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K, 그 시작

by Balbi




나에게 다이소는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살림에 필요한 소소한 용품은 물론, 문구류와 각종 미술용품까지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캔버스에 수채화를 그리던 시기가 있었다.

재료 욕심이 생겨 다이소에 갈 때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여러 사이즈의 캔버스를 사들였다.

언젠가는 큰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보겠다는 막연한 욕망 때문이었다.


그렇게 사두고 창고에 모셔둔 F10 캔버스 하나가, 얼마 전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를 그리고 싶었다.

이번에는 단순히 따라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나름의 의미를 담고 싶었다.


캔버스를 꺼내놓고 무엇을 담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전성기'라는 단어가 스쳤다.


요즘 나의 화두이기도 하다.


나의 전성기는 언제였을까.
나에게 전성기라는 것이 있었을까.
전성기는 특정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요즘 나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은 후덕죽 셰프다.

그를 보며 문득 생각했다.


그의 전성기는 언제일까.
지금일까.
아니면 이미 지나온 시간 어딘가에 있었을까.
혹은, 평생이 전성기인 사람도 있는 걸까.


‘전성기’를 주제로 캔버스에 표현하고 싶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쌓이며 만들어지는 흐름.
그 안에서 반복되는 시간들.
1년은 12달.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결코 같지 않은 날들.
그 속에 켜켜이 쌓이는 희로애락.


나는 그것을 캔버스 위에 옮겨보고 싶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첫 작품의 이름은 PEAK_001.


오래전 명화들을 보면, 인간의 삶을 놀라울 정도로 디테일하게 표현한 작품들이 많다. 흉내낼 수 없는 정교함에 넋을 놓고 보게 된다. 그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력이지만, 창작 욕구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정교함을 포기하는 대신, 더 직관적인 방식으로 표현해보자고.


새로운 사부작거림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작업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내 주변을 맴돌았다.


“엄마 뭐 하는 거야?”

“완성되면 설명해줄게.”

“재밌어 보인다. 나도 해볼래.”


작품이 어느 정도 형태를 갖췄을 때, 아이에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 천재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하지만 완성된 작품을 본 아이는 말했다.


“엄마, 여기는 다른 색이면 더 좋을 거 같아. 그래야 전성기가 더 잘 표현될 거 같거든.”


나의 의도에 자꾸 본인의 의견을 덧붙인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했다.


어쩌면 전성기라는 것은 완성된 하나의 순간이 아니라, 계속 수정되고 덧칠되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음 작품 PEAK_002에는, 그 수정의 흔적을 조금 더 남겨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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