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2년 전부터 쓰고 싶었던 글입니다. 아마도 누군가에겐 뼈 아픈 지적일 수도, 누군가에겐 한 번 깊은 사고의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저 기분이 나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반박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고찰하고 되돌아볼 수 없다면 어차피 누군가의 말을 받아들일리는 없으니 그건 그대로 두어야겠고, 제가 타인의 삶을 속속들이 아는 것은 아니고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니 내밀한 개인의 처지를 두고 논쟁할 거리도 못 될 것입니다.
시작합니다.
미니멀리즘이라는 것은 예술에서 나왔습니다. 본질 이외의 장식이나 수사, 불필요한 것들을 쳐내고 조금 더 본질에 가까워지는 것이죠. 간결하게 본질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게 의미가 확장되어 나아가고 나아가다가 지금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니멀리즘이 되고 자칭 미니멀리스트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요는 미니멀리즘은 말하고자 하는 바, 표현하고자 바를 간결하게 드러내는 것이고 일상이나 삶의 영역에 들어서면 간소하며 단순한 삶을 말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지향점이 될 수도 있고 현재의 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은 나의 삶의 철학의 발현이자 나의 지향점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그저 또 다른 남 흉내내기, 보여지기의 수단일 뿐입니다.
화려함은 자랑할만한 합니다. 사치는 뽐낼만하죠. 그것이 가진 천박함은 뒤로 하고 그 자체가 맥락이 맞습니다. 겸손하지 않은 자가 뽐내고 자랑하며 검소하지 않은 자가 화려함을 추구하며 드러내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검소함과 간결함,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미니멀리스트가 뭘 뽐내고 드러내고 자랑을 할까요. 약간 과장하면 자랑할 게 없어야 하는 게 미니멀리즘입니다. 미니멀리즘은 드러냄과 자랑에 방점이 찍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니멀리즘은 삶의 철학이자 나의 삶의 거울입니다. 멋져 보인다고 차용할 수 있는 유형의 것이 아닙니다. 지속 가능한 미니멀리즘 만이 유효합니다. 그것은 삶의 철학과 내 태도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하며 트렌디한 사람은 애초에 거리가 있습니다. 삶 자체가 복잡하면 그 안에서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이란 겉과 속의 괴리만 깊게 할 뿐입니다. 금세 깨어지게 됩니다. 요컨대 야근하고 야식하고 운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다이어트를 단기간에 무리하여 진행하면 몸무게를 줄일 수 있겠지만 금세 요요현상을 겪게 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최근 5년 이내에 몸무게의 10퍼센트 이상의 변화를 가져오고 그걸 지킨다면 그 일상이 일관성을 가진 것이고, 내 의지와 무관하게 10퍼센트 이상의 변화가 왔다갔다 한다면 나는 일상이 일관되지 않은 것입니다. 지속성이 낮은 것이죠. 지속성이 받쳐주는 것이 현상으로 확인되어야 지속가능한 것이고, 그것이 지속된 기간이 길어지면 비로소 내 삶의 한 부분이자 나의 삶의 반영이라 할 것입니다.
집 한 켠을 예쁘게, 단순하게 장식 하나만 혹은 다 없애 정리하고(다 서랍 안에 처박아두고) 사진 한 장 찍어서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자랑하는 것은 천박한 트렌드이지 미니멀리즘이 아닙니다. 애초에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사람이 소셜미디어에 빈 공간을 자랑하고 드러내고 사람들과 좋아요나 팔로우로 엮는 사람의 삶은 미니멀리즘과 정반대에 있습니다. 모순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미니멀리즘은 우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내가 통제해야 하는 것들을 줄여나가고 그게 기쁘고 그로 인해 생겨나는 삶의 여백을 나의 취미 하나로, 내가 즐거움과 편안함을 느끼는 것으로 채워나가는 데 있습니다. 물론 비워내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하지만 엄밀히 말해 현대인이 비워내기를 하는 것은 다른 것들이 너무 가득하여 휴식을 찾기 위함이지 애초에 비워두는 것은 수행의 영역이라 현대 일반인들의 삶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내 삶의 현재 모습과 맞지 않는 남의 철학이자 삶의 태도를 억지로 성찰이나 고찰 없이 흉내 내고 끼워 넣으니 가짜가 되는 것입니다. 인스타그램이나 소셜미디어에서 보기 좋은 심플한 예쁜 이미지를 집에 구현하는 것이 미니멀리즘이 아닙니다.
배우자의, 더 나아가 나의 보호와 양육을 받는 자녀 등 내 가족 구성원과 갈등을 겪으며 우겨서 남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삶의 태도를 억지로 바꾸게 만드는 것은 폭력입니다. 미니멀리즘은 아내가 필요해서 산 물건이 보기 흉하다고 넣어놓으라고 짜증을 내고 아이가 원하는 장난감을 정리하기 어렵고 다른 걸 가지고 놀아도 된다고 실망하게 하고 그렇게 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가치가 아닙니다. 아름답지도, 간결하지도, 주장하고 싶은 것도 없는 나의 쌓인 스트레스의 또 다른 발현일 뿐입니다.
오래된 아파트 인테리어를 부수고 하얗게, 여백을 가득 만들고, 손때가 뭍은 가구와 소품을 버리고 텅텅 빈 공간을 만드는 것이 미니멀리즘이 아닙니다. 당신이 가진 물건은 당신에게 있을 때는 버려지지 않은 것이고 폐기되어 쓰레기가 되지 않지만 버리면, 당신이 외면하고 알아보지 않았겠지만 그것은 제대로 분리되고 재활용되거나 폐기되지 않고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거 어딘가에서 태워져 유독가스를 내뿜거나 야산에 적재되어 환경을 파괴할 것입니다. 무엇이 제로 웨이스트로 가는 길일까요. 당신이 가지고 있어도 되는 것을, 그저 의미 부여를 하지 않은 것을 버리고 굳이 연료로 태워 공기에 실려 보내거나 땅에 묻는 것일까요?
가구 없는 집, 적은 옷, 흰 벽. 이것들은 미니멀리스트의 상징인 것처럼 이미지로 소비되었지만 이것들은 그 공간을 충분히 가진 자들이 비워내는, 혹은 거기까지 달려간 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이제 그 안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갈등의 연결고리를 버리는 과정에서 나온 작은 결과물일 뿐입니다. 세상이 복잡하여 간결한 삶을 추구하겠다는 사람이, 직장 생활과 사회관계가 복잡하여 그걸 벗어나겠다는 사람이 각종 소셜미디어로 자신의 비워냄을 드러내는 것으로 네트워크의 연결고리를 수백, 수천 배로 늘어나게 할까요? 그런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가짜 미니멀리스트입니다.
미니멀리즘은 철학이자 삶의 태도입니다. 철학이 없는 자들이예쁘다고, 뭔가 멋지다고 자신의 삶의 현재와 지속가능성, 관계들에 대해 깊은 성찰 없이 트렌드로 받아들이고, 트렌드로 소비하는 소비지향주의자들이 무슨 미니멀리즘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천박한 미니멀리즘은 이미지로 소비되고, 다른 갈등을 야기하며, 환경을 오염시키고 나의 역사와 흔적을 지워버릴 뿐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예술은 시대를 반영합니다. 미니멀리즘이 태동하고 발전하고 퍼진 시대적 배경이 있겠지요. 지금 우리 시대와 사회를 볼까요.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버리는 건 미덕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시대에 미덕은 소비입니다.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 절제가 있는, 중도와 중용의 소비이고, 가진 것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활용하는 것입니다.
집에는 소유한 물건이 없는데 밖에서는 일회용품 주면 주는 대로 쓰고, 음식을 배달 주문해서 먹고 용기 버려가며 집에는 물건을 두지 않는 건 미니멀리즘이 아닙니다. 나한테 안 쌓인다고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내가 버려서 내 눈 앞에 없는 것은 그 쓰레기를, 심하게 말해 내 똥을 남에게 던지는 것뿐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는 아무도 폐기물 관리 시스템의 현실에 주목하고 우선시하지 않기 때문이죠. 남의 나라로 폐기물을 보내고 안 보이게 어딘가에 쌓아두는 게 지금의 폐기물 산업의 현황입니다.
개인의 이야기를 조금 하겠습니다. 제게는 20년이 넘은 공구들이 잔뜩 있습니다. 내내 아파트에 살아왔음에도 아버지께서 해외에서 지내시던 무렵 가지고 계셨던 전동 드릴, 대형 드라이버세트, 어머기께서 쓰시던 각종 목공구 등을 전부 열 번이 넘는 이사에도 가지고 다니면서 창고에 보관해왔습니다. 아버지께서 제 나이에 호주에서 구입하셨던 전동 공구들과 어머니께서 제가 10대 초반에 가구를 만드시던 수공구들은 열 번이 넘는 이사와 해외 이민에도 불구하고 버려지지 않고 그 쓰임을 기다리다 지금 제 손에서 매일 같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제가 물려받거나 제가 부모님께 부탁해서 받아 쓰는 물건들은 대개 30년이 넘은 것들입니다. 좋은 물건들이고, 잘 사용하고 보관에 주의를 기울였던 것도 사실이죠. 저는 덕분에 전동드릴을 사지 않고, 망치, 고무망치와 끌을 사지 않고 주택을 고치고 우리 가족을 위해 물건을 만들고 있으며 현지인들이 뭔가 고치러 올 때 미비한 공구들이 있으면 그것을 빌려주어 고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낡고 닳아 들 때마다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천 소재의 공구 가방도 그대로 씁니다. 이런 물건들 말고도 제겐 아버지께서 주신 30년 된 손목시계가 있고 20년 넘은 값비싼 몽블랑 만년필도 있습니다. 전 이것들은 자주쓰지는 않지만 소중하게 갖고 있습니다. 언젠가 아들에게 줄 수도 있겠지요.
물건은 죄가 없습니다. 게으르고 의미 부여할 의지가 없고 들여다볼 여유가 없는 내가 문제이지요. 어쩌면 싸다는 이유로 가치가 없는 물건을 자꾸 사서 버리는데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자주는 아니어도 언젠가 꼭 쓸모가 있는 걸 사지 않고 유행에, 가격에, 마케팅에 속거나 홀려 사버리고 버리는 것 말입니다. 한편, 그저 버리는 것으로 해결하면 나의 흔적도 사라지는 겁니다. 그런 것에 얽매여 살 필요는 없지만 억지로 다 비워내는 것도 부자연스럽고 낭비입니다.
즐기고 누릴 것 부족함 없이 누렸지만 지금 제겐 10년 넘어 찢어지고 있는 청바지와 늘어난 티셔츠가 적잖게 있습니다. 잘 입습니다. 때와 장소를 가려가며 입는데 집을 고칠 때나 험한 일을 좀 할 때 편합니다. 심지어 청바지는 여전히 상태도 좋습니다. 소중히 입고 잘 간수하기 때문에 물건의 수명이 깁니다. 유행 타지 않는 스타일로 구입했었기 때문에 유행에 무관하게 잘 입었고, 오래되었지만 아무 티가 나지 않습니다. 이민을 와서 입지 않은지 몇 해가 넘어가는 두꺼운 겨울 옷들이 있지만 곰팡이가 피지 않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좋은 옷들은 후에 아들을 주면 되고, 가끔 겨울에 한국에 가게 된다면 요긴하게 입을 수 있을 테지요.공구나 기계류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제 아이들이 달라고 할 때 기쁘게 물려줄 것입니다. 30년, 50년, 100년까지 사용하게 된다면 더없이 보람찰 것입니다.
물질적 관점에서 미니멀리즘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는 일상을 심플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물건을 사는 것에 유의하고 의식이 있는 소비를 해야 합니다. 가급적 좋은 물건, 시대를 떠나 오래 쓸 수 있는 가치있는 물건을 잘 구입해야 합니다. 가진 물건을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내 물건들의 의미를 살펴봐야 합니다. 제품이 생산되고 폐기되는 과정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소셜미디어에 올릴 보기 좋은 심플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내 이미지를 더 나은 사람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미니멀리즘을 흉내 내고 그걸 소셜미디어에 자랑하여 미니멀리즘에 반하는 관계를 형성하고 그걸 더 뽐내기 위해 다른 이미지 생산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만 합시다.
나의 철학, 나의 취향, 나의 흔적과 역사가 되는 것이 나의 물건입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30년 넘은 시계와 공구, 할아버지께서 사시던 집, 낡은 의자와 은식기. 이런 것들이 가치이며 그런 것들이 많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비싼 물건 말고 어머니가 그저 매일 같이 들고 두들기시던 고무망치마저도 30년 넘게 생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 망치로 만든 수제 프레임 거울도 물론이지요. 싸구려든 명품이든 상관 없습니다. 의미는 당신이 부여하는 것입니다. 굳이 가짜 미니멀리스트들에게 홀리지 마시고, 자신의 삶을 채워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