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의 만남을 정리하기 위해 공연을 간다는 말이 맞을까.
나는 오늘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보내주기 위해 간다.
작년 하반기 피아니스트 오다준의 출연으로 스틸하트클럽을 매주 정주행했다.
매주 같은 시간, 나는 그 프로그램을 틀었다.
처음엔 한 사람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무대 위에 서 있는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방송은 데뷔를 목적으로 하는 한팀을 결성한 뒤 막을 내렸고, 그 프로그램을 사랑했던 시청자들은 많이 아쉬워했다.
그들의 무대를 보고 싶었으나 한정된 인원만 허용되는 공개방송은 늘 하늘의 별따기였다. 타 오디션 프로그램은 방송종료 후 콘서트를 진행하기에 방송 종료 후에도 아쉬움은 크게 남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런 후속조치 없이 프로그램 종료와 함께 단칼에 끝나니 아쉬움이 컸다. 출연자들 개별적으로 팬미팅이나 공연을 이어갔지만, 그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이들의 여러 조합을 원했던 이들은 아쉬울 수밖에. 이런 아쉬움을 그들도 전해들었는지 기획콘을 준비해서 한번 공연을 했으나 공연의 티케팅은 빛의 속도로 마감되었다.
그들의 무대를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하고 끝내려니 미련이 남았다.
한 번은 봐야, 깔끔하게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그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긴 여정을 앞두고 있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젊은 청년들이다.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어떤 음악세계를 구축하며 나아갈지 예측할 수 없고, 많은 생각을 하며 지낼 것이다.
그러나 일부 팬들은 그 프로그램에서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프로그램 내에서 경연을 위해 잠시 꾸려졌던 팀에 집착하는 모습도 보이고, 이 기획콘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말도 한다. 이런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프로그램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그들은 자신만의 색이 드러나는 자신만의 음악으로 우리를 다시 만나고 싶을 거라 생각한다.
그들 각자는 각자의 꿈을 펼치기 위해 같은 프로그램에 나온 것은 맞지만 각자가 추구하는 음악은 다 다를테고, 성격적인 부분도 분명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 각자의 길을 간다.
어떤 음악을 하게 될지, 어디까지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붙잡기보다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그들의 미래를, 조용히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