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을 놓친 밤

by Balbi




발렌타인데이에 공연을 보고 돌아오던 길, 우리는 지하철 환승 구간을 놓치고 말았다.

둘 다 휴대폰에 정신이 팔린 탓이었다. 그것도 세 정거장을 지나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어이없는 상황에 헛웃음이 났고, 다시 돌아오느라 집에는 자정 가까운 시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그 이후로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면 괜히 정신이 곤두선다.

환승 구간을 또 놓칠까 봐서다.


그날 우리가 환승 구간을 놓친 이유는 단순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현실이 아니라 공연의 여운, 덕질의 세계 속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의 여운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공연 영상과 사진을 다시 보며 우리는 그 여운을 꽤 오랫동안 즐긴다. 공연의 어떤 부분이 좋았고, 아쉬웠는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두 시간의 공연은 두 시간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티스트의 노래와 연주, 미세한 표정과 멘트까지 머릿속을 맴돈다.

우리가 느낀 감동을 그도 느끼고 있을까 궁금해지고, 때로는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다.


요즘 나의 덕질 메이트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된 딸이다.

어쩌다 보니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같아졌다.


덕질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덕메의 중요성을 알 것이다.

덕질은 감정과 정보를 나누며 아티스트를 향한 마음을 키워가는 과정인데, 그 과정에서 덕메는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한다.


물론 혼자 하는 나 홀로 덕질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

주변의 소음이나 감정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잔잔하게 오래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가끔은 외롭다. 그리고 문득 현실 자각 타임이 찾아오면 탈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반대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소수의 덕메가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로의 감정을 나누며 아티스트를 향한 사랑을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단단하게 키워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덕질의 세계에서 소수의 덕메는 꽤 중요한 존재다.


어린 피아니스트를 좋아하던 나의 덕질은 자연스럽게 둘째에게도 전염되었다.

피아니스트 오빠를 좋아하던 마음이 조금씩 확장되어, 이제는 드러머 오빠에게까지 향했다.

아직 SNS를 하지 않는 아이 대신 나는 오빠들의 사진과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어쩌면 몇 년 뒤에는 상황이 바뀔지도 모른다. 그때는 내가 딸에게서 오빠들의 소식을 전해 듣는 덕메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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