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전국적으로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하고, 집마다 하나씩 구닥다리 컴퓨터 한 대씩은 두고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1998년부터 집에서 굴러다니던, 테트리스가 최고 사양 게임인 누리끼리한 486 컴퓨터가 내 방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항상 입버릇처럼 컴퓨터가 사람을 망쳐놓고 있다며, 컴퓨터를 악의 근원처럼 취급하셨다. 가끔씩 나도 컴퓨터 갖고 싶다고 조심스레 말을 꺼내면, 그깟 컴퓨터 왜 사냐면서 역정을 내시던 아버지가 어느 날, 홈플러스에서 몇 십만 원짜리 컴퓨터 한 대를 사 오셨다.
시중에서 판매되던 CD게임은 무난하게 돌릴 만한, 꽤나 높은 사양의 컴퓨터였었다.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홈플러스에서 게임 몇 개를 사 오셨다. '톰 클랜시의 고스트 리콘', '메달 오브 아너 얼라이드 어썰트' 같은 FPS 게임이었다. 솔직히 나는 FPS 게임을 좋아하지 않았다. 총 쏘는 것에는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어렸을 때부터 축구에 미쳐 살았기에 피파나 위닝일레븐을 더 좋아했고, 내심 아버지가 그런 게임을 사 오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강경하셨다. "축구 같은 걸 왜 보냐? 사내 새끼가 총도 쏘고 할 줄 알아야제! 잉?" 하시면서 나를 억지로 컴퓨터 책상 앞에 앉게 하셨다. 1인칭으로 보이는 화면에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주변 환경들, 두두두 하면서 쏟아지는 총성과 그 긴장감은 나를 서서히 옥죄었다. 정신이 멍해질 때쯤, 속에서 부글부글 무엇인가가 끓어오르기 시작하면서,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화장실로 달려가 모든 걸 게워내야 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면서 "사내 새끼답지 못하다"며 뺨을 후려갈기셨다.
나는 마냥 무서웠다. 내가 나약하고 머저리라 FPS 게임을 견디지 못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저 울면서 키보드와 마우스를 잡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을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헛구역질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FPS 게임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긴장감 넘치는 게임 속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몇 분동안 심호흡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키보드와 마우스를 잡을 수 있었다. 몇 시간 동안 1인칭 화면만 쳐다보고 있어도, 예전처럼 빈 속을 게워내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FPS 게임을 썩 좋아하지 않았고, 어머니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주셨던 '피파 2005'만 열심히 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내 앞에서 그 CD를 분질러버렸다.
"이딴 쓰레기 같은! 어? 축구우우? 지랄 염병을 해라! 사내 새끼가 씨발 총도 쏘고 할 줄 알아야 되는 거 아니냐? 니 군대 안 갈 거야? 어? 새끼가 말이야. 아비가 말을 하는데 듣는 척도 안 하냐?"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그냥 축구가 좋았을 뿐인데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걸까. 그 날 이후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집에서 피파나 위닝을 컴퓨터에 깔아 볼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10년 정도가 지나고 나서, 2016년에는 '오버워치'가, 2017년에는 '배틀그라운드'가 출시됐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나는 열광하다 못해 피시방에 죽치고 앉아서 하루 종일 키보드를 두들겼다. 친구들과 피시방에 가서 오버워치나 배틀그라운드를 할 때면, 가끔 친구들 중에 한, 두 명은 "어우, 난 멀미 나서 못 하겠다."며 빠지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아, 뭔 멀미야, 새꺄, 게임 하루 이틀 하냐."라고 놀려댔다. 하지만 오버워치나 배틀그라운드 같은 FPS 게임이 흥행한 최근에서야 꽤나 많은 사람들이1인칭 시야로 종, 횡을 움직이는 FPS 게임에서 멀미 증상이 생기는 '3D 멀미'를 앓는다는 것을 알았다. 10년 전에 내가 처음으로 모니터 속 총을 잡고 적군을 쏴 죽이던 그 순간, 내가 느꼈던 알 수 없는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의 원인이 '3D 멀미' 였던 것이다.
나는 그때 왜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았어야 했던 것인가. 사내 새끼답지 못하다며 뺨을 맞았던 이유가 고작 '3D 멀미' 때문이었다니.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던 내 '피파 2005'는 왜 반토막이 났어야 했을까.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