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고 있는 책 중 하나는 임경선 작가의 <태도에 관하여>이다. 작가와 책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그저 표지가 맘에 들어 선택한 책이다. 한때 내용과 관계없이 예쁜 표지에 이끌려 책을 구매하곤 했다. 젊은 시절에는 유난히도 예쁜 것에 강한 끌림을 받았고, 한동안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미감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있다.
예쁜 표지의 책은 긴 시간 바라보며 음미하듯 내용을 읽어 내려가고 싶다. 천천히 쪼개서 보아야 하루라도 더 예쁜 표지를 접할 수 있기에. 이 책은 후루룩 읽고 책장을 덮어버리기 아깝다. 예쁜 표지를 한번 보고, 하루에 한두 챕터씩 음미하듯 읽고 있다. 때로는 생각을 정리하게 도와주고, 또 어떤 때는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고 토닥여 준다.
“절제된 친절함을 유지하면서도, 그녀들이 고객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선을 넘어 노골적으로 치근대면 매번 노련하게 선을 그었다.”
<태도에 관하여> p143
오늘 읽은 문장은 읽음과 동시에 내가 하고 있는 덕질이 생각나며 문장의 ‘고객’이라는 단어가 ‘팬’으로 읽혀졌다. 아티스트를 덕질하며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게 된다. 성별과 연령, 지역과 직업, 삶의 배경까지 모두 다른 사람들이 단 하나의 공통점으로 모인다. 애정을 쏟는 아티스트가 같다는 이유 하나로, 우리는 금세 뭉치고 또 금세 흔들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서로가 서로를 저격하는 모습도 보이고, 이성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일들도 많이 벌어진다. 다양성을 갖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왁자지껄, 시끌시끌하다.
격조 있고 우아한 덕질을 지향하는 무리가 있는가하면, 온갖 주접과 나댐의 덕질을 지향하는 무리가 있고 각자 저마다의 스타일이 있다. 무엇이 좋다 나쁘다로 규정지을 수 없다. 각자의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지향하는 덕질을 하면 되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포인트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아티스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경우, 다른 하나는 팬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우위에 서서 ‘가르치려 드는 태도’를 보일 때다.
아티스트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각자 다를 뿐인데, “내가 하는 행위는 옳고, 네가 하는 행위는 문제 있으니 고쳐라.” 이러는 순간 온갖 잡음이 발생한다. 그저 각자가 지향하는 바를 존중하고, 각자의 길을 가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질 때는 아티스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가 있을 때다.
아티스트와 아무리 가깝고 친분이 있는 관계여도 수많은 팬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적절한 선을 지키며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팬들 사이에서 관계의 친밀성을 과시라도 하려는 듯, 선을 지키지 못하고 달라붙는 행위라던가, 사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 다수를 대변한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아티스트를 가볍게 소비하는 행위다.
아티스트에 대한 애정이 넘치면 당연히 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알고 싶은 게 많아진다. 그런 궁금증은 아티스트가 라이브방송이나 정식 인터뷰 등을 통해 공식적인 루트로 알려지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아무런 자격도 없는 개인이 인터뷰하듯 시시콜콜 질문을 던지고 아티스트가 마지못해 답을 하는 모습은 개인적으로 아티스트가 가볍게 소비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내가 사랑하는 아티스트가 소중하고 그를 존중한다면, 그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그가 조금 더 값지게 소비되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팬들의 궁금증을 대변한다는 핑계로 내 아티스트가 가볍게 소비되는 행위는, 이제 멈춰주기를 바란다.
어떤 관계에서든 선을 지킴은 중요하다. 그 선이 사라지는 순간 서로에 대한 존중과 애정은 어딘가로 사라질지 모른다. 덕질에서도 중요한 것은 아티스트를 향한 내 사랑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어떤 태도로 드러내느냐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