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괜찮습니까?
유명인 저격이 습관화된, 법 위의 폭로전.
아마도 작년, 야구 유망주가 학창 시절 폭력으로 드래프트가 좌절됐다. 그 전에는 드래프트에는 겨우 성공했는데 처음이라 그랬나 보다.
이번엔 여자배구 선수들이 10년 전 학교폭력이 폭로되어 광고나 방송 퇴출을 넘어 선수 제명이니 징계니 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법으로 따져도 공소시효도 지났는데, 익명의 폭로자는 유명인이 된 가해자를 과거와 달리 당시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지금은 폭로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미 몇 번의 케이스로 이러한 폭로는 사실이기만 하면 괜찮고, 가해자를 현실적으로 벌할 수 있다는 사회적 확신도 가진 것 같다.
10년이고 20년이고, 유명인만 되면 운동선수고 방송인이고 할 거 없이 고위공직자 청문회 수준으로 살벌한 얼음판을 걸어야 하는 것 같다. 경제인도 예외는 없을 것이다.
학창 시절, 촉탁 소년에 해당하는 나이든 또는 고등학생이든 관계없이 저질렀던 과오나 실수들이 성인이 된 그들의 발목을 건다.
난, 촉탁 소년이고 뭐고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강력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나이로 봐주는 건 범죄의 질이 현행법상 강력범죄에 해당하지 않을 때 정도여야 한다. 하지만 공소시효도, 실명도 없이, 절차도 없이 마구잡이 식으로 유명인이나 성공한 사람의 과거를 폭로해서 끌어내리는 형태는 언론 보도도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정당한 처벌이 아니다.
설령 특정 케이스와 무관하게 먼 과거의 그게 강력범죄였다고 하더라도 당시에 절차를 밟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기도 계속 운동을 할 거라거나, 같이 뛰기 위해서라거나 등등. 뭐든 이유가 있어서 침묵하거나 넘어갔을 것이다. 그가 유명인이 아니라면 또 넘어갔을 것이다. 그걸 우리는 이해관계라고 부르고 타협이라 부른다. 그때는 이해관계에 의거하여 타협했는데 이제는 이해관계에서 벗어나니 저격하는 것이다. 결국 그들이 유명하고 성공했으며 본인들은 실패했고 익명이니 하는 것이다. 저격당한 유명인은 명예훼손으로도 대응하지 못하는 걸 알고 있다. 그들은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무서워 감히 하지 못한다. 유명인의 약점이다.
나도 20여 년 전 군대 폭력에 아직도 약간의 후유증이 있다. 그들을 사회에서 만나면 가만히 넘어갈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 당장 성공한 유명인으로 등장해도 그 시절의 일로, 가치와 기준이 지금과 달랐고 또 특수한 조직 내의 오래전 과거로 그들의 현재를 무너뜨리는 건 부당하고 비겁하다 생각한다. 그 시절의 기준은 지금과 다르다. 2000년 이전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지금과 달랐고, 1990년대, 아니 2005년 전후의 학교 폭력도, 체벌도, 훈육도 지금과는 다른 기준이 있었다. 그런 과거의 일들을 지금의 잣대로 난도질하는 건 온당치 않다.
피해자가 유명인이고 가해자가 무명의 일반인이어도 실명을 까고 그들을 저격할까? 이걸 용납할까? 왜 사회는 계속 누군가를 끌어내리기에만 혈안이 된 걸까.
더불어 제 3자인 대중들. 과거, 아니 현재도 우리 교육에 어디 인성교육이 있다고 그 책임을 묻는데 주저함들이 없는지 모르겠다. 당신들이 방관하고 협조하지 않았나. 당신들이 아이들을 그리 키웠고 일진이 무서워 방관하고 자기 이익에 부합하거나 무관하다고 그냥 두지 않았냐 말이다.
인성이고 뭐고 성적, 부모 배경만 보고 가르치고 대우해놓고, 명망, 권력, 이익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법도 사회도 판단하는 판에, 이제 와서 인성이 어쨌느니.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일말의 책임의식이 있다면 최소한 30대 이상은 그 입 다물고, 그 손가락 그만 놀리고 자기반성이나 하면 좋겠다. 법치국가가 좋거든 법에 근거가 없으면 좀 삼갔으면 한다. 언론들은 동네 개 짖는 소리만도 못한 기사들 그만 내고.
비겁함에 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