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ig keep getting bigger"
반도체 제조는 자본집약 산업이다. 메모리 반도체의 삼성전자와 Foundry의 TSMC로 대변되는 Top Tier 반도체 업체들은 매년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하여 생산공장을 증설하고 생산설비를 업그레이드한다. 자전거 페달을 밟듯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반도체 제조 산업의 특성상, 투자를 멈추거나 줄인다는 것은 곧 함께 달리는 경쟁자들과의 경쟁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경쟁사들과의 격차를 줄이거나 벌리기 위해 반도체 제조 기업들은 한 해 벌어들인 수익의 상당 부분 혹은 그 이상을 기술적 해자(垓子) 구축과 생산시설 확충을 위해 투자하고 있다.
위 그림은 선단 공정 가공이 가능한 반도체 업체 현황을 정리한 표다. 수많은 업체들이 각축을 벌이던 2000년대를 지나 2010년대 후반이 되면 선단 공정에 투자할 수 있는 업체들이 급격하게 줄어든다. Fabless입장에서는 선단 공정을 맡길 선택지가 갈수록 줄어들어 결국 주문은 특정업체로 몰릴 수밖에 없다. 2021년 현재 상황에서 7nm 공정에 대한 Foundry 발주를 받을 수 있는 곳은 삼성전자와 TSMC 단 2곳뿐이다. 미세 선폭으로 갈수록 투자 비용이 급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5nm이하 공정 역시도 삼성전자와 TSMC 2개사의 경쟁이다. 이렇게 되면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선단 공정 경쟁에서 밀려난 업체들끼리 쪼그라든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을 하다가 순차적으로 퇴출된다. 2019년 말 발생한 COVID-19로 인해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며 중소형 Foundry 업체들의 숨통을 트여 줬다. 하지만 예전 Memory 업계가 그랬듯 시장 내 인수합병과 사업 철수로 인해 향후에는 지금보다 훨씬 작은 수의 업체들로 재편될 것으로 생각된다.
위에서 Foundry 업체 상황을 들어 설명했으나 OSAT로 불리는 반도체 후공정 위탁 업 역시 규모의 경제 법칙을 피할 수 없다. 특히 Wafer 설계, 가공과 비교해 OSAT 업계의 저마진 구조로 인해 단시간 내 투자 비용 회수가 어렵다. 고객사 Forecast 혹은 반도체 기술 트렌드에 따라 신규 생산 설비를 증설해 놨는데 양산 일정과 계획 간 괴리가 발생하면 OSAT업체는 선제 투자에 대한 감가상각과 기회비용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그렇다 보니 인수합병과 대규모 투자는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업체들이나 정부의 "묻지 마" 지원을 받는 한정된 업체들이 아니면 선뜻 실행으로 옮기기 쉽지 않다. 아래 있는 표는 한국, 미국, 중국, 대만 4개국을 대표하는 4개 OSAT업체들에 대한 10년간의 매출액 규모 비교 자료다. 비교를 위해 한국의 최대 OSAT인 SFA반도체를 기준으로 설정하고 각 업체와의 매출액 격차 변화를 비교했다. 2012년 SFA와 비슷한 규모였던 JCET는 2020년 기준으로 매출액 차이가 약 8배로 벌어졌다. ASE & AMKOR & JCET 3개사의 매출액 Trend를 보면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SiP의 생산량이 늘기 시작한 2015년을 기점으로 매출액 차가 급격하게 벌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들 업체들은 공격적인 M&A와 꾸준한 설비 투자를 통해 몸집을 키워 시장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무형의 자산을 가지고 경쟁하는 Game업계의 경우,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기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업체들을 밀어 내고 순식간에 업체의 강자로 떠오를 수 있다. 하지만 OSAT산업은 일견 조선업과 유사하다. 배를 지을 수 있는 독(Dock)의 수가 조선업체의 경쟁력인 것처럼, Fabless의 Wafer를 가공할 수 있는 공장의 규모, 보유한 설비의 수가 곧 OSAT업체의 규모와 경쟁력을 대변한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Wafer를 가공할 수 있는 충분한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Fabless업체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과연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이해를 돕고자 시장의 Major player와 비교를 통해 국내 OSAT업계의 현황을 짚어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OSAT업체들은 패키징과 테스트 사업을 병행한다. 패키징과 테스트 사업부를 모두 가지고 있더라도 고객사와의 계약을 통해 "A"라는 Device를 패키징만 할 수 도 있고, "B"라는 Device의 테스트만 진행할 수도 있다. 기술력과 비용적 우위에 있는 기업의 경우 Turn-Key 수주를 통해 "A" Device의 패키징부터 테스트까지 일괄 진행하기도 한다. 이중 테스트 사업을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를 "테스트 하우스(Test House)"라고 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테스트하우스는 대만의 "KYEC"로 2020년 연결 매출액 1.16조 원이다. 하지만 Global No. 1 ASE Holidngs(ASE + SPIL)의 2020년 Test 매출액은 1.89조 원으로 KYEC보다 7천3백억 원 많다. 국내 최대 규모의 테스트 하우스는 "테스나"로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테스트를 주로 담당하며, 2020년 매출액은 1,325억 원이다. ASE Holdings의 1/14, KYEC의 1/9 수준이다. 매출액의 차이는 생산량과 기술력의 차이이며 이는 얼마나 다양한 반도체를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느냐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OSAT업체는 주요 고객사에 따라 자신이 주력으로 하는 반도체 종류가 다르다. 예를 들어 ASE, AMKOR의 경우 시스템반도체 위주로 사업을 영위하지만 우리나라의 대부분 OSAT는 메모리 반도체 패키징이 주요 수입원이다. Global No. 1 메모리 반도체 패키징 업체는 대만의 PTI로서 일본의 Kioxia(舊Toshiba)와 Micron을 주요 고객사로 두고 있다. PTI Group안에는 시스템반도체 패키징만을 담당하는 GREATEK이 포함되어 있으나, 단순비교를 위해 분리하지 않았다. PTI 매출액은 2020년 3조 원으로 국내 메모리 반도체 패키징 업체들의 매출액을 모두 더한 것보다 2배 이상 많다. 규모의 차이는 영업이익 등 수익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축적된 자본은 R&D, 신규 투자에 쓰여 시간이 지날수록 업체 간 격차는 계속 벌어지게 된다.
R&D(연구개발)은 기업을 영속할 수 있게 해주는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모든 R&D가 성공할 수는 없지만 지속적인 투자만이 차별화된 기업의 경쟁력을 보장하며 이는 일반적으로 투자 규모에 비례한다. 국내 OSAT업체들의 R&D 지출 현황을 대만, 미국, 중국 업체들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2021년 기준 ASE Holdings의 R&D 지출은 국내 전체 OSAT들의 R&D 지출 합계의 약 10배에 달한다.(ASE & SPIL - 패키징, USI - EMS 포함 ) OSAT업계에서 이제는 완전히 자리를 잡은 중국 업체들과 비교했을 때도 격차가 크다. 하기 중국 업체들의 R&D 지출은 OSAT 단독 사업(Pure OSAT)을 하는 경우만 추산한 금액이다. 메인 사업을 가지고 있으며 OSAT를 별도의 사업부 형태로 가지고 있는 업체들까지 합산할 시에는 격차는 더 벌어진다. 국내업체들의 R&D 지출액만 놓고 보면, 중국 3위 OSAT인 TSHT 1개 업체의 R&D 지출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내 반도체 후공정 연구개발(R&D)은 거의 대부분이 Wafer 가공 원청업체인 삼성전자와 SK hynix에서 개발되어 패키징 위탁을 받는 업체들로 이관된다. OSAT는 별도의 연구개발 활동 없이 발주를 주는 원청사와 동일한 설비를 보유한 상태에서 원청사에서 최적화한 공정 조건을 따르면 된다. 설비 보유 대수에 따른 수주 물량과 원청사에서 건네 준 공정 조건으로 최대 수율을 달성하는 것은 OSAT의 몫이다. 장기간에 걸친 원청업체와 OSAT의 업무 분장에 따라 OSAT업체들의 연구개발 활동이 원청업체에 종속되면서 국내 OSAT업체들의 사업은 국내 원청사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네패스(Fan-Out)와 하나마이크론(하나머티리얼즈)처럼 원청사 물량 수주 외, 신규 비즈니스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업체가 아니라면 매출액에서 연구개발 지출이 차지하는 부분은 극히 미미하다. OSAT 업(業)은 많은 업체들의 경쟁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수익이 높지 않다. OSAT업체들에게 낮은 수익에 레버리지를 더한 연구개발은 기업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선단 패키징 공정에 대한 주요 연구개발은 이를 수행할 여력이 있는 1 tier 업체들을 위주로 진행된다.
국내 OSAT업체들 중, Fan-Out Package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네패스의 경우, Fan-Out 패키징 기술 개발을 위해 상당한 연구개발 비용이 지출되고 있다. 2021년 기준 네패스의 전체 연구개발 비용은 612억 원으로 국내 OSAT업체들 연구개발 비용 중 67%를 점하고 있다. 특히 Fan-Out 패키징 자회사인 네패스 라웨(자회사 네패스 하임-舊Deca Technology Philippins)의 연구개발 비용은 461억 원(네패스 라웨 131억 원, 네패스 하임 330억 원)으로 네패스 라웨의 연간 매출액 407억 원을 상회한다. 이처럼 다른 업체들과 차별화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과 인력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 단기간에 매출액을 넘어서는 연구개발 비용을 투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격차가 벌어지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개발 비용은 더욱 높아지기 때문이다. 모쪼록 네패스에서 개발 중인 Panel level Fan-Out 패키징 기술을 통해 시스템 반도체 패키징에서 우리나라 영향력이 확대되었으면 한다.
서두에서 언급한 기업의 규모에 대한 내용이다. 국내 OSAT업체 전체 고정자산은 2.7조 원(OSAT사업 외 他사업부문 포함)으로 AMKOR 1개 사의 규모와 유사하다. 하지만 2020년 AMKOR 매출액 5.96조 원, 국내 OSAT 전체 매출액 2.78조 원에서 볼 수 있듯이 유사한 고정 자산 규모라도 단일 기업 안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내지 못하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 고정자산은 OSAT 규모와 향후 성장 가능성을 예측해 볼 수 있는 정보 이기 때문에 OSAT 업체들의 고정자산 규모 변화와 고정자산 증감률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 OSAT 업체들의 규모는 대만, 미국, 중국의 1st Tier 업체들과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COVID-19로 인해 반도체 산업의 호황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며, 선두권 업체들로의 패키징 물량 쏠림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이를 반영하여 선두권 업체들은 2020년 1분기 이후 매 분기마다 큰 폭의 매출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언론에서는 삼성전자의 Foundry 투자 확대를 통해 생산되는 Wafer가 국내 OSAT 업체들에 의해 패키징 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낙수효과"로 인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OSAT업체들의 매출액이 늘어날 것이라고 하는데 "행복 회로"를 너무 과하게 돌린 듯하다. 삼성전자 Foundry의 고객사인 Fabless업체들과 이미 수십 년간 거래해온 거대 OSAT들이 포진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Foundry 사업을 확대하면 패키징 물량이 저절로 국내 OSAT업체로 이관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까?
대만, 미국, 중국의 경쟁사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압도적인 기술력 & 생산 시설이 현재 우리들에게는 없다. 언론에서 말하는 낙수효과를 기대하기에는 국내 OSAT의 그릇 크기가 너무 작다. 지금처럼 국내 OSAT업체들이 Memory 반도체 혹은 DDI(Disply Driver IC)에 국한하여 사업을 영위하고자 한다면 기존에 취했던 전략에서 큰 폭의 수정이 필요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이 Foundry에서 OSAT(패키징 & 테스트)까지 이어지는 완전한 과실을 취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