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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렌 Feb 22. 2020

넌 특별하지 않아, 하지만 그들도 특별하지 않아.

특별은 차별을 가져오고, 노력의 성과를 폄하하고, 집중하는 걸 방해한다.

넌 특별하지 않다.


당연히 나도 특별하지 않다. 그리고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우리 모두 특별하지 않다.


간혹 정신과의사들이나 상담전문가들은 말한다. 자존감이 낮거나 자신감이 떨어진 사람들에게 당신은 특별하다고 말하면서 용기를 주거나 격려한다. 뭐, 그런 상황에서는 그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저 생각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


난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존경할만한 사람, 롤모델을 찾아보지만 딱히 찾을 수 없다. 내가 잘나서? 아니 전혀 아니다. 나는 특별하지 않다. 10대 때 이미 알았다. 그렇다고 내가 거둔 성취나 성과들, 내 현재의 모습이 부족하다 느끼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내가 해낸 것들에 박수를 보낸다. 다만, 그게 내가 특별하다는 걸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나는 많은 한국인들이 갖는 유럽의 선진국에 대한 선망이나 부러움도 없다. 그들은 근현대에 저지른 약탈에 근거하여 지금 좀 잘 살 뿐이다. 인권운운할 자격이 일도 없는 국가들이다. 뭘 부러워 하나. 그렇다고 한국이 특별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우리 역사가 자랑스럽냐면 그런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으며, 그저 모든 국가가 그렇듯 희비가 있다. 우리나 동남아 국가 국민들이나 유럽인들이나 그저 다를 뿐 특별하지 않다.


우리가 부딪히고 다투고 생각을 굽히지 않는 이유, 내가 불행한 이유는 대체로 자신이/타인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전제로 깔고 시작해서 나온다. 차별과 비교도 마찬가지다. 나는 특별하다고 했는데, 나의 성적은, 나의 성취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 거기서 부딪힌다. 괴리가 발생한다. 쟤는 특별한 재능을 타고 났다. 당연히 내가 좀 노력한다고 쟤보다 나을 수 없으니, 이래서야 행복할 수가 없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특별한 사람은 아주 드물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는 그런 사람들은 희귀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 전교 1등이든 국가대표든, 대통령이든 다 마찬가지다. 어떤 생물이든 다 미묘하게 다른 특질이나 특징, 성격을 갖고 있는데 그렇다고 그 개체들이 다 특별하다고 생각되거나 취급되진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사업가들이나 정치인, 혹은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그들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기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위인전에서 한 발 떨어져서 사람을 보자. 우리가 성공했다 여기는 현대 대한민국정치인, 기업인들 중에 전과자 아닌 사람 몇이나 있던가? 자본주의 사회이면서도 엘리트형 부정부패의 특징을 가진 우리나라 안에서는 깨끗한 사람이 성공하기 어렵다. 미투운동의 대상들은 모두 권력자이고 각 분야에서 성공가도를 걷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자서전들을 보면 흔히 접하게 되는 성공스토리?대부분 과대포장과 거짓이 잔뜩 들어간다.


특별히 성공한 사람들의 실태야 뉴스만 봐도 매일 쏟아지고 청문회만 봐도 수두룩 하게 나오니, 특별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행하는 행위의 실례를 들어보는 게 좋겠다. 다 내 주변의 실제 사례들로 30대 초반부터 50대까지의 사람들이다.


50대 남성인 A는 사진가이며 작가이다. 그는 흔히 말하는 큰 키에 잘생긴 얼굴 등 좋은 외모를 갖진 않았지만 사교적이고 부드러운 성격과 좋은 목소리, 그리고 유럽 유학이라는 백그라운드를 가졌다. 그가 책을 한 권 또 냈는데 서문을 몇 줄 읽고 나서 나는 그와 멀리하기 시작했다. 선물로 받은 책은 버렸다. 사진가인 그는 서문에서 그 책을 내기 위해, 책 안에 들어가는 모든 사진을 본인이 찍고 본인이 현상, 인화를 거쳤고 그로 인해 수 개월을 암실에서 보냈다고 적었다. 옆에서 본 나는 그게 거짓말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찍기만 했고 현상은 현상소에서 했고 프린트는 후배를 시켜 후배가 몇 주를 암실에서 살며 해주었는데 약속한 대가도 절반 정도 밖에 지불하지 않았고 그걸로 두 사람이 틀어진 것도 알고 있다.  저런 포장을 했을까? 답은 이미 당신도 알고 있다.


30대 남성 B는 자칭 타칭 청년사업가다. 대학생 재학시절부터 사업가로 스스로 마케팅하며 성공가도를 달렸는데 그는 그 스스로를 천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시작해서 수십 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사업가가 되었다고, 스스로 홀로 노력했다고 여기저기서 말하고 적고 다녔다. 그러나 실체는 그의 포장하는 재주를 높이본 소위 쩐주 하나가 그에게 투자해서 사업을 하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설명한 노력의 결과로 얻은 돈을 재투자해서 성공의 열매를 따먹고 있는 게 아니라 쉽게 돈 많은 사람의 투자를 받아 자금 문제를 해결하고, 돈 냄새를 맡은 여러 사람들로부터 각 방면에서의 도움을 받아 사업을 해오고 있는 월급쟁이 사장이다. 그는 스스로 오너라고 말하는데 그건 오너가 아니라 고용된 대표이사다. 이 차이를 모르는 사람에게 여기서 굳이 차이를 설명하진 않겠다. 그는 스스로를 마케팅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그 능력을 본 사람들에게 고용되어 일하는 노동자인 셈인데, 그런 모든 사실은 비밀이고 주변의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다. 모교의 학생들로부터는 신화적인 존재로 포지셔닝을 하는데 성공했는데 한 10년 쯤 그렇게 지나고 나면 그 스스로도 그런 사실관계 따위는 머리에서 지워버릴 것이다. 진실과 거짓이 뒤바뀌어 저장될 것이고 더 많은 거짓으로 포장해서 스스로를 띄울 것이다. 그래야 본인이 성공하니까.


40대 남성 C는 B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인데 다른 점이라면 B보다 소위 재주가 없다는 점이고, 그가 다른 사람의 부러움이나 선망을 사는 점이 완전한 온라인의 거품이라는 점이다. 주변에는 지인들이 매년 갈리는데 사람들은 모른다. 그는 우리 모두가 흔히 하듯 온라인에서 보여주기에 열중하는데 그것에 능해 실제로는 부모님의 돈에 주변의 윗사람들의 도움으로 살면서 마치 스스로 자수성가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처럼 포장하고 있다.


30대 여성 D는 아주 예쁜 여성 사업가이자 예술가다. 그녀가 길을 걸으면 주변 남녀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림을 느낄 수 있을만큼 매우 큰 키에 날씬한 몸매와 희고 고운 피부, 빼어난 미모를 갖췄다. 그녀는 그러나 물장사를 한 엄마와 계부 밑에서 좋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탓에 자존감이 낮다. 애정결핍은 아니지만 아빠의 사랑을 받아오지 못한 탓에 훌륭한 외모와 충분한 지성에도 불구하고 남자관계에도 의외로 자신이 없고 돈이 궁하면 스폰서를 찾아 돈과 몸을 바꾸며 살아왔다. 모바일 소셜미디어 환경은 그녀처럼 외모가 좋은 사람들에게 놀랍도록 많은 채널을 제공한다. 그러다가 본인의 전공을 살려 개인사업을 시작하는데 역시 스폰서에게 돈을 받아 사업장을 차렸고 원장님, 사장님 소리를 듣고 있다.


이렇게 예를 들어 적은 것은 저들을 욕하기 위함이 아니다. 난 저들이 평범하다 생각한다. 그저 이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그런 모습으로 포지셔닝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다. 내가 아는 한 그들은 적보다 아군이 많고 그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많다. 연예인도 아니고 공인도 아닌 저들에게 대중적이라는 말을 굳이 쓴 것은, 주변의 지인들보다 그들과 접촉할 수 있는 채널을 통한 불특정다수가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성공한 사람으로 포지셔닝되기 위해, 그래야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감추고 덮고 포장한다. 거짓말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스스로를 포장하기 위해 쓴다.


이게 과연 저들만의 일일까? 아니다. 정치인, 경제인, 종교인 등 자본주의 사회에서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대체로 모두 선택하는 일이다.


저게 특별한가? 아니 그들 모두 전혀 특별하지 않다.


그들을 우러러 볼 필요도 없고 존경할 이유도 없다. 딱히 진지하게 욕할 필요도 없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들은 몇 개의 사례와 이야기로 존경할 필요가 없다. 존경과 존중은 다르다. 잘 모르지만 유명한 사람, 소위 성공한 사람을 만나면 존중은 하겠지만 존경은 하지 않는다. 그를 자세히 알기 전까지 나는 누구를 존경하지 않는다.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요는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고 모두가 대단치 않은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 중에 누군가가 성공하고 누군가는 찬사를 받고 특별한 사람처럼 대접 받는다. 여기에 속으면 나는, 내가 만들어낸 성과는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문제는 실제로는 나나 저들이나 다 특별하지 않은데 나는 저들은 특별하고 나는 특별하지 않다고 인식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면 주변에서는 너도 별하다고 이야기해주며 위로하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리 봐도 그런 특별함을 찾기 어려우니 이 늪에서 빠져나가지지가 않는다.


이래서야 나아질 리가 없다!


생각을 바꿔라.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다 그냥 평범하고 특별하지 않다. 나도 그렇다.


그렇기에 가능성은 노력, 아니면 운 이 둘 뿐이다.


이제는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이 싫어하는 호날두는 어렸을 때 아주 특별했을까?(오로지 축구선수로서의 얘기다) 아니다. 특별한 재능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면 지금 삼십대 중반이 되어서까지 그렇게 미친듯이 훈련하지 않을 것이다. 훈련하는 사람은 대체로 내가 남들보다 나은 점이 없다고 여기거나 다른 이들의 기량에 지기 싫기에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마이클 조던은 형에게 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게 시작이다. (최소한 은퇴한 운동선수는 운동선수로서의 성공과 실패는 논할 수 있다.) 이는 특히 상위레벨로 갈수록 그렇게 된다. 동네에서 1등해서 내가 재능이 있고 잘한다 여겼는데 좋은 학군의 큰 학교로 가니 나는 그저 10등이나 하는 학생이고, 그래서 지지 않으려고 더 노력하니 전교 10등 안에 들었는데 과학고에 가니 여지 없이 다시 바닥이고, 다시 노력하니 서울대에는 가는 그런 거다. 특별하다 여긴 건 착각이고 좀 레벨이 높아지기만 하면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즐비하니 더 노력하게 되는데, 그 기저에는 내가 특별하지 않구나 하는 걸 깨달은 스스로가 있는 것이다. 특별하지 않은 자가 할 수 있는 건 노력 밖에 없다. 그런데 옆 친구가 1등한 게 그 친구가 나보다 더 똑똑해서 라고 하는 순간 나와 그 친구의 위치는 바뀔 수가 없는 거다.


스스로가, 다른 이들이, 우리 모두가 특별하지 않다는 걸 자각했을 때, 그 가운데 내가 저들보다 더 나은 성과를 올리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노력할 때 비로소 결과적으로 특별한 성과를 내는 것이다. 자타공인 특별하다 여긴 천재들의 몰락은 어느 분야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어렸을 때 신동이 범인이 되는데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특별하니 노력을 게을리 하게 되고 높은 레벨에서 실패하는 것이다.


특별하다는 생각이 좋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차별 때문이다. 내가, 우리가 특별하다 여기는 사람들이 남을 차별한다. 내 자식이 특별하니 특별대우를 원하고 남의 자식은 우습게 여긴다. 인종차별도 그런 것이고 빈부 차별도 그런 것이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내가 특별하다는 것은 남은, 혹자는 평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생각들이 여기저기서 차별을 만드는 것이다. 비록 내가 국가대표가 되고 세계신기록을 만든다고 해도 경계할 일이다.


존경할만한 성공하는 사람들은 끝없는 노력을 바탕으로 나온다. 노력하게 만드는 에너지와 동기는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에서부터 나온다. 겸손도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특별하다 여기면 겸손하기 어렵다. 겸손이나 겸양은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온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존경할만한 사람들이다. 극히 드물다.


이외의 것은 그저 운이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로또 같은 운이 아니라도 우리 일상은 운, 우연이 의외로 많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이 때 운에 편승하는 것도, 운에 패망하는 것도 결국 '준비'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것은 역시 무슨 대단한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저 내가 좌우할 수 없는 시기, 때, 주변여건에 대비하는 노력에 기반하는 것이다. 운도 노력하고 준비한 사람에게 더 크게 비례해서 작용한다.


그러니까 특별하지 않은 자신에게 우울해할 필요도 없고 세세하게 잘 모르는 주변 지인의 성공에 너무 큰 가치를 두고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거나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집중할 대상은 나다. 타인의 이야기나 성취나 성과는 세세히 알고 나면 과장으로 별 거 아닌 것일 때가 많고, 나중에 보면 외려 손가락질이 부족한 대상일 때도 적지 않다.


중요한 건 특별하지 않은 내가 어떻게 하면 소기의 성과를 올리고 성공의 길로 향할 수 있느냐다. 노력의 양과 질, 이걸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  


당신이 지금 스스로 생각할 때 성공하지 못하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면 그건 당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당신이 특별하지 않은데 당신이 스스로를 잘 모르고 약한 의지에 노력까지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해서 이거나, 혹은 방향 자체를 잘못 잡았기 때문일 수 있다.


성공이라는 개념, 가치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우리 인생은 죽기 전까지는 누구나 진행형이다. 지금 홀로 사업을 시작해 연매출 100억 이상을 올리는 회사를 만든다고 해도 그건 성공이 아니다. 성공이든 실패든 그건 내가 생을 마칠 때나 낼 수 있는 결론이다. 지금 내가 목표로 하는 그것을 해낸다고 해도 그건 성공이 아니다. 지금 이명박 전대통령은 스스로 성공했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실패했다고 생각할까?  당신 생각은 어떤가? 10년 전에는 누가 봐도 성공한 인생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당신이 흔히 말하는 성공의 가치에 얽메일수록 당신 스스로가 이뤄낸 것들이 무가치해지거나 과소평가 되거나, 뉴스에서 우리가 보고 욕하는 바로 그런, 혹은 몰락하는 사회지도층이 될 것이다.


내가, 모두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렇기에 작은 성과도 존중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오늘 성취한 것에 취하지 말고 더, 내가 생각한 방향으로, 그 가치를 향해 더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그 끝에 가서야 비로소 성공이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 건 다른 사람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나나 그 사람이나 매한가지 그냥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단치 않은 사람끼리 존중해주지 않으면 누가 날 존중해줄까. 나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건 내 부모님 뿐이고 실제로 그 두 분으로 족하다.






* 끝으로 하나 첨언하고자 한다. 남이 거둔 성취나 성과를 그저 그가 재능이 특별하다거나 나보다 주변 환경이 좋아서라고 해버리면 참 편하겠지만 그런 태도는 본인이 노력할 때 노력이 100퍼센트 발휘되지 못하게 할 뿐더러 그건 근본적으로 남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이다. 특별하다고 여기는 것으로 현상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결코 본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쟤는 부모님이 부자라, 쟤는 부모님도 운동선수라, 쟤는 어렸을 때부터 예뻐서, 쟤는 잘 생겨서, 쟤는 미국에서 자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자유지만 그렇게 생각해봤자 현실은 더 시궁창이고, 그걸 극복할 방법은 없는 거고, 그래서 내 현재는 한발짝도 나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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