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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ward Choi Sep 25. 2022

1. Welcome to Back-End

"어서 와! 반도체 후공정은 처음이지?"

"반도체란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많은 회사들과 사람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을까?"

  2006년 반도체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내가 반도체 업계에 들어와 느낀 첫 감정이다. 반도체라고는 컴퓨터 업그레이드할 때 교체해본 DRAM 모듈과 디지털카메라에 사용하던 128MB Nand Flash가 전부였던 내게, 반도체 산업은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TV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우주선 내부와 같은 Wafer 팹을 실제로 본 순간은 마치 오지에서만 살던 사람이 처음으로 마천루의 숲을 본 것처럼 모든 것이 놀랍기만 했다. 경부 고속도로와 영동 고속도로를 그렇게 많이 지나다녔지만 기흥 나들목과 이천 나들목 옆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메모리 반도체 공장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만큼 반도체와는 거리가 멀었다.


  중국어를 전공한 문과생의 입장에서 처음으로 접한 반도체 공정과 제조 시설들은 마치 전혀 다른 세상에 서 온 것만 같았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총체적 난국 속에서 그저 업무를 통해 하나하나 배워나갈 수밖에 없었다. 반도체 장비회사에 입사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였기 때문에 반도체를 생산하는 공정의 큰 줄기를 파악하고 생소한 반도체 용어들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Fab.이라는 거대한 공장에서 고가의 장비들을 이용하여 Silicon Wafer를 가공한다. 패턴이 형성된 Wafer는 EDS(Electric Device Sort) 공정의 Probe 테스트를 거쳐 Back-End라 불리는 후공정에서 패키징 및 최종 성능 테스트를 받게 된다."

 큰 줄기만 이해하면 될 줄 알았던 반도체 제조 공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Wafer의 성능과 특성에 따라 무수히 많은 공정으로 나뉘는 것을 알게 됐다. 각각의 세부 공정에서 발생하는 작은 실수가 곧바로 반도체 수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자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 혹여 실수라도 할까 봐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신경이 곤두선채로 하루를 보내고 늦은 밤 퇴근한 뒤에는 시간을 내어 반도체 공정 공부를 했다. 낯에 방문했던 고객사 공정이 반도체를 생산하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기 위해 반도체 공정기술과 관련된 두꺼운 책을 붙들고 읽고 또 읽었다. 처음에는 책에 있는 모든 단어를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했으나 이는 내 영역 밖의 능력임을 금새 깨달았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에 골몰하지 않고 각 공정에 사용되는 설비 그림이라도 익히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반도체 장비 회사 입사 초기에는 설비 Set up과 유지보수 업무를 담당했다. 3년여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국외 내 반도체 생산업체들의 전, 후공정을 두루 경험하다 보니 시야가 넓어지며 자연스레 반도체 산업을 이해하는 깊이가 깊어졌다.

 "반도체를 제조 공정을 크게 8개의 공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각각의 공정들을 세분화하면 반도체 종류에 따라 600~800가지로 나뉜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만 보인다고 했던가. 막연했던 반도체 제조 공정을 자의든 타의든 지속적으로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다 보니 8대 공정이라고 불리는 공정 안에 무수히 많은 세부 공정들이 있으며, 각각의 공정에 사용되는 장비, 소재가 모두 상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맞는 건지, 어떤 걸 더 배워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공부해야 하는지 속 시원하게 물어볼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 반도체 공정을 알면 알수록 넓디넓은 바다에서 길을 잃고 표류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중, 대만의 반도체 패키징 업체들을 고객사로 둔 BIB(*Burn-In-Board : 반도체 완제품을 평가하기 위한 소켓이 실장 된 PCB 기판) 관련 해외영업을 맡게 됐다. 기존에 맡고 있던 국내, 중국 업체들과의 장비 업무 외, 대만 BIB 업무를 함께 맡다 보니, 내가 어떤 업체들과 거래하고 있는지조차 파악할 겨를이 없었다. 마치 차안대(遮眼帶-말 눈가리개)를 채운 경주마 같이 눈앞에 있는 업무만을 쳐내기 급급했다. 대만의 패키징 업체들이 왜 BIB를 필요로 하는지, 어떤 시스템에 의해 신규 BIB의 설계와 테스트 소켓의 사양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궁금증조차 갖지 못할 정도로 업무에만 매몰되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판단할 수 없을 만큼 반도체 후공정 업계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에 와서 그때를 뒤돌아 보면 당시 대만 고객사들과의 업무 경험이 있었기에 이후 반도체 소재 업체에 조금이나마 쉽게 적응했다고 생각한다.  

 반도체 장비회사에서 5년을 근무하고, 2011년 반도체 소재 업체로 이직하여 Glabal 반도체 패키징 업체(OSAT-Outsourced Semiconductor Assembly and Test)들을 위한 패키징 소재 해외영업 업무를 맡게 됐다. 반도체 후공정 업계는 그동안 내가 경험했던 삼성전자, 하이닉스(*SK그룹 편입 전)의 전공정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그동안 가공된 Wafer가 패키징 공정을 거쳐 검은색을 띤 사각형 형태의 반도체로 변모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떤 공정을 거쳐 완성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막상 반도체 후공정을 경험해 보니 후공정 또한 반도체 전공정과 마찬가지로 그 안에 수많은 공정과 그 공정을 지원하기 위한 설비, 원부자재 업체들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반도체 패키징용 원자재를 공급하면서 OSAT들의 흥망성쇠를 곁에서 지켜봤다.




  반도체 업계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개인적으로 반도체 산업을 이해하는 방식에 전환이 있었다. 산업 전체를 무작정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현재 업무와 연관성이 있으면서 내가 지속적으로 관심 가질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방식을 택했다. 그렇게 반도체 후공정 업계의 원부자재와 반도체 조립 & 테스트 위탁 업체(OSAT) 산업에 대해 중점을 두고 안목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되자 반도체 산업이라는 넓은 바다에서 후공정 업계라는 큰 강을 거슬러 올라 패키징용 원자재와 OSAT라는 하천에 다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A"라는 업체가 만들어 내는 작은 물결이 어떤 의미 인지, 이 물결이 "B", "C"라는 업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미약하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반도체 업계에 몸담은 시간을 복기해 보면 반도체 업계에 첫발을 내디딘 그 때, 내가 몸담고 일해야할 반도체 업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 내가 일하게 될 업계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가 바탕에 깔려 있었다면 향후 업무를 익히고 신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보다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이는 반대로 생각해보면 반도체 업계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느끼는 막막함을 해소시켜줄 시장 정보가 제한적이라는 뜻과 같다. 이는 시장과 기술 트렌드에 관련된 정보로서 회사에 입사하여 받는 통상적인 직무 교육과는 별개의 것이다. 삼성전자와 SK hynix등 시장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있는 대형 반도체 업체가 아닌 이상, 일반 업체에서는 급변하는 시장의 정보를 세세히 그리고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2022년 현재를 16년 전과 비교해 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인터넷에서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는 증권사 보고서에는 사실과 동떨어진 편향적인 정보가 다수 포함되어 있어 자칫 왜곡된 시각을 갖게 한다. 또한 시장 정보를 선점한 해외의 거대 research 업체들은 개인이 엄두도 내지 못할 고가의 보고서를 수백만 원에 판매하고 있다. 막상 고가의 보고서를 구매해 읽어 보면 실제 시장과 괴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던 차에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 온 자료와 고객사들의 현황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반도체 후공정, 특히 OSAT 업계에 대한 글을 쓰게 됐다. OSAT 시장의 전반적인 내용을 통해 시장의 규모와 규모의 경제의 중요성 그리고 반도체 경기 순환에 따른 시장 변화를 다뤘다. 또한 국가별 OSAT 시장 현황을 살펴보고 우리나라 업체들의 미래 전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부족한 글이지만 반도체 후공정 업계에 첫 발을 내딛고 막막함을 느끼고 있을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들을 위해 회사 생활을 하며 쌓은 시장에 대한 정보를 후공정을 처음 사람들을 위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을 풀어썼다. 또한 반도체 후공정에 몸담고 있지 않아도 OSAT업계의 생태계를 이해하거나 흥미가 있는 분들의 궁금증 해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반도체 패키징의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업계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뤘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 주길 부탁드린다.   


 내가 가진 OSAT 업계에 대한 모든 퍼즐을 글로 옮겼다. 내가 쓴 글을 통해 얻은 퍼즐과 이제 새로운 업무와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퍼즐을 조합하여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 나가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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