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인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어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2023년 4분기 실적 컨퍼런스 콜을 라이브로 볼 기회가 많다. 그동안 언론에 요약된 내용이나, 업체에서 발행하는 분기 리포트의 숫자만으로 기업의 실적을 가늠했으나, 컨퍼런스 콜의 Q&A 세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부차적인 정보가 많음을 뒤늦게 실감했다. 1월 중순부터 2월 첫째 주까지의 실적 발표 기간 중, 삼성전자, SK hynix, Nanya를 비롯한 메모리 반도체 업체와 파운드리 업체인 TSMC, UMC 그리고 글로벌 OSAT 1, 2위인 ASE와 AMKOR가 실적 발표를 마쳤다. 일부 대만 파운드리, OSAT 업체들과 중국 파운드리 업체인 SMIC, Huahong이 이번 주에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다.
원래는 2월 13일에 예정되어 있는 Global Foundries의 실적까지 취합하여 리뷰를 작성하려 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정보를 한 번에 리뷰하게 되면 정보를 작성하기도 번잡하고, 가공된 정보를 이해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분야별로 짤막하게 작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ASE와 AMKOR의 지난 4분기 실적과 올해 가이던스를 통해 OSAT 업계의 현황을 살피고, 전방 산업에 해당하는 대만과 중국 파운드리 업체, 메모리 업체의 실적을 별도로 리뷰할 예정이다.
ASE Holdings는 대만을 대표하는 OSAT업체인 ASE와 SPIL, 글로벌 10위권의 EMS업체인 USI를 산하에 두고 있다. 2023년 그룹 전체 매출 실적은 24.42조 원으로 2022년 29.13조 원 대비 16.2% 감소했다. ASE와 SPIL이 속한 OSAT부문의 실적은 13.06조 원으로, 작년 동기 실적인 15.87조 원보다 2.81조 원(-17.7%) 감소했다. EMS 부문의 23년 실적은 11.25조 원으로 작년 13.13조 원 대비 1.88조 원(-14.3%) 감소했다. 이어지는 실적 관련 내용은 ASE Holdings의 OSAT부문으로 한정한다.
ASE와 SPIL의 매출이 합산된 OSAT의 실적은 매출 13.06조 원, 영업 이익 1.31조 원으로 영업이익률은 10.1%를 달성했다. ASE와 SPIL의 매출 비중은 대략적으로 2:1이다. 2023년 1,2분기에 강도 높게 진행된 전방 산업의 재고 조정 여파로 인해, 양사는 2023년 내내 낮은 가동률에 시달렸다. 이로 인해 발생한 운영 비용 손실이 영업 이익을 갉아먹으며, OSAT부문의 영업 이익은 2022년 2.83 조원 보다 53.6%나 하락했다. 다만 하반기 들어 인공지능 반도체를 비롯한 고기능 반도체의 패키징 물량이 실적을 지탱하면서, 상반기 대비 개선된 매출과 영업이익을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ASE와 SPIL 매출의 한 축을 담당했던 Wire bonding 패키지의 비중이 급감하면서 낮은 가동률에 대한 고민이 길어지고 있다. 2023년 4분기 매출(3.35조 원)이 3분기(3.42조 원) 대비 감소한 주요 원인 또한 Wire Bonding 패키징 물량 감소에 있다. ASE는 컨퍼런스 콜에서 전방산업의 비수기와 Set 업체, 특히 자동차용 반도체 업체들의 재고 조정이 이어지면서, 2024년 1분기 매출이 2023년 1분기 매출 3.05 조원 대비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2024년 1분기 매출은 2020년 1분기 2.55조 원, 2021년 1분기 2.83조 원 사이일 것으로 예상된다.
컨퍼런스 콜에서 ASE의 COO인 Tien Wu는 매년 1분기는 전년 4분기 대비 10~15%가량 매출이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2021년 ~ 2022년 반도체 업사이클 시기에 ASE와 SPIL 모두 투자를 지속했기 때문에, 몸집이 커진 상태에서의 매출 역성장은 이익 보존과 공장 운영 전략에 큰 도전이 될 수 있다. ASE Holdling에서는 올해 상반기까지 전방 산업의 재고 조정이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정교한 공장 운영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ASE Holdings의 OSAT부문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Flipchip, Wafer Level 패키징과 같은 Advanced Packaing이다. ASE는 이미 중국 Site의 4곳을 매각했기 때문에 Wire Bonding과 같은 성숙 공정용 패키징을 메인으로 생산하는 곳은 대만 Chungli 공장 한 곳이다. 하지만 SPIL은 아직도 대만의 Dafong, Chungshan, Changhua 3곳의 공장에서 Wire Bonding 패키징을 대량으로 생산 중이다. 중국에 위치한 SPIL Suzhou 또한 성숙 공정 위주로 제품을 생산한다. SPIL과 통합된 실적에서 ASE를 분리하여 Advanced 패키징 비중을 단독으로 산출하면 65%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Advanced Packaging 물량의 의존도가 높아지다 보니 ASE Holdings의 2024년 패키징 투자는 선단공정의 패키징 기술 확보와 양산 능력 확충을 위주로 진행 예정이다. 또한 자동화 공정에 대한 투자를 수차례 언급한 만큼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인력 수급 이슈를 선제적으로 차단하려는 포석으로 생각된다.
AMKOR의 2023년 실적은 매출 8.51조 원, 영업 이익 7,351억 원으로 영업이익률 8.6%를 달성했다. 매출액은 작년 9.21조 원 대비 7.6% 하락했으나, 영업이익은 32.5% 증가했다. 이는 2023년 연중 이어진 인공지능 반도체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로 선단 공정 패키징 물량이 늘어나면서, 매출이 줄었음에도 작년 대비 30%가 넘는 영업 이익을 달성할 수 있었다. 특히 nVidia의 패키징 물량의 상당량을 앰코가 수주하면서 ASE 대비 양호한 실적을 달성했다. 특히 하반기로 갈수록 인공지능 반도체의 양산 물량이 늘어나면서, 송도에 위치한 A5에서 GPU, CPU 패키징을 위해 OSAT 단일 공장 중, SK hynix의 HBM을 가장 많이 사용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ASE, AMKOR 모두 Advacnced Packaging에 대한 의존도가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다만 AMKOR의 경우, 선단공정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과할 정도로 편중되어 있다. 2023년 4분기 실적 발표 자료에서 발췌한 Advanced Product(Flipchip, Wafer Level, 메모리 등)와 Mainstream Product(Wire Bonding) 간 차이는 역대 최대로 벌어졌다. 지난 4분기 매출액 2.32조 원 중, 89%인 2.06조 원을 Advanced Product를 통해 벌어들인 것이다. 상위 10개 고객사의 비중 또한 70%를 넘어서며, 일부 업체들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아졌다.
물론 경쟁사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여 선단 패키징 물량을 수주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바꿔 생각해 보면 Wire Bonding 공정을 필요로 하는 저사양 범용 제품에 대한 생산량이 급감했음을 알 수 있다. AMKOR는 Mainstream 제품의 비중을 줄곧 20% 이상 유지해 왔으나, 2023년 4분기에는 11%로 급감했다. 이는 상당히 이례적인 수치이며, AMKOR의 Mainstream 제품을 생산하는 AMKOR Shanghai, Philippines, Japan의 가동률이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이는 Mainstream용 소재를 생산하는 기업들 또한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뜻한다.
이런 상황에서 AMKOR 또한 2023년 움츠렸던 투자를 재개하여 선단 패키징 양산 Capa. 를 대폭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AMKOR는 컨퍼런스 콜에서 주요 투자처를 대만 ATT와 베트남 ATV로 언급했다. AMKOR의 발표 자료를 보면 현재 Vietnam 공장(ATV)에서 Advanced SiP와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승인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내용이 언급된다. 개인적으로는 중국에 위치한 AMKOR Shanghai의 물량 일부를 Vietnam으로 이관하고, AMKOR Shanghai의 규모를 축소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AMKOR Shanghai는 중국 내수용 물량만을 담당하는 것으로 그룹 내 물량을 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된다면 현재 AMKOR Shanghai에서 양산 중인 SiP와 KIOXIA, MICRON의 메모리 반도체 물량을 이관받아야 하기 때문에 현재 ATV에서 SiP와 메모리 반도체의 승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1년 12월, ASE가 중국 사업을 정리했던 것처럼, AMKOR 또한 중국 사업을 축소하면서 서서히 발을 빼는 듯한 모습이다. 대규모 반도체 Wafer Fab. 이 미국에 준공되는 것에 맞춰 AMKOR도 애리조나 주에 패키징 거점을 구축할 계획을 발표했다. TSMC의 지근거리에서 미국 Fabless업체의 패키징 물량을 패키징, 테스트할 예정이다. ASE는 TSMC의 대만 Fab. 의 물량을 타깃으로 하는 반면, AMKOR는 TSMC의 미국 생산 물량을 선점하려는 듯한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AMKOR 역시 2024년 1분기 가이던스를 발표하면서 전방 업체의 비수기와 자동차용 반도체의 재고 조정으로 인한 매출 감소가 예상된다는 내용을 언급했다. 상반기는 대체로 약한 분위기이지만 하반기부터 예년 수준의 매출 성장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ASE와 AMKOR 양사는 2024년의 반도체 경기는 '상저하고'고 내다보고 있다. 모쪼록 올해 반도체 경기는 작년보다 양호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다만 ASE Holdings와 AMKOR의 저사양 범용 반도체의 생산량이 감소하는 것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OSAT의 저사양 범용 반도체 생산량이 급감했다는 것은 파운드리 업체들이 보유한 레거시 공정의 가동률이 하반기 들어 낮아지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TSMC와 UMC의 실적에는 이미 성숙 공정에 대한 매출 감소가 반영되어 있다. 최근 인공지능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 TSMC의 호실적으로 반도체 업계 전체가 덩달아 들썩이고 있다. 그러나 저사양 범용 반도체는 일반 전자제품을 생산할 때, 필수적으로 사용되며 반도체이며, 범용 반도체의 생산량이 감소한다는 것은 전반적으로 경기 반등에 대한 동력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만의 중소형 파운드리 업체와 중국 파운드리 업체들의 4분기 실적이 발표되면 이를 바탕으로 우려되는 사항에 대한 내용을 파악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