간, 오래전부터 설명하지 못했던 내 감정이 비로소 문장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느꼈던 서운함과 공허함이 무엇이었는지, 혹시 그녀 역시 나로 인해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적은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의 관계는 아마 딱 그만큼의 깊이였던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인간관계에 대한 미련과 집착 때문에 관계의 민낯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보였더라도 흐린 눈으로 외면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북적거리는 인간관계를 갖지 못하면 ‘루저’가 되는 듯한 분위기가 은근히 깔려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인간관계에 목매지 않는다. 북적거리는 관계보다 밀도 있는 관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 의미 없이 이어지는 모임을 피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목적에 맞는 모임을 통해 맺은 관계는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현재를 나누고, 위로하고, 응원하며 살아갈 힘을 건네준다. 반면 과거의 기억에만 매달려 푸념과 뒷담화로 끝나는 관계들은 이제 조용히 시절인연으로 남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