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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Ko May 14. 2019

J와 고양이, 그리고 나

반려동물 이야기 (3)

2년 전 즈음이었다. 매일매일 햇빛이 푹푹 찌다 못해,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에 땀이 들어차는 습하디 습한 여름이었다.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빌어먹을 공장을 때려치우거나 폭파시켜야겠다고 다짐하며, 오늘도 어김없이 5분 간격으로 울려대는 알람 소리를 비몽사몽 신경질적으로 꺼야 했다. 대충 머리만 감고서는 정신은 채 차리지도 못한 채, 남동공단 가는 인천 1호선을 오르내리기 바빴다. 2달 밀린 월세와 핸드폰 값을 갚기 위해 일주일마다 월급을 가불 받으며 총액 2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비루한 통장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아침 8시 반부터 저녁 8시까지 일하고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휘청휘청 집을 갈 때면 종종 집 근처 편의점에 들를 때가 있었다. 그곳에서 J라는 친구가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늦은 밤부터 해가 푸르스름하게 뜨는 새벽까지 편의점에서 일하던, 나보다 3살 어린 그 친구는 내가 퇴근할 때쯤이면 편의점에 출근했다. 마치 교대하는 것처럼 서로 저녁 인사를 주고받곤 했다.

"형, 이제 퇴근하는 거야?"

"엉, 힘들어 뒤질 것 같다. 아이스 잭이나 한 갑 줘."

잠깐 편의점이 한산할 때쯤, 담배 한 개비씩 꼬나물고 시답잖은 얘기를, 혹은 사뭇 진지한 얘기를 짧게 나누는 것이 하루 일과의 마무리였다.

어느 날이었다. J가 말했다.

"아 맞다. 형, 나 고양이 키우려고." J는 눈을 빛내며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

"얼마 전에 내 친구가 고양이 한 마리를 받았대. 정확히 누구한테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근데 자기가 키우기는 좀 그렇다고 나보고 키우겠냐고 해서 키우기로 했어."

엄마에게 생일 선물을 받은 초등학생 마냥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나는 되물었다.

"새끼야? 아니면 큰 고양이?"

"한 살밖에 안 됐다더라고. 완전 새끼지, 새끼. 개쩔지?"

문득 분홍 케이지 속 꼬맹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느 순간 떠날지 모르는 작은 생명이라는 사실이 머릿속을 맴돌자, 나는 이내 J의 선택을 만류하기로 했다.
"야, 원룸에서 고양이 키우기 겁나 힘들어, 인마. 그 고양이 똥냄새며 고양이 냄새, 그거 어쩔 거야, 인마."

잠시 연기를 내뿜고, 축축한 침 한 움큼을 길바닥에 내던졌다.

"니 밥 먹는 돈도 빡빡해서 알바 두 탕 뛰는 판에 고양이 밥 값까지 니가 내게? 버는 돈 고양이한테 다 꼬라박게 생겼네."

"아, 괜찮아. 괜찮아. 친구가 그 고양이 먹던 사료나 스크래쳐 이런 것도 준다 그랬어." 그러거나 말거나 J는 이미 새끼 고양이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고,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그의 침대에서 함께 먹고 자는 새끼 고양이의 집사가 되었다.
하지만 J가 새끼 고양이의 집사 노릇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된 것은, 불과 한 달 후의 일이었다.


J는 분양받은 고양이를 하루 종일 자랑했다.

"형, 이거 봐 봐. 겁나 귀엽지? 완전 개냥이라니까? 만날 앵겨붙어가지고 겁나 귀여워 진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도하고 콧대 높은 고양이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그의 고양이에 눈을 빛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야간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애옹애옹 울면서 자기에게 달라붙었을 고양이를 생각하면 잠도 못 자고 일 한 피로감도 조금은 연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평일 새벽에, 자야 할 시간에 제대로 눈조차 못 붙이고 서서 무기력하게 바코드를 찍는 생활이 몇 주가 반복될 무렵, J는 눈에 띄게 수척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금요일에는 야간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나면 2~3시간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주간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가기까지 했으니 몸뚱이가 퍼져 버릴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잔병치레도 잘 안 하던 그가 열감기에 시달려 마른기침을 내뱉으며 반쯤 눈이 풀리며, 힘없이 "형, 밥이나 먹자"라고 중얼거렸다.

학교 근처 식당에서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을 시켜놓고서는 말했다.

"시발, 먹고살기가 힘든가 보네. 평소에는 멀쩡하던 애가 갑자기 아퍼부러야." J는 쓴웃음을 지었다.

"진짜 야간 알바는 아닌 것 같아. 새벽이라 일도 별로 안 빡세고 할 만할 거라 생각했는데."

"자는 시간에 일하니까 당연히 힘들지. 시발. 니 나랑 전에, 그 어디냐, 물류창고에서 일할 때도 둘 다 퍼질러졌잖어. 야간에 일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여. 아무리 편의점 이어도."

 J는 스테인리스 컵에 담긴 물을 들이키며 말했다.
"고양이한테도 존나 미안해 진짜."

"갑자기 왜?"

"고양이들은 야행성이잖아. 난 저녁에 나가서 일하고, 갔다 오면 아침부터 자기 바쁘고, 금요일에는 낮에 또 일 나가고. 걔가 생활하는 시간에 내가 뭐 해 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존나 미안해."

하기사, 자기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 사람인데 집에 있는 반려동물까지 신경 쓰라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에그, 그래도 밥 안 굶기고, 잘 키우면 됐지 뭐. 어쩌겠냐. 너도 먹고살아야 되는 거고, 네가 일부러 방치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밥이나 먹자." 쟁반에 올려져서 나온 뚝배기들을 앞쪽으로 끌고 조심스럽게 한 숟가락 베어 먹었다. J는 영 입맛이 없는지, 열이 올라 불그스름해진 얼굴로 뚝배기만 바라보고는 애꿎은 숟가락질만 반복할 뿐이었다.

"엔간히 아픈 게 아닌갑네. 병원 가봐라."

"엉, 가봐야지. 하루 종일 자다 보니까 갈 시간이 없네."

"슬슬 일어나자. 밥은 내가 살게."

그러고 얼마 후, 다시 만난 J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키우는 애, 다른 분한테 보내야 될 것 같아."

"엥? 왜? 잘 키우고 있었잖아."

"계속 내가 키우는 것도 걔한테 미안해 사실. 잘 돌봐주지도 못하고 있고. 나 일 나갔다가 들어올 때, 문 앞에서 맨날 울고 있어. 불 다 꺼진 방 안에서. 걘 아무도 없는 데에서 혼자 그렇게 있는 거잖아. 어떻게 더 키워 내가."

뭐라 더 이상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래도 할 만큼 했잖아. 그냥 타이밍이 안 맞았던 거고, 네가 이렇게 바쁘고 힘들 줄 알았냐."

그렇게 J는 그가 키우던 고양이를 같은 학교의 다른 과 사람에게 입양 보냈다. 그가 갖고 있던 몇몇 용품들과 함께. 입양 보낸 사람에게서 잘 적응해서 지내고 있다는 문자메시지와 함께 보내진 사진들을 보면서 그는 속으로 마른 눈물을 삭혔으리라. J는 아직도 그 고양이에 대한 미안함을 떠안고 있다.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마음 한편에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남아있는 것이리라. 그런 그를 보면서 반려동물 같은 것은 키우면 안 되겠다고 다시금 다짐했다. 고양이의 하루를 오롯이 채워 줄 자신이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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