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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Ko Oct 19. 2019

게임은 하면 할수록 재밌을 줄 알았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게임하기가 힘들다

초등학생 때, 내가 컴퓨터를 쓸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에 두 시간뿐이었다. 매주 수요일, 토요일 6시부터 7시. 심지어 이 시간조차도 5학년 중간고사 때 올백 맞았다고 30분만 허용되었던 컴퓨터 이용시간을 '파격적으로' 1시간으로 늘려주신 것이었다. 아무리 철없고, 뭣도 모르는 초등학생이었지만, 하루에 한 시간, 그것도 일주일에 꼴랑 이틀밖에 쓰지 못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느꼈다. 다른 애들은 실컷 게임하고, 인터넷도 하는데 나는 이게 뭐냐고 개기고 싶었다. 하지만 불호령 같은 아버지의 호통과 손찌검에 감히 시정해달라고 말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결국 모든 것을 수용했고, 주어진 그 짧은 시간을 처절하게 이용했다. 게임 한 판, 한 판에 목숨을 걸었고, 최대한의 행복을 추구하고 싶었다. 게임 로딩하는 시간은 왜 그리 길던지, 렉 때문에 버벅거리는 컴퓨터를 보면 울화통이 치밀어올랐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한테 "렉 먹어서 게임이 잘 안되니까, 게임하는 시간 좀만 늘려주세요."라고 애걸복걸했다. 하지만 얄짤없이 1시간이 끝나면 "꺼라."라는 호통과 함께 의자에서 밀려나야 했다. 가끔씩 내가 왜 이렇게까지 비굴해져야 하나 싶은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다. "아니, 시험도 잘 보고, 열심히 하는데 1시간밖에 못 하는 게 말이 돼요? 다른 애들은 나정도 시험 보면 컴퓨터를 사 줘요!"라고 반항해봤지만, 폭풍 같은 욕설과 인신공격이 뒤따랐고, 그에 따른 징계로 '컴퓨터 무기한 이용정지'라는 형벌이 가해졌다.


혹은, 시답잖은 이유로 아버지와 말다툼을 하거나, 집안 분위기가 싸해질 때면, 컴퓨터 사용은 암묵적으로 금지당했다. 한 번은 아버지가 "니는 이 상황에서 게임이 하고 싶냐?"며 나를 게임에 정신 나간새끼 취급하셨고, 컴퓨터 선을 끊어버리셨다.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집에서는 내 의지로 게임을 할 수 없었다. 아주 가끔 아버지가 FPS 게임을 하시다가 "너 해라." 하고 마우스를 넘겨주시는 게 아니라면, 내가 하고 싶은 게임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대학교에 들어가고서는 온전히 내 세상이었다. 20만 원 주고 산 구닥다리 노트북으로는 최신 게임은 돌리지도 못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구닥다리 노트북으로 옛날 게임이라도 원 없이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렇게 일 년, 이 년이 지나고, 집에서 독립한 이후로는 그 누구도 나에게 게임에 관해서 뭐라 하지 않았다. 방학 기간이나 시험이 끝나면, 밤새 피시방에서 게임을 할 수도 있었고, 자취방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게임에만 몰두했다. 미친놈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학창 시절 수도 없이 컴퓨터 이용을 통제당했던 아픔과 쌓일 대로 쌓인 욕구불만이 그런 식으로 터져 나왔다고 보는 게 맞겠다. 그렇게 원 없이 하는 게임은 너무도 달콤했다. 이런 재미를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그렇게 원 없이 게임을 즐긴 지 1년쯤 되었을 때, 어느 순간 게임과 멀어졌다. 정확히는 먹고사는 게 바빠서, 게임할 시간이 모자랐다. 평일에는 가끔씩 수업이 끝나고, 붕 뜨는 시간에 친구들과 한, 두 시간씩 피시방에 가는 것이 유일했다. 휴학하고서 공장에 출근하고서는, 더더욱 게임과 멀어졌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서 저녁 9시가 되어서야 잔업이 끝나고 집에 들어오는 일이 반복됐다.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노트북을 켜서 게임을 실행하고, 게임에 집중하는 것이 일종의 노동이 되었고, 귀찮아졌다. 대충 얼굴만 씻고서, 침대에 드러눕는 것이 게임을 하는 것보다도 먼저였다. 혹은 힘겹게 의자에 앉아 한,두 판 하는 게 고작이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에게 "아, 딱 한 판만 할게요."라며 그렇게도 애걸복걸 해댔지만,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한 판만 하고 끄는 새나라의 어린이가 되었다.


하지만 가끔씩은 무거운 눈꺼풀을 쥐고, 퇴근하고서 옷도 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친구들이 있는 피시방에 간다.

"야, 레디 박아. 레디."

"어디 갈 거냐?"

"강남 고? 밀베 고?"

"밀베 갔다가 총도 못 쏘고 뒤질라고? 강남 컨테이너 고고."

"오케이, 확인."

"야야, 내려내려."

 "몇 시까지 할 거냐?"

"12시에는 가야지, 내일 출근이야."

"오케이, 1시간만 하고 집 가자."


다들 늙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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