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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Ko Oct 16. 2019

부러진 게임 CD와 아버지

나는 총 쏘는 게임이 싫었을 뿐이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전국적으로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하고, 집마다 하나씩 구닥다리 컴퓨터 한 대씩은 두고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1998년부터 집에서 굴러다니던, 테트리스가 최고 사양 게임인 누리끼리한 486 컴퓨터가 내 방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항상 입버릇처럼 컴퓨터가 사람을 망쳐놓고 있다며, 컴퓨터를 악의 근원처럼 취급하셨다. 가끔씩 나도 컴퓨터 갖고 싶다고 조심스레 말을 꺼내면, 그깟 컴퓨터 왜 사냐면서 역정을 내시던 아버지가 어느 날, 홈플러스에서 몇 십만 원짜리 컴퓨터 한 대를 사 오셨다.


시중에서 판매되던 CD게임은 무난하게 돌릴 만한, 꽤나 높은 사양의 컴퓨터였었다.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홈플러스에서 게임 몇 개를 사 오셨다. '톰 클랜시의 고스트 리콘', '메달 오브 아너 얼라이드 어썰트' 같은 FPS 게임이었다. 솔직히 나는 FPS 게임을 좋아하지 않았다. 총 쏘는 것에는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어렸을 때부터 축구에 미쳐 살았기에 피파나 위닝일레븐을 더 좋아했고, 내심 아버지가 그런 게임을 사 오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강경하셨다. "축구 같은 걸 왜 보냐? 사내 새끼가 총도 쏘고 할 줄 알아야제! 잉?" 하시면서 나를 억지로 컴퓨터 책상 앞에 앉게 하셨다. 1인칭으로 보이는 화면에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주변 환경들, 두두두 하면서 쏟아지는 총성과 그 긴장감은 나를 서서히 옥죄었다. 정신이 멍해질 때쯤, 속에서 부글부글 무엇인가가 끓어오르기 시작하면서,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화장실로 달려가 모든 걸 게워내야 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면서 "사내 새끼답지 못하다"며 뺨을 후려갈기셨다.


나는 마냥 무서웠다. 내가 나약하고 머저리라 FPS 게임을 견디지 못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저 울면서 키보드와 마우스를 잡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을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헛구역질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FPS 게임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긴장감 넘치는 게임 속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몇 분동안 심호흡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키보드와 마우스를 잡을 수 있었다. 몇 시간 동안 1인칭 화면만 쳐다보고 있어도, 예전처럼 빈 속을 게워내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FPS 게임을 썩 좋아하지 않았고, 어머니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주셨던 '피파 2005'만 열심히 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내 앞에서 그 CD를 분질러버렸다.

"이딴 쓰레기 같은! 어? 축구우우? 지랄 염병을 해라! 사내 새끼가 씨발 총도 쏘고 할 줄 알아야 되는 거 아니냐? 니 군대 안 갈 거야? 어? 새끼가 말이야. 아비가 말을 하는데 듣는 척도 안 하냐?"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그냥 축구가 좋았을 뿐인데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걸까. 그 날 이후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집에서 피파나 위닝을 컴퓨터에 깔아 볼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10년 정도가 지나고 나서, 2016년에는 '오버워치'가, 2017년에는 '배틀그라운드'가 출시됐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나는 열광하다 못해 피시방에 죽치고 앉아서 하루 종일 키보드를 두들겼다. 친구들과 피시방에 가서 오버워치나 배틀그라운드를 할 때면, 가끔 친구들 중에 한, 두 명은 "어우, 난 멀미 나서 못 하겠다."며 빠지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아, 뭔 멀미야, 새꺄, 게임 하루 이틀 하냐."라고 놀려댔다. 하지만 오버워치나 배틀그라운드 같은 FPS 게임이 흥행한 최근에서야 꽤나 많은 사람들이 1인칭 시야로 종, 횡을 움직이는 FPS 게임에서 멀미 증상이 생기는 '3D 멀미'를 앓는다는 것을 알았다. 10년 전에 내가 처음으로 모니터 속 총을 잡고 적군을 쏴 죽이던 그 순간, 내가 느꼈던 알 수 없는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의 원인이 '3D 멀미' 였던 것이다.

나는 그때 왜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았어야 했던 것인가. 사내 새끼답지 못하다며 뺨을 맞았던 이유가 고작 '3D 멀미' 때문이었다니.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던 내 '피파 2005'는 왜 반토막이 났어야 했을까.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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