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경험의 연속이었다. 현충원에 음악회를 보러 가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지금까지 현충원은 호국영령을 모신 엄숙한 장소라는 생각만 했지, 이런 음악회가 열린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덕질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훈(리베란테)이 입대 후, 그가 군악대에서 군복무를 시작하면서 많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군악대가 전쟁기념관에서 정례행사를 한다는 것을 비롯해 다양한 스케줄을 접하며 팬들은 바빠졌다. 매주 금요일 전쟁기념관으로 출근하듯 참석하는 팬들도 생겨나고, 일부 팬들 사이에선 “군복무 전보다 스케줄이 많아졌다”며 웃음 섞인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이런 가운데, 팬들에게 새로운 이벤트로 다가온 것이 현충원에서 매년 봄에 열리는 신춘음악회였다.
신춘음악회 소식은 현충원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되었고, 팬들은 신청 방법을 알아보며 분주해졌다. 신청 가능한 인원은 단 330명. 생각보다 적은 숫자였다. 현충원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신청해야 하는 시스템으로, 기존 인터파크 티케팅과 달라 팬들은 그 현장감을 예측할 수 없었다. 예전에는 신청자가 많지 않아 빈자리가 있는 경우도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올해는 달랐다. 4월 8일 오후 2시에 신청창이 열리자마자 서버가 다운되고, 단 1분 만에 매진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입력하는 신청창 조차 열어보지 못한 채 마감되었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아, 난 음악회에 갈 운명이 아니구나. 그냥 낮잠이나 자자.’
그렇게 오랜만에 낮잠을 자고 저녁 6시쯤 눈을 떴다. 카톡 창을 확인하니, 신청 취소로 몇 개의 자리가 다시 열렸다는 소식이 들어와 있었다.
“어, 그래? 그럼 한 번 들어가 볼까?”
생각과 동시에 현충원 신청 페이지에 접속하니, 몇 자리가 남아 있었다. 최대 3인까지 신청할 수 있었는데, 자리 부족으로 신청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선 내 이름으로 하나를 신청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성공했다. 이어 남편 이름으로 두 자리를 추가 신청했더니 이것도 성공! 그렇게 총 3개의 자리를 확보하게 되었다. 우연히 자다 깬 덕에 어렵다는 티케팅을 운 좋게 성공할 수 있었다.
음악회가 열리는 날, 현충원의 저녁 공기는 덥지도 춥지도 않아 공연을 즐기기에 완벽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시작된 음악회는 테너 주선중, 트로트 가수 금잔디, 발라드 가수 장혜진의 공연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국방부 성악중창팀으로 무대에 오른 지훈의 La Vita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무대는 한곡이라 아쉬웠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신춘음악회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무대는 국방부 퓨전국악팀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아리랑 랩소디>였다. 밴드와 국악기의 만남이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내는 이 곡들은 중간중간 기록을 남기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노관우 작곡의 국악 관현악으로 바쁜 삶 속에서 자연에서 누리는 여유로운 삶을 권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곡이다. 밝고 화사한 느낌이 가득한 전체적인 선율은 낙이불류 애이불비, 즉 즐겁지만 너무 지나치지도 않고 슬프지만 너무 비통해 하지 않는 정악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리랑 랩소디>는 이지수 작곡으로 한국의 민요 아리랑을 현대적인 분위기에 맞게 재탄생시킨 곡으로 색다른 크로스오버 분위기를 풍기는 곡이지만, 아리랑 고유의 색채를 잃지 않는 작품이다. 국악의 전통적 리듬과 클래식의 풍부한 화성의 아름다운 조화를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곡이다.
[출처 : 2024년 국립서울현충원 신춘음악회 리플렛]
그리고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무대는 라이브 잘하기로 유명한 발라드가수 장혜진의 무대였다. 그녀가 부른 세곡 중 <1994년 어느 늦은 밤>은 그녀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인데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니 기대가 되었다. 처음 듣는 그녀의 라이브는 목소리가 너무나 매력적이었고 밴드와 오케스트라의 반주는 그녀의 목소리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고요하고 잔잔하게 건반이 시작되며 그 위로 다른 악기들이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이는데 곡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들의 섬세한 연주에 매료된 나의 시선은 노래가 끝날 때까지 밴드에게 고정되었다.
마지막 오케스트라의 앙코르 곡 미드나잇 세레나데(Midnight Serenade)는 가장 감동적인 무대였다. 연주가 시작되고 지휘자의 손짓에 맞춰 각 파트의 연주자들이 차례로 일어나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멋있고 뭉클하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눈물이 나오는 것을 애써 참으며 군악대 무대에 이렇게 감동할 줄은 나조차 몰랐다. 평소 군대 이야기라면 관심도 없고 가장 싫어하는 주제였는데, 이런 변화가 스스로도 흥미로웠다.
공연 후 리플렛에서 읽은 국방부 근무지원단 군악대대에 대한 소개 글은 그들의 임무와 자부심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그들의 연주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국군의 긍지와 자부심을 감동의 선율로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정말 그 문구처럼, 국가의 품격과 위상을 드높이는 데 이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벌써부터 가을 음악회가 기다려진다. 덕질이 없었다면 접하지 못했을 세계와 경험들. 이 모든 것이 감사하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1989년 대통령령에 의거 창설된 대한민국 최고의 군악대대로 자리매김하며 ‘국군의 멋을 품격과 격조 있게 알리는 문화 외교사절’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국방부 군악대대는 대한민국 국내 유일 육. 해. 공. 해병대로 편성된 수준급 연주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정부기관 및 군 관련 주요 의식. 의전 행사를 지원하며, 국위 선양의 최선봉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관악대
-미국, 영국, 핀란드, 네덜란드, 독일 등 전 세계인들을 우리나라의 전통으로 감동시켜 국위 선양에 앞장서고 있는 전통악대
-정부 공식 환영식 팡파르 및 각종 오. 만찬 행사를 지원하며, 보컬, 성악, 마술 등 다채로운 공연을 지원하고 있는 팡파르대
-민. 관. 군 문화교류 및 군 문화 외교 사절단인 전군 유일의 오케스트라로서 클래식의 향연으로 명성을 높이고 있는 교향악대
국군의 긍지와 자부심을 감동의 선율에 담아 국민에게 전해드리고, 국가의 품격과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출처 : 2024년 국립서울현충원 신춘음악회 리플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