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가난하다.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은 둘째 치고, 달마다 월세를 내는 것도 어렵다. 날마다 먹어야 하는 끼니조차도 7,000원, 8,000원 하는 밥 한 끼 먹는 것도 엄청난 지출이고, 만 몇 천 원이 훌쩍 넘어가는 메뉴는 먹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비단 먹고사는 것에만 가난한 것이 아니다. 어쩌다 이빨이 아파서 치과라도 한 번 갈라치면, 한 번에 뭉텅 빠져나갈 치료비와 일주일에 한 번씩 진료받으면서 쓰게 될 돈에 밀려오는 고통을 애써 꾹 참고 버티려고 한다. 가난은 우리 가족이 살아야 할 구역을 명확히 정해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구역마저도 슬그머니 허물어버리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몇 뼘 남지도 않은 그 구역을 처절하게 사수해야 했다.
가끔 친구들이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있다. 이번 학기에 등록금을 얼마를 냈다, 이번 방학에는 어떤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 어떤 자격증을 따야겠다 같은 다소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술 먹으면서 넋두리처럼 늘어놓곤 한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워낙에 못 사는 탓에 학교에서는 이런 애가 등록금까지 내면 단박에 자퇴할까 전액 장학금을 쥐어주었다. 아르바이트는 안 하면 굶어 죽을 팔자인지라, 학교 다닐 때는 주말마다 물류창고에서 물건들을 포장했고, 방학 때는 풀타임으로 물건들을 들고, 나르기에 바빴다.
얼마 전, 친구와 잠깐 술을 먹을 일이 있었다.
"야, 나 이번에 등록금 얼마 냈는지 아냐, 400 냈어, 400. 국가장학금이라고 70만 원인가 들어오더라."
"와, 집 존나 잘 사나 보네. 70만 원 주면 7 분위? 8 분위? 아니냐?"
"야, 우리 집 존나 못 살아, 진짜. 잘 살기는 뭘 잘 살아."
"집 있고, 차 있잖아. 그거면 있을 거 다 있는 거지, 새꺄."
"그거 있다고 70만 원만 받아야 되냐? 세금은 있는 대로 다 내고 있는데, 소득 좀 잡힌다고 이렇게까지 손해 보면서 학교 다녀야 돼?"
"뭐 어쩔 수 없지, 장학재단이 소득 잡는 게 개판인 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마음에도 없는 말로 애써 친구를 위로했다. 차라리 등록금 400만 원을 낸다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4천 원짜리 도시락을 먹을지 말지 고민하면서, 통장에 남은 8천 원으로 월급날까지 버틸 수 있을지 계산기를 두들기는 것보다는 더 나을 것이라는 핀잔은 마음 깊은 곳에 넣어뒀다.
"난 그래도 아직까지 부모님들이 너네 등록금 내 주실 여유가 있다는 게 부럽다."
"여유가 있는 건 아닌데?"
"아니, 우리 집은 등록금이 문제가 아니라 먹고사는 게 더 급해서 하는 말이야. 월세 낼 돈도 없어서 허덕거리는 판인데."
"우리 집도 존나 힘들어, 진짜. 아버지 사업하시는 것도 예전 같지 않고, 버는 것도 확 줄었다니까."
친구가 던지는 말 하나하나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심기를 거슬렀다.
"야, 너네 집 존나 잘 살잖아, 미친 새꺄. 막말로 너네 아버지 밑에서 일하시는 분들 월급 안 밀리고, 아파트 몇십 평짜리에서 살고, 너 아르바이트 안 해도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만으로도 잘 먹고 잘 사는데 뭘 힘들고 나발이야."
목이 탔다. 소주잔에 가득 담긴 소주를 물처럼 들이켰다.
하지만 친구는 뭔가 억울해 보이는 듯 싶었다. "아니,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잘 사는 게 아니라니까? 전에 아버지가 사놓은 건물이 있거든? 근데 그거 세금이랑 관리비랑 이런저런 비용 다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어. 거기에만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그럼 팔아. 미친 새꺄, 배부른 소리 존나게 하네."
"아니, 배부른 소리가 아니라니까..."
친구와 나의 대화는 한없이 지지부진했다. 내가 친구의 그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무리는 아니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현재 처한 상황이 사뭇 다를 뿐이니까. 사실 가난은 너무도 상대적이다. 자신의 통장에 꽂혀있는 돈의 액수가 많든, 적든 그런 건 상관이 없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돈의 굴레에 갇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난'이라는 단어를 손쉽게 붙일 수 있을 뿐이다. 중소기업 사장이라도 자신이 끌고 다니는 아우디를 벤츠로 업그레이드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요새 먹고살기가 힘들다'라고 말하지 않던가.
가게 문을 열고 나와, 담배 한 대를 꼬나물었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가슴 한구석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날이면 날마다 냉, 난방도 안 되는 물류창고에서 하루에 몇 시간씩 발목이 시큰거리게 일하면서 7만 원 조금 안 되는 돈을 받았다. 남들은 부모님한테 용돈 받아야 할 어린 나이에 왜 이렇게 삶의 한가운데에 내던져야 하는지 항상 괴로웠다. 그런 먹고사는 괴로움을 껴안고 사는 게 당연하던 나에게, 마음 한편에 숨겨놓았던 '가난'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술 한 잔 마시는 찰나에다시금 되새겨야 했다.
나는 4천 원짜리 편의점 도시락을 먹다가도, 4만 원짜리 한정식을 먹고, 40만 원짜리 옷을 걸치고 다니는 부잣집 도련님들을 부러워했다. 부러움의 깊이는 그리 깊지 않았다. 단지 우리 집 월세보다, 내 한 달 생활비보다도 비싼 것들을 마음껏 살 수 있다는 것이 부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단칸방에서 라면 하나로 근근이 먹고살아야 하는,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있을 테지만, 나 역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스스로를 '가난하다'라고 규정했다. 가난하다고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주는 것도 아니고, 불쌍하다고 몇 백 만원씩 쥐어주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엿같은 상황을 당장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나보다 힘든 사람들이 더 많다고 자기 위안해봐야, 텅 빈 선반에 유통기한이 2년 지난 라면밖에 없는 현실이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