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AT로의 과도한 쏠림과 공급 과잉이라는 복병
2000년대까지 중국 OSAT 산업은 대량의 반도체를 값싸게 생산하는 전형적인 박리다매 방식을 활용하여 성장했다. 이 기간 동안 중국 OSAT 업체들은 대만, 미국 등 선진 업체와의 기술 격차로 인해 저가 반도체 패키징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생산되는 패키지의 단가가 워낙 낮고 이윤이 박하다 보니 기술 개발이나 생산시설 확충을 위한 자본 축적이 사실상 어려웠다.
중국 OSAT업계는 2014년 '반도체 산업 발전 추진 요강'을 통해 전환점을 맞게 된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되면서 해외업체의 인수를 통해 선진 반도체 기술과 생산 기반 확보라는 두 가지 토끼를 잡을 수 있게 됐다. JCET의 StatsChipPAC인수(2015년), TSHT의 Flipchip International(2015년), UNISEM(2018년) 인수, TFME의 AMD 후공정 부문 인수(2016년)가 성사되면서 중국 OSAT업체들은 글로벌 반도체 패키징 시장의 전면에 등장했다.
2010년 중국 OSAT 전체 매출액은 1조 3천억 원 수준이었으나 2020년 9조 1천억 원으로 7배가량 성장했다. 이 밑바탕에는 중국 Top 3 OSAT의 성장뿐만 아니라 중앙정부 & 지방정부 주도의 OSAT 그리고 민간에서 주도한 OSAT 업체들의 시장 참여가 깔려 있다.
중국에는 자국 OSAT 업체들 뿐만 아니라 해외 OSAT업체의 공장들과 IDM(종합반도체회사)의 패키징 공장까지 다수의 반도체 패키징 공장이 존재하는데 여기서는 중국 자국 OSAT에 대해서만 다루고자 한다.
중국 OSAT업체들을 투자 주체로 구분해 보면 1세대 업체들(민간 설립 + 정부 지원)과 정부 주도 OSAT(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그리고 민간 업체 주도 업체로 나눌 수 있다. 해외 업체 인수를 통해 기술적 도약을 한 1세대 업체들(JCET, TFME, TSHT)의 경우, 생산 가능한 패키징 line-up의 폭이 넓은 반면, 중소형 업체들의 경우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 OSAT : JCET, TFME, TSHT - All round players
WLCSP(Image Sensor), Forehope(SiP), ChipPacking(Discrete & Low end 시스템반도체),
Xinde(Mid-Low end 시스템반도체), Unionsemicon(COF), Chipmore(COF)
-. IDM(종합 반도체 회사)의 OSAT부문 : CR-Micro(차량용 반도체)
-. 기존 사업분야를 가진 업체(Gr.)에 소속된 업체 : Taiji(메모리), Payton(메모리),
QLE(메모리 & 시스템 반도체용 Flipchip BGA)
-. Pure Test : LEADYO, SINO IC TEST, Chip avanced
중국 정부는 자국 내 반도체 산업을 독려하는 한편, 사모펀드를 통한 해외 반도체 기업의 우회 인수를 지속 추진해 왔다. 이를 목적으로 설립된 Wise road 컨소시엄은 2년 사이에 대규모 M&A를 여러 건 성사시켰는데 그중 OSAT와 연관된 Project는 UTAC 인수(2020년 8월)와 ASE Holdings의 중국 내 4개 공장 인수(2021년 12월)가 있다. 현재 UTAC은 본사만 싱가포르에 있다 뿐이지 Group 구조조정과 신규 투자 활동은 모두 Wise road의 통제를 받아 이뤄지고 있다. UTAC은 피인수 직후 중국 옌타이(烟台)에 신규 공장을 착공하며 중국 내 생산 공장 확충을 위한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ASE 또한 일련의 구조조정 과정을 거쳐 중국 내 4개 Site의 효율화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UTAC은 ASE Holdings 4개 공장(ATX Semiconductor로 개명-日月新半導體)과의 합병 가능성도 점 처지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UTAC은 Wise road의 비호 아래 다시금 OSAT 글로벌 Top 10안에 진입함은 물론 기존 Ranking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
급성장하는 중국의 패키징 업체와는 달리 중국의 순수 테스트 업체들은 상당히 더딘 성장을 보인다. 선진 테스트 업체들과 비교했을 때 규모적 열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테스트(수주)할 수 있는 반도체의 종류가 적고 저가 반도체의 샘플링 테스트를 위주로 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 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증권사 기업 분석 보고서를 보면 내심 대만의 KYEC나 Ardentec과 경쟁하기를 기대하고 있으나 사실상 직접적인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의 규모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에서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기 때문에 관련 업체, 지방 정부는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Wafer가공 공장의 경우, YMTC와 CXMT처럼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업체들조차 계획된 양산 일정을 맞추기 어려울 만큼 진입 장벽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 정부들은 보다 진입장벽이 낮고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OSAT업체에 대한 투자 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다. 2018년을 전후로 Top 3 업체들 JCET(Jiaxing), TFME(Xiamen), TSHT(Nanjing) 은 신규 공장 건설 시, 지방정부의 투자를 받아 신규 공장을 건설했으며 Forehope(Ningbo), Xinde(Nanjing), QLE(Shenzhen)와 같이 지방정부에서 직접적으로 투자에 관여한 업체들도 있다.
향후 우려되는 상황은 공급 과잉으로 인한 중국 패키징 업체 간 집안싸움이다. 지방 정부에서 너도나도 OSAT를 설립하고 공장을 유치하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공장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저가 반도체 패키징에서 중국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경쟁사와 차별화가 어려운 기술과 엇비슷한 생산 능력은 중소형 업체들로 하여금 출혈 경쟁을 강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QLE와 같이 생산설비를 갖췄음에도 고객사를 찾기 어려운 특이한 상황에 직면할 업체들이 생길 수 있다. QLE는 원래 대만계 OSAT인 SPIL에서 중국의 거대 통신업체 화웨이의 반도체를 패키징 하게 설립한 공장이었으나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공장 가동도 못해보고 2020년 심천의 메모리 모듈 회사로 매각되었다. QLE에서 보유하고 있는 설비는 고기능 Flip Chip을 패키징 하기 위한 것으로 화웨이의 스마트폰 사업이 주저앉으며, 잠재적인 고객사를 잃게 됐다. 중국 내에는 화웨이와 동일한 수준의 반도체 설계를 할 수 있는 업체가 한정되어 있고, 그마저도 중국 Top. 3 업체에서 패키징하고 있다 보니 QLE는 고가의 설비를 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중국의 팹리스 설계 능력을 넘어서는 패키징 설비가 과잉 투자됐을 경우, 고객사가 없어 공장을 가동하지 못할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
중국 자국 Wafer 가공업체들은 대부분 Foundry 업체들이다. 그중 SMIC는 중국 Foundry 업체의 대장 격으로 중국 Wafer 가공 매출액의 약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Foundry 점유율은 4%에 불과하다. 대만 역시 자국 반도체 산업을 이끌고 있는 업체들은 대부분 Foundry 업체들이다. 대만의 1위 Foundry 업체인 TSMC의 글로벌 점유율은 55%로 경쟁사 대비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2020년 기준 TSMC와 SMIC의 매출액은 각각 54조 원과 5조 원으로 매출 규모 차이는 약 11배에 달한다. TSMC와 SMIC는 미세공정 기술 격차로 인해 Wafer 가공 Node별 매출 비중이 판이하게 다르다. TSMC는 2020년 4Q 기준으로 5nm & 7nm의 매출 비중이 50%에 달하는 반면, SMIC는 28nm & 14nm를 통틀어 9%의 매출 비중을 갖고 있다. 최선단 공정 경쟁에서 밀려나다 보니 SMIC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추가 공장 건설을 통한 생산 물량 확대밖에 남지 않았다. 최근 차량용 반도체의 품귀로 인해 SMIC를 포함한 중국 Foundry 업체들은 투자 방향을 차량용 반도체로 설정했다. 이를 보조하기 위해 OSAT 업체들은 당분간 차량용 반도체 패키징을 위한 공장 설립과 차량용 반도체 양산을 위한 공장 인증 작업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OSAT업체는 일반적으로 자국 내 위치한 Wafer 가공업체와 전략적인 협업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Wafer 가공 업체의 미세공정이 발전할수록 OSAT의 패키징 공정 기술 역시 동반 성장한다. 만약 자국 내 Wafer 가공업체들의 미세공정 개발이 정체될 경우, 그와 협업하는 OSAT의 패키징 공정 개발 역시 정체할 수밖에 없다.
대만과 중국의 OSAT업체 중 1위 업체인 ASE Holdings(49.52%)와 JCET(49.44%)는 공교롭게도 자국 내에서 유사한 점유율을 보인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업체들이 그 나라의 해당 산업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시장 지배력이 있는 업체를 통해 대만과 중국 양국의 사업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아래 있는 자료는 양국 간 반도체 사업 규모 차이를 보여주는 도표로서 중국 SMIC는 2017년 JCET에게 매출을 추월당한 뒤, 2020년에야 Foundry 산업의 호황으로 역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만의 ASE Holdings 매출은 줄곧 TSMC 매출 규모 대비 2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국가별로 Foundry 산업과 OSAT산업을 전체적 비교해 보면 대만은 Foundry 업체 매출 규모 대비 OSAT비중은 30% 수준이나, 중국의 경우 140% 수준으로 중국 반도체 산업이 얼마나 OSAT 쪽으로 쏠려 있는지 알 수 있다. 설비와 생산 공장 그리고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금액은 SMIC가 JCET보다 월등히 높지만 실제 매출로 연결되는 투자금을 보면 JCET 대비 가성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적은 투자 비용 대비 빠른 매출 발생, 이것이 중국 지방정부들이 앞다투어 OSAT에 투자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중국 정부에서는 반도체 패키징 기술 개발을 위해 2012년 NCAP(중국명 화진 반도체)를 설립했다. NCAP의 설립 시 중국 OSAT업체와 기판(Substrate) 업체들이 주축이 되었는데 이 컨소시엄의 주된 목적은 중국산 원자재를 사용한 High-End 패키지 개발이다. 중국 정부는 오랜 기간 반도체 자립을 준비해 왔는데, 최종적인 목표는 반도체 원부자재의 중국 현지 조달(국산화) 및 중국 자체 기술을 통한 기술 내재화다.
NCAP를 통해 개발된 패키징 기술과 반도체 기판은 반도체 자립이라는 중국 정부의 장기 계획에 부흥함과 동시에 중국 반도체용 기판 산업 확대의 디딤돌이 될 예정이다. 또한 컨소시엄에 속해 있지 않은 중국 국적의 OSAT에게도 저렴한 비용으로 기술이전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OSAT업체들은 신규 패키징 개발 시, 회사의 명운을 걸어야 할 만큼 기술 개발 투자에 대한 리스크가 크다. 만약 NCAP와 유사 구조의 기술개발 기구를 운영한다면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또한 컨소시엄에서 개발된 패키징 기술의 횡전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이 개발한 소재를 채용한 High-End 패키지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봤을 때, 벤치마킹을 검토해봐도 좋을 사례로 생각된다.
华进半导体封装先导技术研发中心有限公司-National Center for Advanced Packaging (NCAP China)
"일본 전자, 반도체 대붕괴의 교훈(2010)"의 작가 유노가미 다카시(湯之上隆-미세가공 연구소장)는 2007년 SMIC를 방문했을 때, 중국인 엔지니어 대신 대만인, 일본인, 미국인에 의해 회사가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보고 큰 위화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후 그는 SMIC 방문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 반도체 산업이 고도성장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3가지 이유를 꼽았다.
첫째, 중국인은 가족과 소수의 친구밖에 신뢰하지 않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팀워크가 없다.
둘째, 중국인에게는 무엇인가 판단이 필요한 일을 맡길 수 없다. 판단 시 가장 안이한(편한) 선택을 한다.
셋째, 끈기 있게, 기술 개발의 방식을 가르쳤다고 가정해도 일이 숙달되는 순간 급료가 더 좋은 곳으로 옮겨 버린다.
유노가미 다카시 소장이 SMIC를 방문한 지 벌써 15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2022년 현재 중국이 직면한 반도체 산업의 정체 원인에 대해 이보다 명확하게 풀어낸 글은 보지 못했다. 몇 년 전부터 중국 정부에서는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회사에서 근무 경험이 있는 베테랑 엔지니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취업 Offer를 뿌리고 있다. 이렇게 영입한 엔지니어들에 의해 신기술이 개발될 수 있으나, 생산라인의 수율을 높여 수익을 확보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다. 또한 반도체 생산 라인은 베테랑 엔지니어 몇 명이서 가동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정교한 시스템과 함께 조직 구성원들의 일관된 목표의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게 때만에 삼성전자 혹은 TSMC에서 일했던 핵심 인재를 통해 정체된 기술의 실마리를 찾을 수는 있을지라도 신규 공정을 적용한 Wafer의 대량 생산에서 대부분의 중국 업체들은 크게 고전할 수밖에 없다.
유노가미 다카시 소장이 언급한 3가지 이유 외 추가적으로 중국 반도체 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병폐를 꼽자면 바로 중국 경제의 발전과 함께 커져만 가는 중국인들의 금전, 즉 돈에 대한 욕망이다.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조금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금전적 이득을 노린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형태의 불법과 편법이 난무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정부와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금이 커질수록 투자금을 노리는 수법은 더욱 대담하고 집요해지는 반면, 이 같은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문화가 팽배해지고 있다.
지난 2020년 반도체 문외한 3명이 만든 우한훙신반도체제조(HSMC)가 설립 3년 만에 청산 절차를 밟고 있다는 뉴스가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이들은 7nm 미세공정 개발을 통한 최신 반도체 양산을 미끼로 중국 정부가 출자한 2.7조 원을 먹튀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심지어 TSMC의 최고 기술자였던 장상이(蔣尙義)를 HSMC의 CEO에 앉히며 세간의 의심을 불식시키는 뻔뻔함을 보였다. 우한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야심 차게 첫 삽을 뜬 HSMC에게 남은 것은 짓다만 흉물스러운 공장 뼈대뿐이다. 공장 건설과 설비 구매를 위해 투자됐어야 할 2.7조 원의 행방은 알 길이 없다. 이런 대형 사건에 대해 당국은 후속 수사도 없었을뿐더러 어느 순간 HSMC에 대한 뉴스는 헤드라인에서 돌연 자취를 감추었다. 중국 정부에서는 수백조 원의 자금을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겠다고 하지만 과연 투자금의 몇 %가 반도체 산업 발전에 실제 사용될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이는 비단 HSMC 한 개 회사에 대해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중국 반도체 산업 전반에 퍼져 있는 고질적인 문제이며, 이로 인한 병폐는 갈수록 커져갈 것이 분명하다.
과거 LED, 태양전지, LCD 등 한 때 우리가 미래 먹거리로 삼고자 했던 산업군이 중국의 저가 공세에 의해 시장을 잠식당했던 기억 남아있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중국의 막대한 투자는 분명 우리나라에게 위협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들 역시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항하여 집중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필생즉사 즉사필생(必死則生 必生則死)"의 마음 가짐으로 중국이 따라올 수 없는 격차를 유지하는 것만이 중국을 이웃에 둔 우리나라 산업계의 유일한 돌파구로 생각된다. 중국을 비롯한 경쟁국들의 움직임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저력과 가능성을 믿고 다가올 미래에 꿋꿋이 맞서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