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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Ko Oct 14. 2019

정신과 의사라고 내 우울증을 치료하지 못한다

어쩌면 치료할 의지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우울증이 있다. 아니 정확히는 있는 걸로 추측한다. 예전부터 종종 우울감을 느껴왔다. 우울감이라고 거창한 감정은 아니다.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적으로 지치거나, 뭔가 목표로 했던 것을 이루지 못하면 한없이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끊임없이 나 자신을 자책했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뭘 할 수 있지? 내가 이렇게 모자란 인간인 걸까?라고 끊임없이 나 자신에 대해 회의감을 가졌다. 마음속에 스멀스멀 피어난 회의감은 곰팡이처럼 번져나가 자기혐오로 변질됐다.


최근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공장에서 일하면서, 업무 관련해서 실수가 생기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욕먹는 게 일상이 되고, 늘어난 주문량 때문에 야근이 반복될 때마다 육체적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왔다. 되지도 않는 이유로 욕을 먹거나, 어리다는 이유로 직장 상사들이 대뇌를 거치지 않고 막 던지는 날 선 말들이 마음을 옥죄었다. "내가 널 뭘 믿고 병원을 보내주냐? 진단서 떼 와라." "어휴, 넌 잘하는 게 뭐냐?" 같은 그런 말들이었다. 듣는 순간에는 속이 부글부글 끓고, 턱주가리를 시원하게 돌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씨발 씨발 하면서 화장실에 처박혀 몇 분을 멍 때리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든 걸 잊으려 애썼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 달, 일 년이 지났고, 멘탈은 나름 단단해진 줄 알았지만, 이미 걸레짝이 돼버렸다. 자기혐오는 극에 달했고,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사실 정신과를 가봐야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의사는 형식적으로 약만 처방해 줄 것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이제는 썩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약이 됐든, 뭐가 됐든 피폐해진 멘탈을 치료해야 했다. 그렇게 난생처음 정신과를 방문했고,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의사와 마주 앉았다.


"어떻게 오셨어요?"

"아, 우울증 때문에요."

"어떤 게 우울한데요?" 늙은 의사는 컴퓨터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뭐 그리 쓸 게 많은지 독수리 타법으로 키보드를 두들겼다.

"어... 요즘 일 할 때마다 항상 회의감이 들어요. 내가 뭘 할 수 있는 건지 싶고, 속도 답답하고..."

"잠은 몇 시에 자요?"

"새벽 1시나 2시쯤에요." 취조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일 시작한 지는 얼마나 됐죠?"

"1년 반 됐죠. 대충." 점점 진료가 아니라 나를 심문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 그만 둘 생각은 안 했어요?"

"그만 둘 수가 없죠. 먹고살아야 하는데."

늙은이는 키보드를 더욱 현란하게 두들겨댔다. 뭘 그리 나에 대해 열심히 쓰고 있는 것일까. 아니, 나에 대한 것이긴 한 건가?

"뭐, 오늘은 약 처방이나 치료는 없고, 심리검사를 해 봐야 알겠네요. 다음 주에 오시고요, 검사 받으시겠어요?"

야간진료라고 빨리 퇴근하고 싶어서 안달 난 듯한 말투였다. 누구든 야근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애써 나를 빨리 내보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예, 뭐 받아야 되면 받아야죠."

"네, 끝났고요. 저 문으로 나가세요."

내가 나가는 문도 모르는 덜 떨어진 새끼로 보이나. 늙은 의사는 잠시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쉴 새 없이 쏘아붙였다.


카운터에서 카드를 내밀었다.

"계산이요."

"잠시만요. 47만 원입니다."

뭔 개소리야, 시X.

"뭘 했는데 47만 원이 나와요? 아무것도 안 하고 5분 만에 나왔는데 47만 원이요?"

"어., 잠시만요. 심리검사 예약하지 않으셨어요? 진료실에서 검사 같은 것도 받으시고?"

"아무것도 안 하고 컴퓨터 자판만 두들기시던데, 뭘 해요 하기는. 심리검사는 하래서 한다했는데요?"

"아, 죄송해요. 뭔가 착오가 있었나 봐요. 잠시만요... 아, 계산해드릴게요. 2만 8천 원입니다."


대충 카드를 밀어 넣었다. 아까 초진이라 하니까 심리검사랍시고 설문지 하나 던져주더니만, 3만 원을 이렇게 뜯어가나 보다. 아니, 돈은 둘째치고 한시라도 이 역겨운 병원을 뜨고 싶었다.

"영수증 드릴까요?"

"됐습니다."

하늘은 어두컴컴했다. 뭘 얻겠다고 여기까지 왔을까.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에라이, 염병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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