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종종 자기소개서를 쓸 일이 있었다. 거창한 자기소개서는 아니었고, 매년 학기 초에 내는 '가정실태 조사서'에 부모님 성함이나 직업 등을 적어내면서 짧게 쓰는 그런 자기소개서였다. 하지만 한 페이지 채 안 되는 자기소개란에 뭐라 써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았다. 일개 초등학생이 인생에서 역경을 겪었을 리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무언가를 좋아하지도, 특출 나게 잘하는 것도 없는 나로서는 자기소개란이 운동장만큼 넓어 보였다.
시간이 지나, 대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다니거나, 혹은 대외활동을 위해 지원서를 넣을 때마다 이력서를 쓰는 일이 많아졌다. 그때마다 마주치는, 이력서의 한편에 적혀 있는 '취미', '특기'란은 거대한 걸림돌이었다. 손가락 하나 길이조차 안 되는 조그마한 칸에 몇 글자 적는 것일 뿐이었지만, 쉽사리 그 칸을 채워낼 수 없었다. 문득 내가 남들에게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고, 무언가를 눈에 띄게 잘하는 게 있을까라고 생각해보면 나는 특출 나게 잘하는 게 없었다.
피아노나 악기류는 다뤄보려 해도 악보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데다가, 그림실력은 화가인 아버지의 핏줄은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사람 얼굴조차도 제대로 못 그리는 초등학생 수준에서 멈췄고, 운동능력은 가히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게임 실력도 만년 브론즈, 실버에서 허우적댈 정도로 도통 재능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학창 시절에 책상머리에 앉아서 펜대나 굴리며 공부하던 게 전부였던 나에게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전교 1,2등씩 하면서 공부라도 잘했으면 덜 억울했지, 전교생 600명 중에 520등에서 허우적거리던 것을 생각해보면 공부도 잘 못 했다.
그렇게 암울한 학창 시절을 10년 넘게 살아왔다. 괜히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더 잘나고, 할 줄 아는 것도 더 많은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이들을 막연하게 부러워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잘하는 것은 쥐뿔도 없는,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아갈 뿐인무능력자인 것만 같았다.알게 모르게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과 미래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점차 희미해져 버렸고, 어느 순간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남들에게 나의 무능력함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들을 때가 있었다.
"넌 잘하는 게 뭐냐?"
몇 번이고 들은 말이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거진 10여 년가량을 그저 허허 웃으면서 잘 모르겠다고만 대답했다. 잘하는 게 무엇일지 끊임없이 되뇌고 찾아보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오히려 그 답을 찾는 것 자체를 외면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