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쇠는 내 어린 시절 아명(兒名)이다. 어머니는 단 둘이 있을 때면 이름보다 아명으로 부르실 때가 더 많았다.
"허리 꼬부라지는 게 뭐 어때서요?"
"아니, 그냥. 요새 길 가다 보면 폐지 주우시는 할머니들 보면, 나도 저렇게 될 까 봐 무섭더라고."
"뭐, 허리 좀 구부러질 수도 있지. 사실 그런 것보다도 폐지 주우시면서 돌아다니는 게 더 무서운 거 아니에요?"
내가 사는 동네에는 그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다. 집 앞에 사람들이 내놓은 상자 쪼가리나 빈 병 따위를 주워 가셔서, 고물상에 헐값에 팔아서 한 끼를 겨우 해결하시는 분들을 10년 넘게 봤었다. 사람들이 쓰다 버린 유모차나, 어디서 구해오신지 모를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분들을 볼 때마다, 저렇게 주우시면 얼마나 받으실까 싶은 딱한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도 어느덧 환갑을 바라보는 그런 나이가 되셨다. 힘들어진 집안과 월세 내기도 버거워진 상황에 어머니는 자꾸만 폐지를 주우시는 할머니들이 눈에 밟히셨나 보다. 어머니는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갈 때마다 그런 모습이 괜히 마음 아팠다고 하소연하셨다.
"할머니들, 그렇게 허리 꼬부라지고 그러는 게, 옛날에 애들 막 여덟, 아홉 명씩 낳아서 그렇게 된 거잖냐. 낳고 나면 또 막 밭 갈러 나가시고." 술기운이 조금 올라오신 것 같았다. "그렇게 쎄빠지게 낳아놓고서도, 자식들이란 새끼들은 어디 가고,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은 그렇게 폐지 같은 거 주우러 나가는 거 보면 좀 무섭기도 해."
"엄마, 걱정 하덜 말어. 엄마는 내가 취업하면 밥 걱정 안 하시게 잘 할겨. 지금도 봐봐요. 나 이번에 일한 거 월급 들어오니까 이렇게, 딱 술 한 상 거하게 차렸잖아요."
어머니는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그래, 나 늙으면 너랑 먹순이랑 알아서 먹여 살리겠지."
"엄마, 나는 솔직히 엄마 허리가 꼬부라져도 괜찮아. 늙으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근데 나는 엄마가 막 요새 막 지하철 타면 보이는 그런 사람들처럼만 안 됐으면 좋겠어."
"어떤 사람들?"
"지하철 타려고 문 앞에 서있으면 할머니, 할아버지들 어디서 막 튀어나와갖고 사람들 막 밀치면서, 사람들 내리지도 않았는데 기어들어가는 그런 사람들 있잖아. 공중예절 따위는 밥 말아 쳐 먹고서, 목소리만 높아가지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전세 낸 것처럼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통화하고, 괜히 옆에 앉아있는 사람들한테 꼬장 부리는 거 보면 속이 다 뒤집어진다니까?"
어머니는 말없이 술 한 잔을 들이켰다.
"엄마, 난 그냥 엄마가 그런 추한 사람만 안 됐으면 좋겠어. 외면은 추할지언정, 인성까지 추해지면 안 되잖아. 난 그냥 엄마가 잘 늙으셨으면 좋겠어. 나도 그럴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