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함이 아니라 용기라 믿으며 : 군악대를 보며 아들의 미래를 엿보다
나이를 먹으며 성격도 바뀌고 점점 용감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특히 아이들과 관계된 일에서는 과거의 나였다면 하지 못했을 일들을 지금은 서슴없이 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봉사자가 필요할 때 아무도 나서지 않으면 손을 번쩍 들고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나서거나, 아이들 통학 시 불편하거나 위험한 점을 발견하면 학교나 구청에 민원을 넣어 개선을 요구한다. 과거에는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갔을 일들에 이제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지난겨울 아들의 기타 선생님과의 연결도 나의 용감함으로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싶다. 엄마로서 아이들과 관련된 일에는 자연스럽게 더 예민해지고 주의 깊어지는 것 같다. 덕질을 하면서도 자꾸만 관심이 아이들과 관련된 분야로 확장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지난 금요일, 또 지훈(리베란테)을 보기위해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국군정례행사에 나오는 그를 보기 위해 팬들은 아침 일찍부터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 계단에 모여들었다. 나 역시 막히는 길을 뚫고 정오가 넘어 도착하니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이른 시간 도착한 팬들로 지훈이 위치하는 앞쪽 계단의 일부가 꽉 차있었다.
4월의 광장은 그늘 한 점 없이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모자와 양산으로 태양을 가리며 리허설 하는 그를 보니 앞으로의 공연은 뜨거운 태양과의 싸움이 되겠구나 싶었다. 모든 장병들은 단 이주 사이 변화된 날씨에 다들 반팔 차림으로 리허설을 진행하고 강렬한 태양빛에 일부는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지난 5일 첫 국군정례행사때 이들의 멋짐에 반해 아들이 군대를 간다면 군악대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일반 부대보다 ‘편한 보직’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 장비를 세팅하고 공연을 준비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군 생활에 ‘편한 꿀 보직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군악대 공연을 세 번 관람하다 보니 이제는 다른 장병들에게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연주 실력은 이미 프로 뮤지션의 수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국방부 군악대는 우리나라에서도 특A급 실력자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이미 데뷔한 프로 아티스트이고, 어떤 이는 음악 전공 대학생이라니, 실력 면에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특히 지훈과 함께 공연하는 성악병들과 보컬병들의 실력이 눈에 띄었다. 반복되는 공연에 그들의 무대는 더욱 발전했으며, 그들에게도 팬이 생기는 듯 했다. 제대 후에도 멋진 무대에서 만날 수 있을 아티스트들임이 분명하다.
노래하는 싱어들에 이어 눈길이 간 건 그들의 노래 반주를 해주는 밴드였다. 기타를 배우고 있는 아들 덕분에 가장 먼저 기타리스트의 연주를 주의 깊게 봤다. 이어 베이시스트, 키보디스트, 드러머까지 모두가 너무 멋진 연주를 선보였다.
5일 첫 공연 이후, 군악대와 의장대의 모든 공연이 끝난 뒤 포토타임시간 밴드 기타리스트에게 직진했다. 군악대에 어찌 올수 있는 것인지 너무나 궁금했다.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 안면도 없는 처음 보는 젊은 장병에게 말을 걸었다. 기타리스트에게 오늘 공연 너무 잘 봤다는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질문을 했다. "군악대는 어떻게 들어오는 건가요? 기타를 전공하셨나요?" 그의 답변은 놀라웠다. 군악대에 들어오기 위해 무려 3수를 했다고 했다. 대학 입시만 재수, 삼수를 하는 줄 알았는데, 군악대에 들어가는 것도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6일 현충원 행사에서 다시 만난 기타리스트에게 "제대 후 레슨을 하시나요?"라고 묻고 그의 연락처를 받을 수 있었다. 훗날 아들에게 기타 레슨이 필요할 때 검증된 실력자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을 가고 있는 선배에게 궁금증을 물어보고 싶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런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나 자신도 놀라울 뿐이다. 과거의 나였다면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텐데, 나이를 먹으면 뻔뻔해지는 것인지, 용감해 지는 것인지……. 문득 뻔뻔함과 용감함의 차이를 찾아보니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냐, 없냐를 이야기 한다. 아들의 진로와 관련해서니 용감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밴드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니 군악대와 의장대 모든 장병들이 포토타임 때도 묵묵히 연주를 이어갔고, 어제는 장비를 정리하느라 포토타임을 갖지 못했다. 2주 만에 만난 그들이지만 키보디스트는 알아보고 먼저 인사를 해주었고, 나 역시 고생하셨다는 인사를 하며 작은 초콜릿을 건네주었다. “다른 팀은 다 포토타임 갖는데 왜 밴드는 안하세요? 밴드도 사진 한번 찍어주세요.” 라고 말했더니 모두들 신나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아무도 그들에게 사진요청을 하지 않는 상황이 조금 서운하게 느껴졌다.
5~6년 뒤 우리 아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더 애정을 갖고 지켜보게 된다. 오래된 카메라로 찍은 사진 속에는 지훈을 비롯해 군악대 장병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무더위 속에서도 고생하는 이들의 사진을 한 장씩 남겨 주고 싶었다.
밴드 단체사진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니 감사 인사를 건네는 아티스트라니, 섬세하고 따뜻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에 제대 후 그의 음악 활동이 벌써부터 기대되었다. 선물로 잘나온 그의 사진 두 장을 보내주었다.
제대 후 멋진 무대에서 모두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