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종료된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쓴 적이 있다.
젊은 밴드맨들의 꿈을 이용해 프로그램을 제작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방송국의 입맛에 맞는 참가자를 선발하고, 탈락한 나머지 참가자들은 그저 소비되었을 뿐이라고 느꼈다. 선발 과정 또한 공정해 보이지 않았고, 프로그램 종료 이후에도 문제는 남았다.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세미파이널에 오른 참가자들까지 포함해 콘서트나 후속 무대를 마련하는 것과 달리, 이 프로그램은 어떠한 후속 활동도 없이 모든 것을 끝냈기 때문이다. 오직 선발된 참가자들의 데뷔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쩌면 나의 우려가 변화한 시대를 읽지 못한 '꼰대의 시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MZ 밴드맨들은 누군가 판을 깔아주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 공연을 기획하고, 크고 작은 무대를 이어가며 자신들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들의 공연은 내가 익숙했던 대공연장의 무대에 비하면 매우 소박하다. 50명에서 많아야 200명 남짓을 수용하는 작은 소극장. 그러나 그곳에서는 아티스트를 훨씬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고, 음악은 관객과 직접 숨을 쉰다. 그 친밀함이, 어쩌면 이 시대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내게 익숙했던 대공연장의 무대는 웅장함, 화려함, 완벽함 같은 단어와 어울리는 공연이었다. 반면 소극장의 공연은 소박함, 신선함, 서툼 등 날것의 감각을 전하며 아티스트와 동반 성장한다는 느낌을 준다. 신인 아티스트라도 회사에서 기획해 만들어진 경우에는 완성된 모습을 무대에서 보여주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소극장에서 소박하게 시작하는 아티스트의 경우, 마치 아이의 첫걸음마를 지켜보듯, 그들의 서툰 시작조차 애정 어린 눈빛으로 응원하게 된다.
과거 내가 알고 있던 아티스트로의 시작은 누군가의 관리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MZ 밴드맨들의 행보를 보고 있자니, 그것은 기성세대, 꼰대의 시선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과거와는 다르게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적용하며 MZ다운 길을 걸어가고 있다.
모든 게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MZ들에게 조언을 한답시고 과거를 이야기하는 일은 참으로 조심스럽다. 시대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 나가는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보다 현명하게 개척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월 28일, 어제는 피아니스트 오다준의 첫 단독 콘서트가 있었다.
2월 1일 첫 팬 콘서트 이후 그의 빠른 행보는 놀라웠고, 덕질하는 입장에서는 그 속도를 따라가기 바빴지만 그것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연말 오디션 프로그램 종료 후 그는 여러 공연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왔다. 어린 나이에 뮤지션으로 자신의 활동 영역을 차근차근 구축해 나가고 있음이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그는 피아니스트, 키보디스트로서의 모습만으로는 관객에게 전할 수 있는 메시지에 한계가 있다고 느껴 노래를 시작했다고 했다. 공연이 거듭될수록 그의 노래는 분명히 늘고 있었다. 한 단계씩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노래 중간 중간 프로 가수의 목소리가 떠올라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지만, 그의 모습은 분명 발전하고 있었다. 새롭게 선보인 그의 자작곡들은 그동안 내가 보아왔고, 내가 생각해왔던 오다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서정적이고 섬세한 그의 자작곡들은 정식 음원 발매를 기다리기에 충분했다.
공연의 막바지 앵콜 무대에는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점퍼를 입고 등장했다. 그 의상이 실용음악 세계의 권력처럼 느껴졌고, 아들도 언젠가 그 옷을 꼭 입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쉽게 떠나지 않았다.
덕질을 하는 과정에서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있다. 좋은 공연장, 티케팅 시스템, 공연 기획사, 소규모 MD 제작 시스템 등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고 있다. 특히 음향이 좋고 공연장의 전반적인 환경이 좋은 곳을 마주하게 되면, 미래에 아들도 이곳에서 공연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어제 공연이 있었던 구름아래소극장은 수학 강사 정승제 선생님의 건물인 듯했다. 1층에서 ‘승제튜브’ 네온 간판을 보았고, 공연장의 안내 멘트도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듣자 나는 자연스럽게 상상의 나래에 빠졌다.
‘어, 우리 아들 기타의 시작은 수학이었지.
이곳에서 공연하게 된다면 자동으로 서사가 완성되겠는데.’
그렇다. 아들의 손에 처음 기타가 쥐어진 계기는 다름 아닌 '수학'이었다. 수학 문제집 한 권을 떼면 기타를 사주겠다는 약속으로 시작된 기타였다. 공연을 보는 중간 중간 무대 위 아티스트 오다준과 아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며, 나는 조용히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2월의 마지막 날. 오다준의 단독 콘서트는 한 뮤지션의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쁨이었고, 동시에 아들의 미래를 꿈꾸며 상상의 세상을 경험한 소중한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