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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Ko Oct 17. 2019

오늘 밤은 혼자 자기가 무섭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혼자 산지도 6년이 넘었다. 대학교 기숙사에서 한 학기를 산 것을 시작으로 작은 창문조차 없는 2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살아남으면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어색했다. 19년을 덮고 자던 익숙한 노란색 이불 대신에, 홈플러스에서 사 온 하늘색 이불을 덮는 것부터 눈에 익지 않았다. 낯선 이불 냄새와 낯선 침대. 집에서 보일러로 뜨근하게 덥힌 맨바닥에 이불 한 장 깔고 잤던 나로서는, 침대에서 자는 게 다른 나라에 이민 온 것 같은 이질감마저 느껴졌다. 선 것은 비단 이부자리뿐만이 아니었다. 가위 하나, 옷걸이 하나조차도 이제는 그 존재가 당연하지 않았다. 집에서는 심심하면 한 번씩 불쑥불쑥 튀어나오던 가위가 고시원에서는 천 원이라는 돈과 다이소까지 오가는 데 걸리는 왕복 10분이라는 시간과 맞바꿔야 하는 가치 있는 물건이 되었다.


어느덧 혼자 산 시간이 1년, 2년 지나고, 좁아터진 고시원에서 벗어나,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28만 원짜리 원룸에 자리 잡았다. 자취방 안은 내가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산 옷들과 물건들로 하나, 둘 채워졌다. 더 이상 어머니가 따뜻하게 차려주시던 밥과 찌개는 먹을 수 없었다. 밖에서 사 먹거나, 마트에서 장을 봐 와 요리를 할 때도 있었지만, 얇은 지갑 사정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가 많았다.


하나에 720원짜리 라면 한 봉지를 3년은 족히 쓴 낡은 양은냄비에 끓여 먹는 것이 익숙해지다 못해, 어느덧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가족들과 함께 먹던 식사보다도 혼자서 노트북이나 핸드폰으로 유튜브나 개인방송을 보면서 먹는 식사가 더 편해졌다. 설거지는 귀찮아진 지 오래였다. 날벌레가 꼬이거나, 싱크대에서 역한 냄새가 나야 뭉그적뭉그적 수세미를 집어 들었다. 평일에 수업이 끝나고, 혹은 주말에 아르바이트가 끝나고서 천근만근이 된 몸을 이끌고서 현관문을 힘겹게 열면, 불이 꺼진 텅 빈 방을 마주하는 게 하루 일과의 마무리가 되었다.

이런 생활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월세도, 생활비도 내가 벌어야 했고, 누군가 옆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단지 20대 중반에 경제적으로 독립했다는 것에 만족했다. 더 이상 부모님에게 팔 벌리지도 않아도, 밥 먹을 돈이 없어서 어머니한테 "엄마, 돈 조금만 보내주실 수 있어요?"라고 조심스레 묻지 않아도 됐다. 그저 어머니가 그동안 혼자 짊어지셨을 짐의 일부를 내가 대신 들어드릴 수 있게 된 것 같아 다행이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공간 안에 누군가 있다는 것이 더 어색하다. 가끔씩 군대에서 휴가 나온 친구들이 "형, 오늘 형 집에서 자고 감"이라고 카톡 메시지 하나 던져놓고, 우리 집에 들어올 때가 있다. 퇴근하고서 피곤에 찌든 손가락으로 현관문을 열면, 웬 빡빡이 남정네가 내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오랜만에 만난 친한 동생이 반갑다는 감정보다 '우리 집에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데?' 싶은 당황스러움이 먼저였다.


아무리 혼자가 먹고사는 것이 익숙해졌다지만, 밤이면 밤마다 혼자 잠드는 것은 조금 외로웠다. 밤늦게까지 핸드폰을 쥐고서, 침대 위에서 뒹굴뒹굴하다가도, 막상 잠들려 할 때 밀려오는 공허함과 적막함은 몇 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런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잠을 청해도, 밀려오는 잡다한 생각과 번뇌는 하루 종일 악몽에 시달리게 했다. 밑도 끝도 없이 "내가 내일모레 죽으면 어떡하지? 나이 먹고서 병들면 어떡하지? 졸업하고서 취업할 수 있을까?" 하며 끊임없이 나 자신을 괴롭혔다. 혹은 이미 한참도 지난 과거의 일을 후회하고, 나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을 정신적으로 고문당하다가, 억지로 잠이 들 때면, 꿈속에서 똑같은 장소를 하염없이 맴돈다거나, 뭔지 모를 대상을 피해 미친 듯이 도망 다니며 괴로운 새벽을 보내야 했다.


불면증 약을 먹어야 할까? 여기서 약에 손을 댄다면, 아마 평생 약 없이는 잠들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대한 편하게 잠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자기 전에 샤워를 해보기도 하고, 핫초코 한 잔을 먹어 보기도 했다. 눕는 순간은 세상 편안해지고, 푹 잘 수 있겠다 싶었지만, 그 안정적인 촉감은 채 10분을 유지하지 못했다. 유튜브에서 핫하다는 ASMR이라도 들어볼까 싶어 호기심에 한, 두 번 들어봤지만, 묘하게 귀를 긁어대는 자극적인 소리는 오히려 잠을 더 설치게 했다. 찰흙 만지는 소리, 속삭이는 소리, 뭔가를 살살 긁어내는 소리 같이 인위적으로 만드는 소음은 되려 신경과민을 유발했다.


술이라도 진탕 먹어볼까? 퇴근하고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을 때쯤, 집 근처 곱창집에서 '양념구이 막창' 1인분을 포장해갔다. 편의점에서 사 온 후레쉬 한 병에 핫식스 2캔과 인스턴트 오뎅탕을 꺼내놓고, 2시간, 3시간 혼자 술을 들이켰다. 그렇게 한 병, 두 병 비우고서 술에 취해 잠이 드는 날이 늘어날수록 몸은 망가졌다. 맨 정신에 출근하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일하다가도 화장실에 뛰어가 속을 게워내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알코올에 찌들어 살기를 몇 달, 주변에서는 "너 알코올 중독 아니냐?"며 걱정하기 시작했고, 악화된 몸뚱이를 이끌고 간 병원에서는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진단과 함께 일 주일치 약을 끊어줬다.


결국, 자연스레 잠드는 것은 포기했다. 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잠들지 못하는 는 뭘 할 수 있을까. 혼자 잠드는 이 밤이 여전히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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